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리지 않는 미술 수업이야기(3)
권 선생님 전자 칠판 교실에서 대표 수업해보세요
미술 감상 수업을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앞의 두 이야기는 어느 정도 수업연구를 하면서 정돈된 수업이었다. 2005년 첫 발령을 규모가 큰 울산 다운초에서 받고 2009년까지(군 경력 제외) 학교의 막내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난 학교일에도 소질이 없었고 그렇다고 친목을 다지는 술자리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학교생활에 핵심이 되기보다는 늘 주변에서 맴돌았던 것 같다. 한마디로 학교 업무를 적극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그때는 마냥 학생들과 친구들처럼 재미있게 노는 것이 좋아서 즐겁게 학교를 학생처럼 다녔다.
그 후 2010년에 대구로 근무지를 이동하면서 내 나이 또래 선생님들에 비해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냥 키 크고 싱거운 선생님이었다. 1년 동안 적응하느라 고생을 했다. 그래도 아이들과의 소통에는 자신이 있었던 나만의 착각(?)으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학년 담임만 줄곧 했었다. 일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보니 부장교사나 학년 연구 같은 일은 늘 나와는 큰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2012년도에 그 당시 근무하던 학교가 '스마트 정책연구학교'로 지정되면서 내 경력과 이력에 쓸 것이 생기게 되었다.
2013년에 연구학교 정책 발표 대외공개수업(외부에 수업을 공개함)을 위해서 당시 카리스마 넘치던 교장선생님께서는 젊은 선생님들 위주로 과목별로 수업 하나씩을 맡겼다. 난 교대 다닐 때 미술과를 나왔고 특별하게 잘하는 과목이 없어서 미술을 선택했다. 사실 내 나이 또래 선생님들은 공개날 발표가 예정되어 있어고 난 예비 옵션 성격이 짙었다. 며칠 뒤 최종 리허설을 보신 교장선생님께서는 전자 칠판이 있었던 메인 교실에서 예정된 수학 수업을 다른 수업으로 바꾸고 싶어 하신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리고 나를 부르셨다.
" 권 선생님, 이번 공개 때 미술 수업을 전자 칠판 교실에서 합시다."
" 네?, 거기는 수학 수업이 아닌가요?"
후에 안 이야기지만 당시 우리 학년 연구교사인 부장님께서 수학 수업을 거기서 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전자 칠판이다 보니 그림 수업이 보기도 좋고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바꾸셨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난 수업에 조금의 소질이 있었나 하는 낯섦을 느꼈고 학교에서도 처음 인정받았던 기억이었다. 그때가 미술 감상 수업의 시발점이었다.
수업 발표대회 첫 출전...
그 후 난 대표 수업을 하라고 하면 마다하지 않고 했던 것 같다. 2014년에 학교를 옮기고도 했었고... 6학년만 하다 보니 늘 비슷한 주제로 ‘추상미술 감상하기'를 수업했던 것 같다. 그리고 2015년도에 내가 옮긴 학교에서 '수업 발표대회'라는 낯선 대회를 접하였고 주위의 젊은 선생님들처럼 나도 덩달아 출전하게 되었다. 대회의 성격은 과목별로 최신 트렌드에 맞는 수업 잘하는 교사를 뽑는 것이 었지만 승진 점수가 있어서 그런지 학교에 관심이 있는 선생님들이 꽤 많았다. 난 내 수업 실력을 한번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미술 교과 지원자에는 남자 선생님들이 거의 없었다. 인기 없는 과목이었지만 내가 했던 수업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처음 5분을 잡아라
모든 수업에서 처음 5분이 정말 중요하다. 학생들의 기대감을 극도로 끌어올려 수업에 빠지게 해야 하는 첫 관문이다. '추상 미술을 처음부터 보여준다면 과연 학생들이 좋아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동기 유발 자료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만 깊어지고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나도 잘 모르는 추상미술을 어떻게... 그리고 나의 수업을 유심히 관찰하시던 연구 교사 선배는 처음에 말이 너무 많다고 하셨다.
1. 동기유발 자료 찾기
2. 말 줄이기
두 가지를 해결하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추상미술을 유도하면서도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그림을 드디어 찾았다. 아이디어가 마구 쌤 솟아났다.
수업대회 2차 본선 녹화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보여주자 웅성이면서 곧 나를 응시했다. 나의 첫 질문을 기다렸다.
" 그림 속 신사의 얼굴을 사과가 가리고 있어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요?"
질문이 떨어지자 무섭게(?)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 화난 표정 같습니다. 뒤 배경이 흐리고 어둡기 때문입니다."
" 슬픈 표정일 것 같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입는 옷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 웃고 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고 그럴 것 같습니다."
