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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장군 Jan 04. 2021

뉴질랜드의 크리스마스와 연말

뉴질랜드에서 생각을 보내요

미리미리 크리스마스(?)

오클랜드의 가장 큰 크리스마스 행사라고 하면, 파머스(Farmers') 백화점의 산타 퍼레이드이다. 각종 캐릭터 및 치어리더들, 오케스트라 그룹, 그리고 산타할아버지가 시내 중심대로인 퀸 스트리트를 행진하는 이벤트인데, 수천, 수만 명의 시민들이 구경하고 즐긴다.
https://www.santaparade.co.nz/

재밌는 것은 이 퍼레이드가 열리는 날짜가 11월 말이라는 것이다. '아니,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면 크리스마스 때 하는 거 아니야? 외딴 나라라서 산타가 빨리 왔다 간다는 건가?' 너무 궁금했다. 이 뿐이 아니었다. 쇼핑몰, 구립 도서관 등등에도 산타가 친히 왕림하시긴 하는데, 다 11월 말에 시작했다가 대부분 정작 크리스마스 훨씬 전에 철수하신다(?!).

아이들이 친구들을 초대해서 여는 크리스마스 파티도 다 12월 초중반이면 끝이 난다. S와 M도 올해 코로나 19 락다운으로 생일파티를 다 취소해야 했어서 짠한 마음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대신 열어줬는데, 이 분위기에 맞춰 12월 6일에 치렀다.(사진)

가족의 시간, 크리스마스와 연말

과연 크리스마스의 모든 것들이 다 미리 끝나버리는 걸까? 그런 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산타의 선물)를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은 모두 같아서, 12월 1일부터 24일간 매일매일 달력을 한 칸 한 칸 열어보며 간식거리나 글귀, 작은 선물을 찾을 수 있는 Advent Calendar도 12월의 문화이다. 집집마다 이 캘린더를 걸어두고 하루씩 세면서 아이들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쌓이는 부모님과 친척들의 선물과, 선물 대왕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린다. 즉, 산타의 선물은 분명 25일 아침에 온다! 그리고 다른 모든 선물도 그 날 아침에 풀어볼 수 있다. 아이들의 세상 행복한 순간...!!

크리스마스에 어른들은 뭘 할까? 슈퍼마켓 체인마다 크리스마스 만찬 준비 프로모션이 한창이다. 영국 문화의 영향 하에 보통 아주 큰 햄(돼지 뒷다리살), 또는 구운 칠면조를 썰어먹고 후식으로는 달디 단 전통음식 파블로바(Pavlova)이나 푸딩 등을 먹는다. 이 만찬을 집집마다 준비해서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가족도 함께 모여 즐기는 시간, 그것이 이 곳의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는 특징이 더해져, 뒤뜰에 나가 BBQ 그릴에 소시지와 야채를 구워 먹기도 한다. 체리와 딸기 철이라 이 제철 과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기도 하고, Dips라는 허머스 콩과 각종 야채를 갈아 넣은 소스와, 핑거푸드들을 플래터로 만들어 즐기기도 한다. (아래 내 맘대로 참고 사이트들)
https://www.travelsofabookpacker.com/blog/christmas-in-new-zealand
https://www.tourism.net.nz/featured-events/2009/christmas-in-new-zealand.html
https://eatwellnz.co.nz/easy-ideas-creating-ultimate-entertaining-platter/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연말은 가족이 늘어져서 푹-쉬는 시간이다. 우리 회사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연말 연초(1월 4일 정도까지) 약 2주 반을 오피스 문을 닫고 강제휴가를 준다. (야호!) 이때 거의 모든 키위들은 별장 개념인 홀리데이 홈에 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가족캠핑을 가거나.. 그런 것 같다. 오클랜드 시내에는 거의 아무도 없다. 첫 해 연말, 우리 가족은 오클랜드를 홀로 지키며(?) 동물원을 가도 전세, 식당을 가도 전세 내며 신나게 한적함을 즐겼더랬다.

우리 가족의 연말 캠핑

코로나 19로 안타깝게도 친한 친구들과 가족 아무도 올 수 없게 되면서, 우리 가족도 여행 계획을 다시 짰다. 얼마 전 시작한 텐트 캠핑으로 두 번째 여행이다. 오클랜드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카우리 숲 근처 호수 캠핑장에서 2박, 더 올라가 파이히아 캠핑장에서 3박, 돌아오면서 오클랜드 북쪽 해변 캠핑장에서 1박 글램핑을 하고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만 7세, 3세 남자아이 둘과 함께. 남편과 둘이 텐트를 치고, 매 끼를 해 먹고, 근처 해변과 수영장에서 놀고, 공용화장실과 샤워장에서 씻고, 텐트에서 잔다. 물론 하루 프로그램으로 요트도 타보고, 러셀 시내에 놀러 가 엄청 좋은 레스토랑 가서 한 끼 먹기도 했다.

우리가 가 본 캠핑장에는 보통 캠퍼밴이 반, 텐트가 반 정도였다. 보트를 끌고 오거나 자동차에 캠핑 유닛을 붙여 다니는 집도 있었다. 캠퍼밴은 주차하고도 지정된 면적의 반 정도가 남는데, 다들 큰 천막을 치고 그 안을 거실 및 식당으로 이용하는 가족들이 많았다. 아직 캠 알못인 우리가 한 시간이 넘게 끙끙대고 텐트를 치고 있으니 갑자기 장정 한 분이 나타나서 뚝딱뚝딱 텐트를 같이 쳐주고는 휘리릭 사라지기도 했고, 식당에서 아이들 챙기랴 음식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우릴 보고는 자신들이 막 구운 패스트리를 나눠주는 친절한 커플도 있었다. 저녁 캠핑장 갬성의 핵심은 음악이라, 옆집 천막에 크리스마스 불빛을 두르고 기타를 연주하는 소리, 건너편 텐트에는 쿵쿵 울리는 비트에 춤을 추는 친구들도 있었다.

주재원 가족으로 때로 느껴지던 고립감도, 이 열린 캠핑장에서는 뭔가 사르륵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새벽 5시 반부터 아름답다 못해 시끄러운 (이 새들의 나라) 오만 새들의 합창에 깨서 공용화장실에 갈 때 눈 비비며 인사하던 순간, 별이 쏟아지던 밤 와인 한 잔 하며 남편과 속 얘기를 하던 순간, BBQ 그릴에서 나던 소시지의 향 모두 매력적이었다.

어제 집에 돌아와, 다시 와이파이가 터지고, 너른 집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니 역시 문명이 좋았다. 시내에 나가 우리 가족의 단골 식당에서 단골 메뉴를 먹고, 박싱 데이(1년에 한 번 가장 크게 열리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연말 세일)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 마음에 드는 옷과 화장품을 샀다. 물론, 제일 좋은 건 침낭 안에 넷이 딱 붙어자던 텐트와 달리, 따뜻한 이불이 있는 넓고 편한 침대였다.  

이제 남은 연말연시 동안 무계획으로 잉여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빡빡하지 않게, 느슨하게. 올해, 전체적으로 이상했고 그래서 안 이상한(평범한) 순간들이 더 감사했던 이 시간들을 천천히 놓아주고, 내년에는 더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희망은 갖되, 너무 절박하게 원하지는 않기로 한다. 건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긴다는 게, 즉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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