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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양 Nov 25. 2021

저, 혹시 알레르기 있으세요?

그렇게 물었을 뿐인데.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자신의 체취가 묻어 있지 않은 낯선 공간에선 한껏 예민해지며, 그럴 땐 창문 밖 경적소리부터 탁자에 물컵 내려놓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극심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고양이에게 방광염과 같은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 집 고양이는 순둥한 개냥이임과 동시에 세상에서 제일가는 겁쟁이라,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이동장에 들어간 순간부터 다시 집에 돌아올 때까지 울음을 멈추는 법이 없다. 병을 고치려고 병원에 가는 것인데, 어째 가는 길에 스트레스를 받아 오히려 병을 얻는 건 아닌지 늘 걱정스럽다.



그러다 보니 긴 휴가가 주어져도 본가에 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분명 우리집 고양이는 낯선 환경과 소음에 잔뜩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 나는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며 이것의 울음을 그치게 하느라 땀범벅이 될 것이다. 이런 아이를 데리고 택시와 기차로 총 4시간이 넘게 걸리는 본가에 간다는 건, 정말, 상상만으로 진이 빠진다.







이번 추석에도 나는 못 갈거라 말뚝을 박아 놓았었다. 그러다 연휴 시작 일주일 전쯤이었나. 자기 전 고양이 동영상을 틀어놓았는데, 아이가 부리나케 TV 앞으로 달려가 냐옹-냐옹- 울어대는 게 아닌가. 지난해 시골집에 1년 간 머물렀을 때 만난 누룽지(시골집 고양이)가 떠오른 걸까.



좁은 원룸에, 변변치 않은 창문에, 관찰 거리라곤 주차장을 드나드는 자동차뿐인 집에 아이를 '가두어 놓았다'는 생각으로 늘 죄책감에 시달리던 터라 나는 그 울음소리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고작 일주일일지라도 온갖 벌레와 새와 누룽지가 찾아오는 곳에서 마음껏 뛰게 해주고 싶었다. 결심이 서자 나는 곧바로 시골집에 고양이 모래, 화장실, 사료 등을 주문했다.







하루라도 더 오래 시골집에 머무를 수 있도록 남은 연차를 긁어모았고, 피 터지는 KTX 티켓팅에도 성공했다. 출발 2시간 전, 건사료 약간과 안정제를 급여하고 며칠 전부터 꺼내 둔 이동장에 아이가 좋아하는 담요와 배변패드를 깐 후, 캣닢을 뿌려두었다. 옆으로 메는 내 가방에는 짜먹이는 간식과 약간의 물이 든 작은 유리병과 휴대용 물티슈와 캣닢이 들어있었다.




짐을 모두 챙긴 뒤, 자동 결제 택시를 이용해 출발지와 도착지를 미리 찍고 택시를 불렀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모든 정신이 이동장으로 쏠리기 때문에 지갑을 꺼내 결제하는 것조차도 버겁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절박한 순간에 정말 기술의 진보에 감사함을 느낀다.


한참 후 배차가 되었다는 문구가 뜨자 곧바로 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고양이와 함께 집을 나서기 전, 정말 마지막 루틴이었다.  






   안녕하세요, 기사님. 방금 광명역까지 자동 결제했는데요.

      -예, 지금 가고 있습니다. 3분이면 될 것 같네요.

   아 네, 그리고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어서 같이 갈 건데 저 혹시 알레르기 같은 거 있으실까요?















현관을 나서자 우리집 고영씨는 역시나 복도가 떠나가도록 울기 시작했다. 그래, 미안해. 엄마가 차가 없어. 흑흑. 나도 정말 울고 싶었다. 곧 예약 문구를 건 택시가 내 앞에 멈춰 섰고 나는 이동장을 내린 뒤 차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예, 어서 오세요.



먀옹-먀옹-, 아이는 여전히 날카롭게 울어댔다. 어쩌면 기차역까지 아니,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렇게 울어재낄 생각이신가 보다 하는 불길한 예감이 스치자 마음이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했다.


백미러로 이동장을 훑어보시는 시선에 겉에 덮어놓은 담요를 그러쥐었다. 짧지만은 않은 길인데 까랑까랑한 울음소리에 힘드실 걸 알기에, 멋쩍게 웃으며 선수 치듯 사과의 말을 전했다.







  목소리가 좀 크죠..? 죄송해요. 이 친구가 밖을 워낙 무서워해서요.

    -동물들 하는 게 마음대로 되나요.








하, 감동... 아마 그때 내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을 거다. 고양이는 다른 생명체들보다도 미움을 많이 받곤 하니까. 이렇게 개인의 불유쾌한 경험들이 하나 둘 모이다 보면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질 수 있는 거니까.

