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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Jun 27. 2022

콩국수와 수박

무더웠던 2018년의 여름의 기억

2018년 초여름, 첫 아이를 출산했다. 막 더워지기 직전 무렵, 아직은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함이 느껴지는 때였다. 산후조리원을 나온 후, 아기와 친정으로 향했다. 첫 아이를 기르는 긴장감과 두려움이 앞서 친정에 기대기로 한 것이다. 처음 겪는 육아에 잠은 잠대로 못자고, 모유수유는 모유수유대로 힘들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아기를 키우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 매일매일 깨닫는 하루였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인류 보편적인 행위라는 것에 새삼 신기함을 느끼는 터였다.


친정에 머물면서 한 가지 위로가 되었던 점은 삼시세끼 식사였다. 만약 산후조리원 나온 후 바로 신혼집으로 들어갔다면, 세끼는 커녕 한끼도 제대로 먹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친정에서의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어찌나 더워지는지, 예사 더위가 아니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라며 떠들어댔다. 100일 안 된 아기를 매일같이 안아서 달래고 안아서 수유해야 하는데 더위가 참 원망스러웠다.



따끈한 미역국만 먹은 지 꽤나 된 시점이었다. 친정엄마가 콩을 직접 갈아서 시원하게 콩국수를 말아주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감히 내 생에 최고의 콩국수라 말할 수 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아기를 안고 씨름하다가 먹어서 그런건지, 산모라고 따뜻한 음식만 먹다가 차가운 음식을 먹어서 그런건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 때의 그 콩국수 맛을 절대 잊을 수 없다.


한참 지난 이후에 그 때의 그 콩국수 맛이 그리워서,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여의도의 콩국수집에 방문했다. '너라면 내 생에 최고의 콩국수 자리를 뺏을 수 있지 않을까?' 결과는 KO. 엄마가 콩을 직접 갈아서 말아준 그 콩국수를 이길 수는 없었다. (물론 유명 맛집답게 맛은 무척 있었다!)



2018년 폭염 무렵 내가 또 빠져 있었던 음식은 수박이었다. 친정엄마아빠가 농산물도매시장에서 10kg는 되어보이는 커다란 수박을 사왔다. 남편과 둘이 살면서 신혼집에서 내가 시키던 6kg짜리 수박과 클라스가 다른 거대수박이었다. 김치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한 수박을 먹으면 어찌나 맛있던지. 특히 수유 후에 야식으로 수박을 자주 먹었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내가 워낙 수박을 잘 먹으니, 10kg짜리 수박을 사도 동나기 일쑤였고, 엄마아빠는 수박을 사서 나르느라 바빴다.



2018년 그 해 여름을 돌이켜보면, 정말 더웠고 정말 힘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친정식구와 정말 많이 웃었고, 정말 행복했다. 첫 아이의 생경함과 신비로움을 가족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이 아이를 키워가나.' 생각하며 눈물짓던 밤의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가족들과 웃고 떠들고 콩국수랑 수박을 맘껏 먹은 기억이 훨씬 진하게 남았다. 조만간 친정에 간면 엄마한테 꼭 콩국수랑 수박 먹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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