저마다 그림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았다. 마음속으로 발표를 잘 따라 해 주는 녀석들이 기특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진지하게 수업 방향이 흘러가면 경직될 수 있어 약간의 웃음 포인트를 미리 계획했었다. 우리 반에 제일 웃긴 녀석에게 수업할 때 너한테 부탁할 텐데 자신 있게 해 달라고만 말했었다. 나와 눈빛이 마주치자 긴장한 듯이 벌떡 일어났다.
바로 신사의 모습을 따라 사과 사진 뒤에 이 녀석의 얼굴 표정을 맞추는 것이었다.
" 병주가 웃을 것 같습니다."
" 병주 누런 이빨이 보입니다."
반 아이들은 웃기 시작했고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사실 이 학생은 거의 웃는상이었다.
5분이 잘 지난 것 같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추상미술을 도입해야 했다. 핵심 그림을 화면에 띄었다.
신사의 눈, 코, 입을 섞은 그림이었다. 아이들의 첫 반응은 당연히 "에이... 선생님 못 그렸어요."였다.
내가 미술 감상 수업을 하는 중요한 이유가 아이들의 입에서 나왔다. 멋쩍게 웃으며 질문을 이어갔다.
" 맞아요, 쉽게 이야기하면 추상미술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마음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그리는 것이에요, 눈, 코, 입의 위치는 정해져 있지만 나의 마음에서 바뀔 수도 있겠죠."
아이들이 알듯 모를듯한 표정을 보였다. 난 간단하게 추상 미술 감상 관점을 알려줬다.
1. 그림을 보고 나만의 제목 붙이기
2. 조형요소나 원리 찾아보기
3. 화가는 왜 이렇게 그렸을지 의도 생각해보기
두 번째는 좀 어렵긴 해서 학기초부터 미술 수업 때 색감이나 구도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만 늘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어려워했다. 다음 두 그림으로 학생들에게 위의 질문을 했었다. 바로 추상 미술 하면 떠오르는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작품이었다.
아이들은 첫 번째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고 다양한 제목과 작가의 의도를 상상했다.
" 펜케익 같습니다. 작가가 펜케익을 굽다가 찢은 것을 그렸습니다."
" 담배를 피우지 맙시다입니다. 담배로 두 개의 허파 중 하나가 검게 된 것입니다."
" 태아 같습니다. 아이가 뱃속에서 자랄 때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참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두 번째 그림은 어떨까?
" 색들의 모임입니다. 면과 색이 다양합니다."
"블록 쌓기입니다. 작가가 자기의 아들이 블록을 쌓는 것을 보고 그린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참신한 답변에 추상 미술의 매력이 한 것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간간히 조형요소와 원리를 발표하는 모둠은 고맙기까지 했다. 수업은 이제 하이라이트로 가고 있었다. 나만의 진행 방식이 필요했다.
쇼 더비 경매를 따라 해 보자.
미술 감상수업의 최대 단점은 무엇일까? 나중에 많은 보완이 이루어졌지만 2015년도에는 아직 다 해결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바로 정적인 수업 흐름을 동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미술 경매였다. 비록 실제로 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수업에 넣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스마트패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1. 먼저 경매 그림의 제목과 가격을 가리고 학생들에게 보여 준다.
2. 학생들이 배운 감상 관점으로 모둠별로 경매에 참여해 발표한다.
3. 다른 모둠 학생들은 듣고 나중에 자신의 모둠을 빼고 제일 잘한 모둠을 뽑아서 그림을 낙찰한다.
4. 낙찰된 그림의 가격을 보여주고 스마트패드로 찍어서 가져간다.
5. 가장 많은 낙찰 금액을 받은 모둠이 우승한다.
아이들은 이제 경쟁적으로 더 활기차게 활동을 했다. 더 많은 그림을 모으는 게임이 시작된 것이었다. 수업 분위기는 더 달아올랐고 교실 이곳저곳에서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추상미술에 대한 두려움은 아이들에게서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던 수업이 1분여를 남기고 무사하게 마쳤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수업이었다. 예전에 수업을 심사하셨던 교감선생님께서도 흡족해하시며 칭찬하셨다. 아이들이 질서 정연하고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수업해준 것이 고마웠다. 2~3년간 6학년 추상 미술 감상하기를 지도하면서 이렇게 뿌듯하기는 처음이었다. 마음속에는 가을에 직접 심사관이 참관하는 3차 본선이 그려졌다.
그런데 두어 달 후에 결과가 나왔다. 3차 본선 예선에 내 이름은 없었다. 2차에서 1~2명만 떨어지는데 그것이 나였다. 결과를 받자 스스로에게 실망감이 컸다. 그래도 수고한 아이들에게 치킨을 쏜 기억이 난다. 무엇이 모라랐을까? 그 당시 참 많은 고민을 했었다. 나의 대회는 이제 시작이었다.
추상미술은 어렵다. 나도 어렵다. 그러나 답을 찾기보다는 그림을 자유롭게 보고 상대의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나중에라도 아이들이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