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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Jul 22. 2023

[단편]연재의 섬

스토리문학 소설소셜 동인지 8집 [480억짜리 아이스크림]


요즘은 내가 소설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가끔 오래된 지인과 연락을 할 때면 '요즘 소설은 쓰고 있지?'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제야 아! 나도 소설 쓰는 사람이었지,라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민망하고 부끄럽다. 곡절 끝에 3년 만에 단편 신작 발표를 했다. 이십 년 전 생의 한 지점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처음 소설 쓰기의 길을 열어준 스토리문학 소설소셜 동인지 8집에 '연재의 섬'을 실었다.





디지털로 담긴 채 언제 활자화될지 모를 단편들, 그중에 한 편이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공부방에서 사회복지사로 아이들과 함께 지낼 때의 한 슬픈 에피소드를 단편 소설로 승화시켰다. 내가 창조한 세계의 이야기들을 항상 모니터로만 보다가 질감 있는 종이로 접하니 소설을 읽는 감회가 새롭다. 다른 동인 작가분들의 소설도 기대가 된다. 역시 시와 소설은 책으로 만나야 제 맛이다.








-연재의 섬-


어둑신해진 도시의 밤하늘에선 옅은 가랑비가 부슬부슬 나린다. 밤의 거리는 어제와 같은 색채의 어둠에 물들고 있다. 그것은 일견 어제와 그제, 혹은 연대를 알 수 없는 어떤 시기중 하나의 미욱한 데자뷔였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이었다. 대로변 상가의 허름한 곱창 집에서 공부방 선생님들과 저녁을 먹고 헤어진 나는 알 수 없는 헛헛한 감정을 축축한 보도블록에 삼십 센티미터 간격으로 털어내며 마을 버스정류장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술기운 탓인지 하룻 내 묵혔던 감정은 한없이 아래로 쳐지고 공허했다. 하지만 축축한 밤의 거리는 다분히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높고 낮은 사각의 적빛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한차례 거센 바람이 불자 직선으로 내리던 빗줄기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어둠은 익숙한 색채로, 크고 작은 건물들에 간사한 도둑처럼 스며든 채 형형색색의 아우라를 반복하다가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도로에선 눅눅한 물기를 머금은 자동차들이, 제 나름의 사정과 유한한 시간 속에서 숙명처럼 정해진 시간의 길을 바쁘게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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