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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Apr 18. 2023

50대만 가득한 한직에 발령 받은 신입사원 이야기

어른스러운 어른이 된다는 것

20대 때 처음 발령받은 팀에서 만 4년을 넘게 있었다. 1년이 지나자 그 팀을 슬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2년이 지나자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3년이 지나자 '아 이번에도 팀 못 옮기면 회사를 옮기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내가 취업하던 해에 나는 소위 말하는 한직에 발령받았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나빴다고 해야 하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운이 나빴다고 표현하련다. 월급쟁이로 한직에서 버티는 것은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그럼에도 신입사원부터 대리까지는 여러모로 한직은 별로인 것 같다. 한직에는 일이 덜 힘든 만큼 다른 게 힘들기 때문.



첫 출근을 해보니 임금피크제를 코 앞에 둔 50대 아저씨 아주머니들 사이에 나 홀로 20대. 모두 차장님 과장님이고 나만 사원. 수개월 간 연수와 프로젝트 때 내 또래의 동료들과 함께 했는데, 엄마아빠뻘의 어르신들이랑 어떻게 지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나는 사무실에서 사무치게 외로울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겪어보니 의외의 복병은 다른 것이었다. 바로 어르신들 특유의 오지랖.



"아버지는 뭐 하시고?"

"부모님이 맞벌이시라고? 그럼 어머니는 뭐 하시고?"

"남자친구는 있어?"

"남자친구 직업은 뭐야?"

"오늘 화사하게 입었네~ 퇴근하고 어디 가?"

호구조사를 겸한 참 별 것 아닌 질문들인데도 내 대답이 원치 않는 이목을 끄는 것을 발견했다. 대략 100명 되는 인원 중 홀로 20대이다 보니 그럴 만도. 20대 신입사원인 내 존재 자체가 재밋거리이자 화젯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도, 저렇게 대답해도 뭔가 화장실 갔다가 뒤를 안 닦은 마냥 찝찝한 기분이었다. 



나는 입사한 다음 해에 결혼했다. 결혼을 한다니 결혼을 빌미로 더 많은 노골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벌써 결혼해? 왜, 혹시 사고 쳤어?"

"신혼집은 어디야? 자가야 전세야?"

"예물, 예단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또래에 비해 빠른 결혼에 모두 놀랐는지, 내심 사고 친 결혼이라고 짐짓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쳤어?"라니. 아무리 내가 그들보다 30살 가까이 어리다지만, 무례는 무례다. 나는 사실대로 사고 치지 않았다고 대답했지만, 그들에게서 눈빛에서 여전한 의심의 눈초리를 읽었다.

갓 결혼하는 사원급의 자산 상황은 뭐 그리들 궁금해하시는지. 하나의 질문에 답하면 꼬리를 물고 더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신혼부부가 되었다. 신혼이 되니 이제 다른 고나리질이 끼어들었다.

"좀 더 지나 봐. 애까지 낳아봐. 서로 소 닭 보듯이 한다니까?"

"돈 관리는 누가 해? 돈 관리 그거 해봤자야. 결국 되는대로 산다니까?"

갓 결혼한 나에게 인생 살만큼 살았다는 직장 동료들은 마치 나의 불행을 염원하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내가 살아보니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 마치 자신 인생의 불만족이 내 인생에서 되풀이되기를 바라는 말투였다. 나는 그때부터 그저 나에게 관심을 꺼주기를 바랐다.



우리 부부는 1년 간 신혼기를 가졌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는 것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 후 1년 간 임신했다는 소식이 없자, 어르신들은 또 수군댔다. 그 와중 약간 철없던 캐릭터의 50대 여자 차장님이 내게 경박스럽게도 물었다.

"결혼한 지 꽤 되지 않았어? 아이가 안 생기는 거야? 아니면 의도적으로 안 만드는 거야?"



주변 어르신들의 염원(?) 대로 임신한 나는 또 다른 고나리질에 시달려야 했다.

"산후조리원 비용은 시댁에서 대주신대?"

"모유수유 해야 해. 그래야 아기가 잘 커."

출산 휴가 전 마지막 출근 날 여자휴게실에서 한 여자 차장님은 나를 붙들고 오래도록 얘기했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말이야. 산후조리원 그거 가지 마. 차라리 집에 산후도우미를 불러. 그게 산모한테도 아이한테도 훨씬 나아."

마지막 출근날까지 산후조리원을 가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듣고 머리가 지끈지끈하여 퇴근했던 기억이 난다.



20대에 50대만 수두룩한 조직에서 겪었던 이 숱한 일화들은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의 빌미가 되었다. 

"상대가 나보다 어릴지라도, 상대가 나보다 어수룩해 보일지라도, 선을 넘지 않는 어른이 되겠다."



물론 돌이켜 보면 그 와중에 정말 어른스러운 어른들도 있었다. 100명 가까이 되는 인원 중 다섯 명이 채 안되었지만 말이다. 그들 중 한 분은 결혼을 앞둔 내게 고나리질 대신 부부간의 의사소통 시 참고하면 좋을 책을 선물해 주셨다. 더할 나위 없이 감사했고, 그 책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집 책장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살아온 경험이 쌓인다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아집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지혜가 된다. 켜켜이 쌓이는 삶이 지혜가 될 수 있도록 살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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