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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양 Jul 03. 2023

2년 전 받은 명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언제 어디서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첫 구직활동은 그야말로 “안일함” 그 자체였다.


무경력의 신입 주제에 감히 “지역” 필터를 “구(區)” 단위로 끼워넣다니. 매일 지옥철과 꽉꽉 막힌 도로를 오가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왜 수두룩 빽빽한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순박했달까, 용기가 가상했달까.




비슷해 보이는 문장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자기소개서를 돌렸다. 남들이 꿈꾸는 대기업은 내 깜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규모가 작지만 나름 실속 있는 곳에  들어가 텅 빈 경력란을 채우는 게 가장 현실적인 접근법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챙겨야 할 것들을 보장해 주는 곳이라 생각이 들면 면접에 나섰다.











물론 지원 공고에서 미처 걸러내지 못한, 몇몇 형편없는 회사에서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들은 적도 많았다. 화장이 “참 가볍다”는 당최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을 듣은 적도 있고, 어떤 때에는 마치 스물여섯에 가정방문을 당한 기분이 든 적도 있었다. 지금 사는 곳이 전세인지 월세인지, 부모님 직업이 무엇인지와 같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들이닥치던 가정방문 같은 그런 질문과 마주할 땐 처음부터 대기업 준비를 하지 않은 과거의 내가 후회스러웠다.




사실 그런 것쯤이야 지나고 나면 우스운 일이었다. 세상은 이렇게 넓고,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고, 그렇기에 아름다운 곳이다가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는 걸 한 번씩 일깨워주는 찰나의 회초리. 딱 그 정도의 경험으로 여기고 넘기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취준생 신분인 나에겐 면접장에서 마주한 한 마디는 하루의, 일주일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곤 했다. 대학과 사회,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애매함이랄지. 세월 따라 낡은 부모님의 동아줄을 여태껏 붙들고 있다는 미안함, 그러나 좀체 발 디딜 곳이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느끼는 불안함 같은 복잡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들쑤셔댔다.




더 솔직히는 그런 회사에도 무분별하게 간절해지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컸다. 그저 궁핍한 현재를 벗어나려고 쉬지 않고 채용 사이트의 새로고침을 눌러대는 게, 내 가치관과 동 떨어진 곳에서도 성실히 왼 내용을 읊어대는 게, 어쩌면 또 몰라하며 의미를 찾아내려 재고하던 게 되려 나를 다치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대체 나는 어떤 쓰임을 위해 태어난 걸까? 며칠을 준비한 면접이 그저 술자리 안주로 오를 썰에 그치면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고 그게 반복되면 끼니를 챙겨 먹으면서도, 벌어들이는 것도 없는 주제에 쌀만 축내네, 하며 조급함과 자기 멸시에 발을 동동거렸다.
 
 







그렇게 4개월이 흐르자 구직 사이트의 지역 필터는 인천시 00구에서 서울특별시, 경기도, 충청남도까지 추가되어 있었다. (많이 절실했다...) 장문의 한 채용 공고를 발견한 것도 그쯤이었다. 인원도 얼마 되지 않는, 분야도 꽤나 생소한, 작은 회사의 채용 소식이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이고, 어떤 사람을 찾는지, 우리와 적합한 사람인지 알 수 있도록 몇 가지 과제를 보내주었으면 한다는,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공고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글자 하나하나에 배어있는 꼼꼼함이 마음에 콕-하고 박혀 들었다.




이력서와 과제 제출을 위해선 꽤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할 듯싶었다. 자기소개서 질문의 결이 타 회사와는 확연히 달라서 새로이 구성해야 했고 과제를 위해서는 책부터 정독해야 할 판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곧 워드 창을 켜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 하나에 집중할 동안 눈 여겨본 여러 회사가 채용을 마감할 것이지만 어쩐지 진한 확신이 들었다. 채용 공고에 이런 글을 써내는 사람이라면, 설령 면접에서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무언가 배울 게 있을 거라는 확신.






