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든, 삶이란 자석처럼 끌려가는 것”이라고 “갈매기의 꿈”의 저자, 리처드 바크는 말했다. 자석처럼 끌려가는 삶이라…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 구절을 다시 읊었다.
책을 펼쳐 든 내내 온몸에 힘을 잔뜩 싣고 살아가는 나를 이따금씩 알아차렸다. 움켜쥐고, 저항하고, 버티는 나 자신을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뿐, 올여름은 나날이 무더워 갔다.
리처드 바크의 다른 책 ‘기계공 시모다’를 거의 다 읽을 즈음,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젊고, 반짝이는 눈을 가졌다. 목소리도 경쾌했다. 생기 발랄한 외모에 비해 더없이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그에게서 삶의 깊이가 풍겼다.
그 남자는 어린 시절에 겪은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형산강 지류에서 동네 형들과 수영을 하다, 소용돌이에 빨려 들었다고. 그 당시 초등학생이던 그에게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법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때,
“힘 빼!”
광음과도 같은 큰 소리가 들렸고, 그는 온몸에 힘을 뺀 채, 양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대고 눈을 감았다 하였다. 이윽고 저항 없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바닥 깊숙이 발이 닿으려 하자, 무릎을 굽혀 최대한 바닥을 향해 굳게 차고는 다시 소용돌이에 몸을 맡겼다고 했다. 그러자 반대 바깥 방향으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고.
회오리에 말려 들어가지 않으려 힘껏 헤엄을 쳤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아니 기필코 그는 죽었으리라. 온 힘을 다해 살려는 에너지가 결국 죽음으로 치닫게 했을 터. 순식간에 벌어진 그 사건 이후, 삶을 초연이 살아가게 됐다고, 그는 덤덤히 말했다.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히 들려주는 그의 경험이 무슨 스펙터클한 영화를 보는 듯 심장이 쫄깃해지면서 내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졌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그 누구도 힘 빼라고 소리치지 않았다고, 그의 귓가에 쩌렁쩌렁 울린 그 소리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미스터리다!
나의 삶의 모든 사람들, 모든 사건이 내게 온 이유는 그것들을 내가 끌고 왔기 때문이다. 그걸로 뭘 할지 전적으로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원하는 어떤 방식으로든 저항할 자유가 있다는 것 또한 안다. 선택, 선택인 것이다.
상처를 받고 말지도 내가 결정한다. 나의 선택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자유, 즉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은 어디서, 언제 얻으려나?
모두에게 진실한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온 생애 유일한 나의 의무는 스스로에게 진실할 것.
뼛속 깊이, 진정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자신이 가짜로 원하는 건 아무리 풍족하더라도 부족함을 느낀다. 스스로를 속이는 진정한 허기와 갈망이랄까? 돈, 인기, 인정, 성취?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착각 속에 여전히 불행하다. 에고의 저항에 몸부림치는 내가 있을 뿐이다.
죽을 만큼 아픈 사랑이라 말한 들, 이 세상 어디에도 도망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큰 문제란 없는 법이다. 하지만 나의 행복이 다른 누군가의 행동에 달려 있는 거라면, 정말 뭔가 문제가 있는 거겠지?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바깥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 행복은 바로 내 안에 지금 있다. 창조하거나, 일을 함께 도모하거나,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혹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선택함으로써 삶은 가치가 있고 평화와 행복이 있다.
역설적으로 진정한 삶의 의미는 내면이나 정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 사회로 나와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가 될 때,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을 느낀다. 이 경험이야 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리... 나 자신이 아닌, 내 눈앞에 서있는 사람, 바로 내가 온전히 내어줄 세상이다!
서로의 삶 속에 어우러진 존경과 기쁨의 유대, 이것은 피의 유대보다도 진정하다.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더 인간다워지며, 참 자유를 얻고, 자기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다.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써 주어지기에…
더 이상 기적이 아니라는 걸 마침내 알게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기적은 일어난다. 바라는 게 무엇이든 어떤 모습으로든 펼쳐진다. 그때마다 알아차리지 못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