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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us lisbon

by 아론의책

버스를 타고 30여분의 시간이 지나고 벨렝지구에 도착했다.


"딱 봐도 여기구만."


버스에서 내려 얼마 걷지 않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가게가 보였다. 그곳이 바로 'Pasteis de Belem'이었다. 180년 전통을 자랑하며 5대째 이어지고 있는 에그타르트의 시작이자 끝인 곳.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소름 끼치게 많은 인파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현장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왜 에그타르트를 만든 거지?"



벨렝지구에 있는 제로니무스 수녀원에서 수녀들이 옷을 빳빳하게 하기 위해 계란의 흰자를 사용하였다. 흰자를 사용하고 난 후 남은 노른자가 문제였다.


"어떻게 처리하죠 원장님?"

"좋은 생각이 없니?"


그때, 얼굴이 백옥처럼 새하얗고 이가 가지런한 막내 수녀가 입을 떼었다.


"빵을 만들어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막내 수녀는 수려한 외모만큼이나, 빵을 만드는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그녀가 만든 빵은 많은 수녀들의 극찬을 받았고 '에그타르트'라 불렸다. 그렇게 수녀원에서 시작된 에그타르트는 벨렝지구 곳곳으로 퍼졌고, 그중 'Psteis de Belem'만이 막녀 수녀의 레시피를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대화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나서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야~ 여기 세비야 느낌이 나네"


내부로 들어간 순간 엔틱한 타일장식들이 눈에 띈다. 고려청자를 타일로 만든 것 같은 착각이 벽을 타고 흘러나온다. 이슬람인들이 고려청자를 따라 하고 싶어 했지만, 실패해서 만든 것이 타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에그타르트집에서 만난 기분이 들었다.


아줄레주 장식의 타일을 만지작 거리며 위아래를 훑어 보고 있을 때, 키가 180cm 되어 보이는 팔뚝이 굵은 남성이 내 곁에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어요?"

"에그타르트 10개랑 에스프레소 2잔 부탁해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맛있는 집에 왔는데 몇 개 먹고 갈 수는 없다.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껏 먹겠다는 각오로 당당하게 주문했다.


"맛있게 드세요"


무뚝뚝해 보였던 남성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에그타르트를 건네주자 가게 내부가 밝아지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는 건가."


그가 맛있게 먹으라고 말하며 건네준 에그타르트를 한 참을 바라보았다. 겉은 손에 닿으면 부서질 것처럼 바삭해 보였고 가운데는 노랗고 불그스름한 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와그작"


한 입베어 문 순간 세계 최고의 에그타르트가 입속으로 들어왔다. 바삭한 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크리미 한 맛이 뇌를 강타하는 것 같았다.


고기를 먹을 때 느끼는 육즙보다 더 깊이 있는 풍미가 에그타르트에서 느껴졌다. 게눈 감치듯 10개의 에그타르트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혼자 먹방 찍으러 온 사람처럼 쉬지 않고 먹었다. 중간중간 홀짝이는 에스프레소 소리만이 정적을 깨웠다.


"아 여기 인생 에그타르트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




이제 먹을 만큼 먹었다. 잠시 리스본의 100년 전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졌다. 28번 트램에 몸을 맡긴다. 낭만적인 노란색 트램을 타고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리스본 시민들과 비좁은 공간 안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있는 어린 소녀의 눈망울이 나를 스친다. 나도 소녀가 신기하고, 소녀도 내가 신기하다.


28번 트램은 여행을 가는 사람이 꼭 타야 하는 곳은 아니다. 그저 리스본 사람들이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살아가는지, 그 삶을 보고 싶은 분들이 경험해 보면 좋은 곳이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탄다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만큼 공간은 좁다.


나는 그 좁음을 경험하기 위해 28번 트램을 탄다. 나와 너 사이 거리가 적당한 게 좋지만, 그 트램 안에서만큼은 좁은 간격이 좋다.


그 좁은 간격 속에서 그들의 문화와 생각과 생활방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중 노을이 비치는 리스본이 보였다.


"아 그래 내가 이거 보러 왔지. 멍타임하러 가자."


트램에서 나와 걷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전망대는 다른 세계에 도착했음을 뇌에게 말한다.


"그래, 나는 언제나 노을 사냥꾼이지. 이 노을이 나의 여행에 가장 힐링 포인 트니까."


그저 멍하니, 노을에 비친 하늘과 테주강과 그 곁에 서있는 집들을 바라본다.

그저 하늘에 비 쳐진 노을이 테주강에 흐르고, 파스텔톤 집들에 머무는 노을이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리스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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