차례로 지원서와 과제를 제출하고 얼마 후 나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면, 저희 기대에 충분히 부합하는 과제물은 아니었으나, 갖고 계신 가능성과 잠재력도 많으신 것 같아서 조금 더 하양 님의 역량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확인을 위해서 같은 과제를 가지고 자체 수정을 해보시도록 요청드리기로 했습니다.
 ...
 다만 수정을 하시는 것이 상당한 노고를 요하는 일이고, 수정을 하신 것만으로 이후 면접이나 채용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강제사항은 아닙니다. 편히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셔도 좋습니다 :)







마지막 문장을 보자 내 머릿속 계산기는 이미 현실의 숫자들을 빼고 더하기 시작했다. 다시 시간과의 눈치싸움을 시작할지, 그나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회사를 노릴지 결정해야 했다. 심란한 마음으로 제출한 과제 파일을 열어 스크롤을 내렸는데, 내 문장 옆에 갖가지 코멘트가 붙어있었다. 그 빨간 메모들을 읽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지원자 중 하나일지도 모르는데.





아쉬운 쪽이 우물 파는 법이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건 치사한 일이라고들 하지만, 취업을 희망한다는 이유로 그간 면접에서 일방적인 대화에도 침착하게 답하는 법을 배우고 낯선 무례함과 마주해도 적당히 넘겨야 했다. 그래서였는지 줄지어 달린, 살뜰하게 덧붙여진 코멘트들로부터 나는 어떤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내 “쓰임”을 진지하게 살펴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난 여전히 발판 없는 허공이지만 앞뒤로 몸짓하다 보면 다음 동아줄을 향해 뛸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 몸짓마다 불어오는 저항에 버거워하는 것도 전혀 부질없는 일은 아니라고 해주는 것 같아서.








면접이나 채용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화면에 띄워놓은 여러 회사 홈페이지 창을 모두 닫았다. 그럴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면접을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고 일주일 뒤 면접을 치렀다. 면접 후 사무실을 나섰을 땐, 두 시간가량이 흐른 뒤였다. 질문 수가 많기도 했지만 답변에 내 경험을 담다보니 가지 치듯 대화가 뻗어간 탓이었다. 면접관이었던 대표님과 번역가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경청해 주셨다. 나는 그곳에서 웃고, 울고, 진지해졌다가, 조금 가벼워지기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들었다. 딱딱하게 언 채로 면접장을 들어섰는데 두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온몸에 열이 폴폴 느껴질 정도로 경직이 풀린 상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건네받은 명함을 꺼내 한참 쳐다보았다. 감사함이 밀려들었다. 첫 구직활동, 풋내기 대학졸업생의 이야기를 꼼꼼히 들어주시던 게, 경험과 생각과 시선을 물어주신 게, 무엇보다 지원자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평가해주신 게 참 감사했다. 그동안 다른 면접장에서 마주한, 묘하게 지원자를 내려다보는 눈빛이나 무시하는 태도에 꽁해 있던 마음이 정말 눈녹듯 사라진 것 같았다. 가방을 뒤적여 지갑을 꺼낸 뒤, 그 속에 명함을 고이 끼워넣었다.








몇 주후, 합격 메일을 받았지만 최종적으로 다른 곳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감사함 반 죄송함 반으로 메일을 적었다.




...

** 실장님, ** 번역가님. 면접 날에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두 분 덕에 취준 생활에 있어 처음으로 따뜻한 기억이 생겼고, 그래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뵐 날이 있길 바라봅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기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할게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며칠 뒤, 핸드폰 화면을 빼곡히 채운 답신을 받았다. 또 한번, 채용공고에서 느꼈던 것처럼, 직접 만나뵈었을 때 본 것처럼 멋지고 다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잠깐이나마 하양 님과 진심으로 소통한 점,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과제를 보내주셨던 사실이 떠올라 감사한 마음이 더 들었답니다. 그리고 지금 하시는 모든 사이드 프로젝트와 음악의 꿈도 꾸준히 키우실 거라 믿어요. 어디서든, 언제든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혹여라도 서로 도움 주는 사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참, ** 씨도 다른 지원자들 마다하고 전폭적으로 하양 님과 일하고 싶다고 적극 주장하였더랬어요. 눈빛에 반했다나요 ㅎㅎㅎ 또, 언제 어디서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취업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종종 두 분의 인상이 떠오르거나 요즘처럼 이직을 준비하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 '중요 메일함'으로 들어가 메일을 곱씹어보곤 한다. 벌써 2년도 더 된 메일이지만, 읽고 나면 여전히 글에서 뜨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 같다. 꼭, 정말로, 언제 어디서든 뵐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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