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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08. 30대 중반

by Noelle

30대 중반에 들어서며, 꽤 많은 것이 변했다.


잘 보지도 않던 유튜브에 중독되고, 외려 평생 미쳐 있었던 활자와 조금 멀어졌다. 집중력이 저하되었고, 깊이 생각하는 걸 힘들어하게 됐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가 않다. 어느 순간 내 머릿속 생각들이 서로 잘 연결되지 않고, 말 그대로 브레인 포그 brain fog라고 할 법한 희뿌연 안개 같은 것들이 끼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머릿속이 번잡해졌다. 아직 30대 중반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이래도 괜찮은가 싶다.


그럼 나이가 들며 (물론 아직 우리 엄마에게는 응애다) 부정적인 일들만 있나 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휴식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재밌는 것만 하고 살면 그 재미가 조금 반감되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삶이 어느 정도 궤도에 들어서면서 약간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루틴이 생기고, 기꺼이 새로운 루틴을 만든다. 예전에는 뭔가를 시작하고 특정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심하게 자책하고는 했었는데, 나이 덕분인지 쌓여온 인생 경험치 덕분인지 가끔은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며 나를 좀 봐주게 됐다. 하긴 평일에 출퇴근하면서 진 빠지게 고생하는데, 사람이 진짜 뭐 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글 쓰는 것도 그랬다. 난 뭐든 쓰곤 했었다. 어렸을 때에는 일기를 (a.k.a. 감정 쓰레기통), 나이 들어서는 술이나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재능은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다만 경이로운 책이나 정말 맛있는 와인을 만났을 때, 그 감동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고, 그 툴이 나에게는 글이었다.


다만 내가 쓴 글이 조금씩 온라인 공간에 쌓이니, 어느 순간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내 글은 내 눈에조차 안 찼다. 남들이 왜 이걸 읽고 시간을 낭비하겠는가. 글이 왜 이렇게 부연이 많고 지저분한지, 데이터 센터가 열을 많이 내서 지구가 아프다던데, 내가 쓰는 글이 그럴 가치가 있는지 (이건 다시 생각해도 확실히 없다) 생각하면서 점차 뭔가를 쓰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럼 그냥 안 쓰면 그만이지 싶었는데, 글을 안 쓰니 머릿속 논리구조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글을 써둔 종이를 마구 구겨버린 것처럼 생각들이 순서를 잃었다.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훈련되던 사고의 흐름이 깨지는 듯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뇌가 고속노화를 향해 악셀을 밟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남들이 활자낭비라 생각한들 무슨 상관인가, 그냥 내가 쓰겠다는데. 영상보다는 텍스트가 데이터도 훨씬 덜 잡아먹는데 브이로그 올리는 거보단 환경에 낫다 생각하기로 했다. 한동안 글을 안 쓰고 있자니 다시 쓰고 싶은 마음도 생겨났다. 이게 무슨 청개구리 같은 마음인지, 나도 내 머릿속을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뭐라도 쓰기로 했다. 내 정신건강과 뇌 건강을 위해서라도 뭐든 쓰기는 써야겠는데, 바빠서 못 쓰면 못 쓰는 거지 뭐. 내가 글로 돈 벌어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요즘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누가 칼 들고 글 쓰라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니까. 평일에 내 본업에서 받는 돈 값을 하며, 조금 여유로운 일요일 오전에 시간이 된다면 조금씩 머릿속 생각들을 풀어내보자 마음먹었다. 대단할 필요도 없고, 멋질 필요도 없다. 생각나는 게 없으면 안 쓰면 그만이고. 그렇다고 내가 제 몫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적당히 하면서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35살짜리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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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