전전긍긍하며 마스크 안에서 잘근잘근 입술을 씹어대다가 기사님의 한 마디에 그제야 입질을 멈출 수 있었다. 동물하고 가까이 지내시는 분인 걸까, 속으로 그런 추측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참 동물을 싫어하는데.


단호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아아, 그러시구나-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지만 괜히 심장이 쫄깃했다. 사람의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존재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안함이 들 때가 많다. 식당에서 아기가 소리 내어 울 때, 굳이 돌아보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감사해요. 연휴 이틀 전인데도 차 배정이 잘 안되더라고요.

     -제가 감사하죠, 고양이랑 같이 탄다고 미리 전화도 주시고.

    아.. 얘 울음소리가 좀 크기도 하고 혹시 알레르기 있으실지도 몰라서요.  

     -기사들 알레르기까지 걱정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기사님께 드린 말을 도로 받게 되니, 나는 아주 잠깐 고장(..!)이 나서 아잇...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요..? 하고 얼버부렸고 기사님께서는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요, 라고 답하셨다.




꽤 오랜 기간 택시 일을 해오시면서 무작정 반려동물을 품에 안고 택시에 오르거나, 시트에 간식이나 흙먼지를 묻히거나, "저희 애는 안 그래요"를 시전 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았고, 최근에는 마스크 문제까지 더해져 별의별 유형의 인간을 다 만나고 있다며 고개를 저으셨다.






    -그래서 동물이 아주 싫더라고.

  그러실 수 있겠네요.

    -근데 이렇게 이동장에 잘 넣고 지킬 거 다 지켜주면 내가 손님 고양이를 싫어할 이유는 없는 거지.

   감사합니다.






그러쥐었던 담요를 놓고 손바닥으로 주름을 문질렀다. 기사님의 그 말씀이 내게 약간의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좁은 택시 안, 한 대상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함께 있었지만 어느 쪽도 표정을 일그러뜨리거나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이런 평안함이 택시 바깥, 조금 더 넓은 세상까지도 이어지길 잠시 바랐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과,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평생 섞여 살게 될 것이다. 타인의 좋고 싫음의 이유를 진실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고 때로는 공감조차 어려울 때가 있을 테다.


그럼에도 함께 살고 있으므로, 함께 살아가야 하므로, 서로의 좋고 싫음이 부딪히는 순간에, 누군가는 지킬 걸 지키고 또 누군가는 지킬 걸 지켜주는 상대에게 조금은 온화한 표정으로 답해주며, 그렇게 나의 평안한 평생과 상대의 평안한 평생을 함께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일 났네. 까딱하면 기차 놓치겠는데요.






기사님의 한마디에 생각에 잠겨있다가 또다른 한 마디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택시는 좀처럼 잘 움직이지 못했다. 연휴가 시작되기 이틀 전이었지만 벌써부터 이동 차량이 넘쳐났다. 내비게이션 상 도착 예정 시간은 기차 출발 시간을 8분 남짓 초과한 상태였다.



놓치면 표도 없을 텐데 어떡합니까-, 하는 걱정스러운 물음에, 어쩔 수 없죠, 제가 더 일찍 나왔어야 하나 봐요, 하고 웃었는데 기사님은 어쩐지 그 말에 추진력(!)을 얻으신 듯,







  -에라 모르겠다, 나는 일단 최선을 다할 테니까 기차 놓쳐도 내 탓은 말아요.






하시더니 악셀을 마구 밟기 시작하셨다(...!) 어머, 어머, 기사님 딱지 날아오면 어떡해요...! 죄송함에 발을 동동 구르는데 마치 히어로 영화처럼 백미러로 나를 보시더니 되려 씨익 웃어주시는 게 아닌가. 괜히 나 때문에 마음 졸이시는 모습에 죄송스러웠는데 진짜.... 멋있으셨다...






  -어느 출구로 가야 제일 가까워요?!

   어.... 어... 그냥 아무 데나 세워주세요!






빨간딱지 붙은 매드 맥스를 한 편 찍으신 기사님이 급히 물으셨다. 나는 이동장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기세로 대답했다.


기차가 출발하기 4분 전, 정말 기적처럼 광명역에 내릴 수 있었다.






    

  진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기사님. 조심히 가세요.  

  -고양이랑 좋은 여행 되세요.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택시 문을 닫았다. 이동장 안 고양이가 놀라지 않게 오른팔에 힘을 단단히 주고 힘껏 달렸다. 정신없이 기차에 올라타 입석 칸 간이 좌석에 이동장을 올려두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ㅡ인OO 기사님은 어떠셨나요?





나는 별 다섯 개에 색을 채웠다.

거기에 내 마음을 덧붙일 수 있으면 싶었다.

정말, 기억에 남을 추석 선물이었다고. 감사하다고.




집사는 언제나 3만 얼마짜리 입석 바닥에 앉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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