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가를 낸 김에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며칠 묵었다. 집에서는 나랑 잘 자던 아이들이 괜히 외할머니도 함께 자겠다고 잠자리로 외할머니를 불러들였다. "외할머니도 같이 자야 돼. 여기 누워." 외할머니와 함께 하는 잠자리에서 아이들이 빨리 잠들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외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가 시작되기 때문. 아이들은 재밌는 이야기에 신나고, 외할머니 특유의 오버스러운 억양으로 실감 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까지 옆에서 피식피식 웃게 된다.
그날 밤 들은 제비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글로 적어 본다. 아이들의 외할머니이자 나의 친정엄마는 천성이 이야기꾼이어서, 이를 글로써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함이 슬플 뿐이다. 직접 들어야 제 맛이거늘.
우리 가족이 친정에 방문하기 일주일 전, 친정엄마는 본인의 친정인 외갓집에서 며칠 묵고 왔다. 외갓집은 시골집이다. 논밭이 펼쳐진 마을 한 어귀에 자리 잡은 외갓집은 겨울이면 처마 끝에 고드름이 달리고, 가을이면 마당 감나무에 주렁주렁 감이 열리는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외갓집 지붕 아래에는 제비가족이 둥지를 트고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친정엄마는 오래간만에 보는 제비집이 신기해서 외갓집에 머무는 동안 자주 쳐다봤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둥지에는 어린 아기 제비들이 있었다. 지붕 아래 높이 달려있어서 자세히 살펴보기는 어려웠지만, 짹짹대는 소리를 들어보니 꽤나 여러 마리를 낳아 놓은 모양이었다.
"그 아기 제비들이 크느라 계속 배가 고픈 모양이야. 엄마 제비랑 아빠 제비가 얼마나 자주 먹이를 물어다 주는지. 먹이를 가지고 한 놈 먹이고, 그러고 또 포르르 날아서 먹이를 가지러 가고. 다시 와서 또 한 놈 먹이고, 다시 또 먹이 가지러 가고. 그렇게 바쁠 수가 없어."
"그렇게 열심히 먹이다 보니깐 글쎄. 조그마했던 아기 제비들이 쑥쑥 자라 버린 거야. 거기 머무는 그 며칠 사이에 말이야. 아기 제비들이 너무 쑥쑥 자라다 보니, 아기 제비들이 둥지에 꽉 차 버렸어. 이미 지어놓은 제비 둥지가 그만 작아져버린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 제비랑 아빠 제비는 잘 곳이 없어져 버렸어."
이야기가 이쯤 다다르니, 아기들이 커서 둥지에서 잘 수 없게 된 버린 엄마 제비랑 아빠 제비는 과연 어디서 잠을 청했을지 궁금해졌다.
"엄마 제비, 아빠 제비는 어디서 자는지 궁금해서 내가 밤에 나가서 살펴봤잖니. 세상에, 평상 위를 가로지르는 빨랫줄에서 엄마 제비랑 아빠 제비가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고. 어찌나 위태로운 모양새로 잠들어 있던지. 그거 보면서 눈물이 나더라."
제비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눈물이 날 뻔했다. 모성과 부성은 어찌 이렇게 강력한 동물적 본능으로 각인되어 있는 걸까. 바쁘게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제비 부부의 모습을 떠올리니, 매일 아침 출근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겹쳤다. 제비한테 처연한 마음이 들었다. '너희도 아기 제비 키우느라 참 고생이 많구나.' 안락한 둥지 한 켠을 내주고 빨랫줄에서 꾸벅꾸벅 잠을 청하는 제비 부부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런 상황이면 나와 남편 역시도 아이들에게 가장 안락한 보금자리를 내주리라.
받아도 받아도 부족한 마음이 자식의 마음이고, 줘도 줘도 부족한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란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줘도 줘도 부족한 마음이 무엇인지 경험해 본 바가 없었다. 줘도 줘도 부족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부모가 되기 전에는 받는 사랑이 주는 행복은 알았으나, 주는 사랑이 주는 벅참은 몰랐었다. 좋은 것도 사랑도 줘도 줘도 더 주고 싶은 마음, 주면 줄수록 벅찬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나 진짜 부모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