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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양 Apr 04. 2021

말 한마디가 자꾸 나를 살린다

이런 완벽한 타이밍




면접관이 물었다.
지원자 본인의 단점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질문이 넘어온 뒤 3초,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솔직해질 것인가, 비겁하되 현명해질 것인가 결정해야 했다. 면접 몇 시간 전 새벽까지도 ‘5분 만에 면접관을 사로잡는 면접의 기술’과 비스무리한 워딩의 책을 훑으며 다른 이가 정성 들여 써놓은 정답에 가까운 무언가를 읊어댔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질문에 나는 고민에 빠진 것이었다.


멋들어진 수입 인테리어 자재들로 가득 찬 회사 내부에 잠시 시선을 돌린다. 생각하는 척 보여야 하기 때문에 너무 길어선 안된다. 곧, 다시 눈을 맞추고 진지한 듯 답한다.



-제 단점은 일에 대한 욕심이 커서…









쫄쫄 굶은 채로 두 번의 면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서울과 인천의 거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면접용 싸구려 구두에 갇힌 발톱이 자꾸만 안으로 파고드려 애쓰는 것 같았다. 집 현관에서 구두를 벗다 크게 휘청댔고, 균형을 잡으려다 오른쪽 발 뒤꿈치에 왼쪽 발가락을 부딪혔다. 멍이 든 곳을 꾸욱 누르 듯 발톱 안쪽에서부터 진한 고통이 느껴졌다. 괴로운 감각이다. 그런 류의 고통은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옅어질 때까지 아파해야 할 뿐. 쪼그려 앉아 발톱을 살폈지만 푸르댕댕한 멍은 보이지 않았다.  



집 바닥에 한참 쓰러져 있었다. 체력이고 기분이고 더 이상 내 것이 내 것이 아니었다. 내 것을 지나치게 소모하면서 독대할 가치가 있는 이들이었는가, 자문한 결과는 ‘혹시나’가 아니라 ‘역시나’였고 그래서 더 힘이 나질 않았다.






두 번째 회사는 아주 작은 규모의 무역회사였다. 면접 전날 오후 2시 30분경 전화가 왔고, 대표는 업체 이름만 말한 뒤 ‘본인이 궁금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내게 질문을 쏟아부었다. 나는 지금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답을 했다. 불쾌하지만 적당히 성실하게.


남자는 그날 오후에 면접을 보러 오라 했다. 당일 오후 2시 30분에, 당일 오후 면접을 제안받다니. 머리가 지끈거려서 오래돼 유통기한이 지났을지도 모르는 두통약을 그냥 집어삼켰다. 물 흐르 듯 이어지는 말에 마치 일주일 정도 여유기간을 받은 줄 알았다. 그를 거절하자 그다음 날로 면접을 제안했다. 5분 동안 이어진 취조에서 이미 나를 뽑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직감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야 했고, 그렇게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하루에 두 번의 면접을 치르게 됐다.








     -작가가 꿈입니까?

     -아, 네. 그냥... 꿈이죠.



원래 이용하던 채용 사이트가 아니어서, 희망 직종에 작가라 써두었던 것을 지우지 않았던 모양이다. 두 번째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내 이력서를 넘기며 대표가 물었다. 그 앞에서 나는 알량하게도, 글 쓰는 건 그저 먼 꿈일 뿐-이라 말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대표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이전까지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신입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채용에 공을 들이고 있단다. 이해한다. 이 묘한 기분을 설명하긴 어려우나 그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꿈은 지키지도 못하는 주제에, 처음 본 중소기업 사장이 꿈을 지키는 걸 이해한다고 말하는 내 꼴이 우스웠다.






바닥에 쏟아진 몸을 겨우 일으켜 냄비에 물을 올렸다. 대차게 진동하던 위가 소리 칠 힘도 없는지 잠잠해진 뒤였다. 미안해서 뜨끈한 국물로 달래주자 싶어 냉동실에 있는 우동면을 꺼냈다. 우동을 삶고 차가운 물에 씻어 받쳐놓고 육수를 끓였다. 김치를 썰어 넣고 김가루를 대충 뿌려준다. 좁은 방이 후덥지근한 공기와 김치우동 냄새로 가득 차고, 허기짐을 잊은 줄 알았던 위가 다시 바르르 떨어댔다.



-띠링



첫 번째 면접을 본 회사에서 온 합격 문자였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공고에 나와있는 직무도 아니었을뿐더러, 면접을 시작하자마자 대표는 면접자와 지원자의 관계를 제 멋대로 해석하여, 나의 부모님의 직장과 사는 곳과 형제관계 등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마음대로 침범해 헤집었다. 지방이 고향인 나에게 정확히 남도 출신인지, 북도 출신인지까지 캐물었다.




-오늘 면접 본 ***입니다. 제가 생각한 직무와 달라 입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셨는데 죄송...




손가락이 멈췄다.

하나도 죄송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쪽한테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을 지경이었다. 공고와 전혀 다른 직무에 대한 설명을 들으려고, 호구 조사를 당하려고, 자기소개서를 뜯어고치고 면접을 준비하고 부지런 떨며 화장하고 강남까지 간 게 아닌데.




-... 귀한 시간 내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전송.

맥 빠진다.

2주 간의 노력이 이렇게 또 날아간 것이다.






한숨을 푹 쉬었다.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펄펄 끓는 뻘건 육수에 왼손 절반을 데었다. 미치게 아픈데 아주 지긋지긋했다. 일주일 내내, 불운이 나를 가만두질 않는다. 흐르는 물에 열기를 식혔다. 저 찬물을 몸 전체에 다 뒤집어쓰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번 주말까지 드라마 대본을 완성해야 하는데, 상급반 진급이 걸려있는 중요한 숙제인데, 매일매일이 마감인 이력서에 밀린 내 꿈이 불쌍했다.


한 손을 찬물에 담그고 겨우 막 국물을 한술 떴다.






-띠링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브런치 알림이다. 아, 작가님이신가. 구독 중인 작가님께서는 하루에 몇 편씩 글을 올리신다.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욕심내 양을 늘리면 질이 떨어지는 나와는 다르다. 어떤 마음 가짐과 어떤 열정의 결과물인 걸까.



조회수가 천을 넘어있었다. 내 글이었다. (지)망생의 글에 이런 조회수라면 이유는 하나. 어딘가에 노출이 된 것일 테다. 이상하게, 마음이 잔잔해졌다. 조회수가 1만, 2만을 넘어 6만을 향해갈수록 나는 더 차분해졌다. 뜨끈한 국물을 넘기니 신물에 괴로워하던 위장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멎는다.




말도 안 되는 타이밍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그 알림 하나가 나를 다독여주는 느낌. 글을 쓰자고 마음을 다잡았던 계기도, 결국 누군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는데. 좋아하는 걸 취미로 남겨두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주제에 내 글이 읽힌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큰 위안을 받아버렸다. 고작 그것으로 이렇게 다시 내 것이 내 것이 된 기분이 들어버렸다.




발톱이 여전히 무언가에 눌린 것처럼 고통은 그대로였다. 화상을 입은 손가락들, 살 깊숙한 곳에서 뜨거움이 느껴져서 관절이 구부러지질 않았다. 그래도 대본을 썼다. 신기하게도 대본이 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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