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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장군 Nov 08. 2020

R U Okay?

뉴질랜드에서 생각을 보내요(9월에 쓴 글)

정신건강 관심 주간(Mental Health Awareness Week)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매년 9월의 한 주를 '정신건강 관심주간'으로 지정하고 1주일 내내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 중요성 등을 알리고 관련 이벤트를 개최한다. 우리 회사도 지난 주 내내 정신건강에 대한 팟캐스트 및 음악 추천, 당신이 정신적으로 겪을 수 있는 어려운 상황들 등등을 보내주었다.
https://www.ruok.org.au/join-r-u-ok-day


  백미는 목요일에 열린 랜덤 커피챗(Random Coffee Chat)이었다. 회사에서 랜덤으로 배정해주는 낯선 사람과 커피   놓고 1:1 "R U Okay?"라는 질문을 서로 던져보며 대화를 시키는 이벤트다.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편하게 느껴질  있기 때문에 권장한단다. (물론 Covid-19 모두 재택근무 중이므로 화상회의 모드다.)

 전에 모두에게 트레이닝으로 "R U Okay?"라는 질문을 어떻게 묻고 답할 것인지 행동요령을 알려준다. 핵심은 '(상대가 어떤 문제를 털어놓더라도) 결코 너보고 상담을 하라는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가 말하는 이슈에 직접 개입하지 말고, '그런 일이 있었다니 정말 견뎌내기 쉽지 않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네가 이야기할  있다는  정말 다행이다'  경청으로 받아들여질  있는 멘트() 답하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다면 '이런 이런 지원기관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도움을 청해보는  어떨까?   고려해보면 좋겠다' 정도로 조언해주라고 한다. , '나도 겪어봤어', ' 정도보다  힘든 일도 있는  인생이잖아' 등의 절대 하지 말아야  멘트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캘린더에 뉴질랜드 직원 지원센터(EAP, Employee Assistance Program라는 정부 유관기관)에서 진행하는 '매니저를 위한 정신건강 관련 훈련' 잡혀있었다.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경우의 종류(크게 불안증과 우울증)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직원을 위해 허용되는 (, 업무 순환, 유연업무형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성과가 계속 저하되는 경우 취할  있는 방법까지.. 생각도 못해본 이야기들을 굉장히 진지하게 들려주었다.

올해는 특히,  정신적으로 힘든 계기가  사람이거나 그게 신경을 지배할 정도가 아니어도 거의 모두가 Covid 19으로 전례없이 힘드니까 R U Okay?라고 묻고 진심으로 경청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역시 물어보는 방법이나, 대답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었고, 하지 말아야  말들/태도들(, 적어도 5-10분간  꺼두고 다른   제쳐두고, 절대 바쁜 척하지 말라는 ) 알려주었다.**


내가 보낸 한 주

나는 Coffee Chat은 미리 신청해야 하는 줄 모르고 있다 놓쳤지만, 이 일주일의 분위기에 힘입어 더 많은 속얘기를 할 수 있었다. R U Okay?라고 물어봐도 되는 주간, 그리고 그게 권장되는 주간에는 확실히 조금 더 상대방에게 속얘기를 해도 될 것 같고,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호주의 어떤 세일즈맨과 업무 콜을 시작하면서 '요즘 어떻게 지내냐, R U Okay?'하고 물어보다가, Covid가 어떤 날은 괜찮지만 다른 날은 엄청 답답하게 느껴진다... 부터 해서 국경이 막히니까 때로 고립감이 느껴진다. 비행기를 탈 수 있는데 한국에 '안' 가는 거랑 돈이 있어도 국경을 막아서 '못' 가는 거랑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는 이야기, 서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휴가 취소해야만 했던 이야기(비행기/숙박비 날린 얘기 등)를 나누면서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사실 굉장히 뻔한 얘기지만 누군가와 1:1로 그 순간에 내가 느끼는 느낌을 솔직히 나눌 수 있다는 게 마음을, 그 순간의 기억을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다.


다들 자기 살기 바쁘고, 상대방도 그럴 거라 짐작되는 관계에서 누가 R U Okay?라는 질문을 던지기가 쉬울까? 던져도 '네 괜찮아요'라고 99%가 대답하겠지. 그 질문을 받는다고 그 자리에서 크게 생각해볼 시간을 자신에게 줄 수도 없고.

하지만 이렇게 '우리는 다 하나의 인간이고 인간의 정신건강은 사실 여린 거니까 걱정마' (It's okay not to be okay all the time)이라고 얘기해주는 주간이 있다는 것. 스스로에게, 상대방에게 R U Okay?인지 물어보고 답해보려고 해보고, 그걸 제대로 들어줄 거라는 믿음과 시간이 확보되는 건 사실 꽤나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뻔한 얘기라도 내가 느끼는 걸 내 입으로 말하고, 내 앞에 앉은 저 사람만의 이야기를 잘 듣고 서로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게 사실 그 한 명 한 명에게는 꽤 힘이 될 것이다.

https://images.app.goo.gl/gQM2yuyxcC4EewiNA


나에게 이게 좋았던 점은, 나도 진짜로 사람의 정신은 사실 꽤 부서지기 쉽다(vulnerable)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만큼 믿지 말아야 할 것도 없지만 그 누가 감정의 노예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정신적으로 자신의 문제신호를 일찍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 누구도 항상 100% '정상'일 수 없지만, 정상범위를 벗어난 증상이 나타나면 그게 신경에 영향을 미쳐서 더 이상 내가 내 행동과 생각을 통제불가능한 상황으로 들어설 수 있다. 그 때는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이런 주간의 의미는 약한 형태의 건강검진과 같은 역할이 아닐까. 그렇지만 나만 고립되서 MRI 찍어보는 형태가 아니라, 누군가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내 얘기를 들어주려는 의지가 있고,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게 포인트다. 이 경우에 징후는 병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집중적인 관리(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R U Okay?라고 우선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길.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내서 따뜻하게 물어봐줄 수 있길. 나에게 마음을 열고 속얘기를 해준다면 진심으로 듣고, 이야기 해줘서 고맙다, 힘들어도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줄 수 있길.  

——————
*이건 너에 대한 게 아니다. 너의 경험은 상대의 경험과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걸 숙지하라고 한다(It's not about you. Your experience is far different from that person's)

**곁가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피스로 출근하는 게 가정폭력을 피하는 도피처이기도 한데, Covid 때문에 모두가 재택근무로 전환되면서 그런 위협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도 약간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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