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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랑 Mar 13. 2022

[남미에세이] #3 시선을 뒤집어

페루_리마_Lima (3), <왜 지금 남미>

Travel Route | 페루 - 칠레 - 볼리비아 - 아르헨티나 - 브라질 |

페루 여행 | 리마 Lima - 와라즈 - 쿠스코


⌜시선을 뒤집어⌟


리마에서의 마지막 밤, 늦은 새벽까지도 동생의 배낭에 대해서 항공사 측 연락이 없어 밤잠을 설쳤다.


다음날 저녁, 당장 와라즈로 떠나는 야간 버스를 끊어두었는데, 혹시라도 배낭을 못 받으면 어떡하나. 중요한 물품들은 미리 사둬야 하나. 앞으로 남은 여행 길은 어떻게 되는 건가. 밤새 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 것이다.

동생이라는 놈은 세상 편하게 잘만 자는데, 나만 속이 끓어오르는 이유는 뭔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항공사에 전화를 해 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넘어가지 않는 조식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직접 공항에 찾아가보기로 결론지어버렸다. 일이 진행이 안 되면,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남미에서는 항공사 측 전화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공항으로 달려가서 그 사람들을 직접 움직이게 하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았다..!


체크 아웃을 한 뒤, 빠르게 택시를 잡기 위해 호스텔을 나가려는 순간, 따르릉!!

카운터의 전화벨이 울렸다. 


다들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이건 진짜다!' 하는 느낌!

역시! 항공사로부터 온 전화였다. 오늘 오후 5시 즈음 짐이 도착할 거라고 했다. 안도감이 몰려오면서 온 몸의 힘이 빠졌다. 이제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날 신시가지를 구경하는 일정이 잡혀있었으나 다 집어치우고 와이파이 빵빵한 카페 한 곳을 찾아가 눌러 앉아서는 하루종일 먹고 놀아버렸다. 마음 고생을 너무 많이 한 탓에 힐링이 필요했다. 


저녁에 호텔에 도착하니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동생놈의 배낭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비닐 포장지에 싸여 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배낭님이 오시니, 정말이지 물건에서도 후광이 비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나 웬수같던 가방이 이렇게나 그리워질 줄이야.


10kg에 다다르는 이 무거운 짐덩이들이 우리를 괴롭히던 그 배낭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감사한 마음 뿐이었다. 배낭을 받자마자 와라즈로 떠나는 야간 버스 터미널로 향했는데 놀라운 경험을 했다. 분명히 배낭의 무게는 똑같은데, 더 이상은 이 친구들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거운 짐덩이라며 온갖 구박을 받았던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니, 그 짐덩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뒤집어지고, 그것을 감당하는 태도가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시선을 뒤집어서, 나를 괴롭게 짓누르는 것들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경제적 형편? 외모? 학벌? 스펙? 한 번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것들이 당신의 오늘을 살게 하는 값진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을 수 있다. 그것 덕분에, 이토록 훌륭한 모습으로 달려온 지금의 당신이 있을 수 있다. 내 어깨를 미치도록 무겁게 만드는 짐덩이들을 조금씩 다르게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면 무거웠던 골치거리들이 이상하리만치 가벼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짓누르는 것들이 기승을 부려도, 받아들이는 내가 어떤 시각을 갖추고 소화해내느냐의 문제가 그것들을 나만의 즐거움으로, 혹은 감사함으로, 혹은 인생의 원동력으로 조물조물 뒤바꿔버릴 수 있다.


시선이 뒤바뀐 후, 배낭이 가벼워졌다.


배낭이 가벼워진 후에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2018/6/30/토요일의 기록


항공사 전화를 받고 뒷 일정은 다 날려버린 채, 에어컨 빵빵한 쇼핑몰 카페에 눌러앉아 하루를 낭비(?)하며 즐긴 커피 한 잔의 여유.


한국에 돌아가 또 다시 일상의 쳇바퀴를 굴리기 시작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수고했다면, 좀 쉬자!' 나도 잘 못하는 일이지만, 우리 삶에는 꼭 '쉼'도 필요하다.


조금만 넓게, 조금만 멀리 보면, 치열하게 달려온 만큼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이득일 수 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중간중간 스스로를 돌보는 '쉼'까지 성실히 챙겨가는 똑똑함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그렇게 목표점이 보이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또 지혜롭게 달려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A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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