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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우 Jun 10. 2024

서투름의 역사

누군가의 건축학개론

 ‘첫’ 이라는 말은 모두에게 묘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은유도 가지지 못했을 시기의 최초의 기억, 혹은 행위. 첫사랑. 첫 키스. 첫 연애. 간질간질 하기도, 설렘이 느껴지기도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인지 이 처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영화나 소설의 단골 소제로 사랑받는다. ‘건축학개론’, ‘소나기’, ‘러브레터’ … 당장 꼽아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 시절의 순수함이나 애절함,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꼭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처음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건축학개론’의 카피에서처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다른 처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첫 직장. 첫 출근. 첫 피티. 나의 경우 긴장감이나 서투름 같은 감정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너무나 잘하고 싶지만 처음이라 경험은 없고, 무지에서 밀려오는 긴장감에 매 순간 삐걱이고 고장 났었던 기억이 있다. 프린트, 복사, 파쇄 등 간단한 업무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지만 업무전화를 받고 전화를 돌리는 일이 제일 긴장되는 일들 중 하나였다. 첫 설렘을 넘어 현실을 맞으면 서투름이 나를 기다고 있었다. 경험 없이 능숙하긴 왜 그렇게 힘이 들었을까?


“말해봐! 쌍년이었다며?”
 건축학개론에서 엄태웅의 약혼녀인 고준희가 첫사랑에 대해 물어보면서 하는 대사가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쌍년 쌍놈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첫 연애도 설렘과 서투름 그 사이에 있었다. 그때는 명확한 설렘이었으나 지금은 명확한 서투름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즈음에 첫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 일 것이다. 나의 경우 그보다 조금 늦은 20대 중반에 첫 연애를 시작했었다. 취업관련 스터디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된 1살 아래의 친구였는데 취업과 미래에 대해 비슷한 걱정도 고민도 많던 시기라 금방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꼈던 것 같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던 우리는 같이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했었다. 그 친구의 집은 대구에 있었지만 부산대를 다니고 있어서 방학기간이 아니면 장거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첫 연애는 장거리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설렘도 애정도 사랑도 넘치는 시기였던지라 버스를 타고 헤어질 때는 영화 한 편을 찍곤 했었던 기억도 있다. 같이 있고싶은 마음은 컸지만 헤어져야 하는 시간은 왜 이리 빨리오는지 주말이 늘 아쉬웠었다. 자소서에 면접준비, 영어, 적성검사까지 준비해야 하는것들은 너무 많아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데이트할 시간은 더욱 부족했고 뽀뽀할 시간은 더더욱 부족했다. 이 좋은걸 왜 안하고 살았을까?? 첫 연애란 모르고 살던 즐거움의 발견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라는 걸 연애를 하면서 알게 됐던 것 같다. 늘 난 주변인이었고 세상은 나 없이도 잘만 돌아갔었는데, 한 사람으로 인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당시 여자친구는 1~2번의 연애사가 있었으나 나는 온전히 연애 초심자였다. 나의 첫 연애는 서투름 투성이였고 그 서투름을 매우는 건 온전히 상대방의 몫이었다. 더욱 끔찍한 점은 그 당시의 나는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잘 눈치채지 못했었다. 웃기게도 가끔 나의 서투름을 느끼는 순간에도 ‘난 이번이 처음이잖아??’ ‘네가 조금 이해해 주는 게 어때?’ 같은 마음을 품었었던 게 사실이다. 늦은 나이에 첫 연애를 시작한다고 해서 더욱 성숙한 모습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서울에 일하고 있는 나를 보러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여자친구가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서울로 취업을 하면서 대구 부산의 장거리가 서울 부산으로 늘어나 버렸다.) 그때 당시 우리는 명동에서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고 후식으로 버블티를 마셨었다. 그리곤 저녁 즈음엔 홍대 주변을 구경하고 신촌쯤에서 숙소를 잡고 하루를 보냈다. 평범한 하루였지만 연애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고 난 뒤에서야 알게 된 사실들이 있다. 점심으로 먹었던 설렁탕 집은 명동에서 제일 유명한 하동관이라는 설렁탕 집이었고 후식으로 먹은 버블티는 당시 지방엔 잘 없는 공차라는 프랜차이즈였다. 아무렇게나 들어갔던 숙소는 나름 서울에서 유명한 모텔촌에 있었다. 한심하게도 멀리서 여자친구가 놀러 오는데 데이트 코스는 둘째 치고 숙소조차 예약해놓지 않았었다. 내가 세우지 않은 계획을 누군가는 매번 세웠을 것이다.


  연애에 있어서 서로 간의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데이트를 할 때도 손가락 하나라도 닿아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라 늘 찰싹 붙어 다니곤 했었다. 감정을 나누고 사랑을 확인하는 데에 이만한 게 있을까? 하지만 지나고 보니 스킨십에서도 상황이 썩 좋지 않았었다. 여기서도 난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여자친구는 모든 걸 잘 해낼 거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마음은 급하고 혼자 앞서가 교감이 부족한 순간들이 많았었다. 그 친구도 겨우 20대 초중반을 지나고 있는 어린 나이였는데 왜 조금 더 배려해 주지 못했을까. 특히 위생이나 청결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너무 무지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개념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았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야 이런 종류의 서투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장거리의 거리가 서울 부산으로 늘어나고 몇 달이 지났을 때 우리는 이별을 맞이했다. 좋은 이별이라는 게 어디 있겠냐 만은 여기서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연애 감정이라는 것이 윤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상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피어오르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중요한 결정 들로부터 도망친 순간들이 있었다. 연애의 관성에서 온전히 남아있는 감정만을 빼서 들여다보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들을 몇 번 거처 우리는 온전히 헤어질 수 있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은 부분이 성숙해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연애는 어렵다. 이별은 훨씬 더 어렵다. 이별의 순간 우리는 때로 온전히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다는 욕구를 떨쳐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다행히도 첫 연애가 지나고 아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들, 후회가 된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것 같아?” 라고 물어본다면 아직도 여전히 연애는 어렵다. 매번 연애 때마다 아쉬움은 있었고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아쉽게도 바로잡은 말과 행동들은 후회를 남긴 상대방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다음 사람을 찾아간다. 연애 때마다 조금씩 배우는 것들도 성숙해지는 것들도 있다는 것은 매번 서투름이 남아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연애사는 서투름의 역사였다.

 어쩌면 만남과 이별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서투름 속에서도 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는게 아닐까? 부족함 속에서도 다시 사랑을 향해 발을 내딛는 것이 연애의 진정한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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