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하양 Mar 20. 2024

회사의 '통보'가 불편한 나, 정상인가요.


퇴사 8개월 차,
이제야 재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그 긴 기간을 내리 놀고먹지는 않았다. 이력서를 넣고 달에 몇 번씩 면접을 보고, 서류부터 최종면접까지 총 두 달이 걸리는 회사의 채용에 집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벌어들이는 수입 없이 먹고 쓰는 백수의 최소한의 양심이 어린 행위일 뿐이었으며, 지원한 회사가 내 이력서를 열람하지 않거나 최종면접에서 미끄러지는 경우에도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게 된 건, 잊고 있던 통장의 잔고를 확인한 뒤였다.








오래 버틴 편이라 생각한다. 회사 생활을 하던 2년 동안, 한 달 생활비를 50만 원 선으로 조절하며 짠내 나게 버틴 덕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샐러드와 요거트를 만들어 먹으면서 드라마틱하게 식비를 줄였기에 가능했다. (양상추와 토마토, 견과류, 우유, 계란, 버섯 정도만 구입하던 시절이다.)



SNS에 어리고 예쁜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젊음을 만끽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처량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당시 나에겐 목표가 있었다. 손바닥만 한 방에서 벗어나는 것, 조금 더 공간이 있는 전셋집으로 이사하는 것, 그래서 내 고양이가 사냥놀이를 하다가 책상에 가슴을 부닥치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목표. 








하지만 사회 초년생에게 현실은 꽤나 살벌했다. 억에 다르는 도시 외곽의 전세금을 보니 앞으로 몇 년은 이런 생활을 반복해야 할 판이었다. 다이어트도 하고 좋지, 가련한 자기 세뇌를 하며 끝이 시들어가던 샐러드를 씹어 넘겼다. 한 가지 덕을 본 게 있다면 평생의 고민이었던 하체의 살들이 모조리 떨어져 나가 인생 최저 몸무게를 달성했다는 것일까. 어쨌든 원하는 무엇이라도 이루었으니 실패한 경험은 아니었겠지.










가난한 속사정이 서류에서 드러났는지, 몇 달 후 청년 주택 입주자로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약 1년 후, 나는 넓은 집으로 이사를 마쳤다. 공간에 맞춰 가구를 구입하고 생활에 정착하기까지 꽤 많은 지출이 있었지만, 살뜰하게 알뜰하던 과거의 내 덕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8개월의 백수생활이란 짐까지 얹었더니, 더 이상 내 잔고도 버티지 못하고 자릿수를 증발시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과거의 내게 현재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에 이력서를 5개, 많게는 8개씩 넣는 '본격 취준'에 돌입했다.









채용 공고를 훑으며 회사별로 홈페이지를 탐색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얼마 전 이력서를 넣은 한 회사에서 온 문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주) 000 인사담당 000 대리입니다.
1차 00부 서류 전형 합격을 통보드립니다.






고작 두줄, 아니 두 음절 위에 빨간 깃발, 레드 플래그(red flag)가 펄럭이는 듯 했다. 중소, 중견, 대기업, 공기업 가리지 않고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치렀지만, 그 어디서도 '통보'라는 단어는 본 기억이 없었다. 내가 예민하게 구는 걸까 싶어 뒤따르는 다음 문장을 훑었다.







2차 면접일자를 아래와 같이 통보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세부 일정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 몇 줄에 눈이 멎어있었다. 산업 특성상 여전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최악의 첫인상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면접 자리가 그려졌다. 지극히 일방적인 질의응답 시간이 되겠구나. 지원자에게 '통보'하는 게 자연스러운 조직이니 말이다.









간략한 후기를 남기자면 내 추측이 맞았다. 오랜만에 면접 자리에서 호구조사를 당했고 내 혈육의 결혼 유무까지 묻는 이들 앞에서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업무와 관련 없는 사실마저도 '그들'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답변해야 하는 지독한 시간이었다. 집에서 거리도 가깝고 연봉이며 복지도 잘 갖춘 곳이었으나, 입사 제안을 거절했다. 그 조직에 속해있으면 언제고 사생활이 헤집어질 거라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했다.  









위 회사에서 문자를 받은 날, 몇 시간 텀을 두고 다른 회사에서도 서류 전형 합격 소식을 들었다. 대표가 직접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면접 대상자에게 링크를 첨부해 보내는, 그래도 젊은 사고방식의 회사 같았다.







안녕하세요, 서하양 님.
(주) 000의 채용담당자입니다.
00팀 채용에 관심을 두고 지원해 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리며, 면접 일정 및 방문 장소를 안내드리오니 아래 내용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이전과 같이 앞줄만 읽었는데 마음이 편안했다. 적어도 내게 앞선 기업은 맞지 않는 곳이란 확신이 들었다. 얼마 전 해당 기업의 면접을 치르고 왔다. 업무적, 성향적 질문을 주고받는 대화의 자리였다. 오랜만에 면접다운 면접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대표가 물었다. 지금까지 제안을 받은 곳을 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곧바로 위 회사의 면접이 떠올랐고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이상적인 환경의 회사는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포기했고, 물리적 조건을 갖춘 곳은 조직의 성향이나 문화가 제게 맞지 않다고 생각해 거절했습니다."

"어떤 걸 보고 부합하지 않는다 판단하셨나요?"

"채용 과정에서 사용하신 언어나 질문, 태도입니다."








취준생 주제에, 감히 임원진을 평가하려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면접은 회사와 구직자 모두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가 아니던가. 단어와 표현을 선택하는 과정엔 미처 다듬어지지 않은 성향과 무의식이 개입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그 '통보'회사에 점수를 줄 이유는 없었다. 다달이 통장에 꽂히는 월급으로 위로받을 수도 있었지만, 아직 나는 자존감이나 자존심이 더 중요한 모양이다.









당장 내 고양이와 길거리 생활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따듯한 침대와 찬장을 채운 라면 더미, 냉동실에 쌓아둔 쌀밥, 자릿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숫자로 채워진 통장이 있으니, 그냥 조금 더 고집부리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회사를 만날 수 있겠지, 막연하게 기대해 보며.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두려워하던 숏컷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