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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Sep 23. 2023

최종면접에 합격했지만...거절했습니다.

2020년 4월에 퇴직을 했다. 2006년부터 약 13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아동복지시설이었다. 23년 1월에 재취업을 했으니 대략 2년 8개월간 백수 생활을 했다. 틈틈이 아동과 노인 복지시설 단기 계약직이나 사회복지시설 대체인력 파견직도 했지만 그런 일터는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 나도, 나를 아는 이들도 정식 직업으로 인정을 하진 않았다.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이 있다. 가족이란 말은 정답고 따스한 말이지만 '가족 같은 회사'는 좋은 의미가 아니다. 오랜 백수 생활로 통장은 가벼워졌고 사회적 자존감도 바닥을 칠 무렵, 이력서를 넣었던 강남의 한 아동 사회복지시설에서 센터장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 면접 면접장면 스틸컷 ⓒ pixabay



면접 당일 면접관은 모두 세명이었다. 법인 대표, 구청 사회복지과 주무관, 그리고 시설 운영위원장. 최종 면접을 보는 이도 나 포함 세명이었다. 나는 두 번째로 면접을 보았다. 면접은 삼십 분 정도 걸렸다. 면접관들은 내게 이전 시설의 경력이나 센터장으로서의 운영 철학 등 다양한 질문을 했다. 질문은 주로 가운데 앉은 법인대표가 했다. 나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을 했다. 면접이 끝날 무렵 나는 면접관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제가 혹시 여기 센터장이 되면 센터장으로서 혹시 알아야 할 게 있나요?"


그 순간 면접관들은 나의 이런 질문을 예상 못했던지 서로를 바라보며 상당히 당황해하는 표정이었다. 


"혹시 전에 계시던 곳에서 평가는 받아 보셨나요?"

"심화평가 말씀하시는 거죠? 네, 평가라면 이전 시설에서도 많이 받았습니다."

"삼 개월 후에 시설 평가를 받아야 해요."


시설 평가 3개월을 남겨두고 시설장을 새로 뽑는다고... 나는 속으로 의아했다.


"그런데 왜 센터장을 새로 뽑는 거죠?"


면접장안은 한동안 깊은 정적이 흘렀다.


"지금 센터장이 건강이 많이 안 좋아요."

"얼마나 안 좋길래."


나는 이해가 안 가서 다시 물었다.


"지금 센터장이 몇달전에 신장암 3기 판정을 받았어요."


그렇게 면접은 끝이 났다. 합격을 한다 해도 찜찜했다. 대표는 다음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면접을 본 지 일주일 다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떨어졌구나.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워크넷에서 구인광고를 검색하고 있는데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상황이 어렵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좋아요. 함께 일 해 봅시다."

"네. 감사합니다."

"한데... 아무래도 이건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


법인 대표는 내가 고심 끝에 센터장을 맡겠다고 하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3개월 남겨둔 시설평가, 기존 종사자들과의 불편한 관계. 사실 앞의 두 조건도 내가 센터장으로서 감당하기엔 만만치 않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은 두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김 선생님과 함께 일할 나이 많은 여자 선생님이 지금 저랑 같이 살고 있습니다."

"네?"


나는 방금 법인 대표가 했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랑 같이 일을 할 여자 생활복지사 선생님이 대표의 집에서 함께 산다고. 나는 여전히 대표가 하는 말의 행간을 파악하지 못했다.


3개월 남겨둔 시설평가, 기존 종사자들과의 불편한 관계. 그 동안의 경력으로 시설 평가와, 기존 종사자들 간의 불편한 관계는 감당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매일 8시간을 함께 해야 할 선생님이 면접을 보고 있는 대표의 부인이라는 사실은 감당 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그 선생님은 센터 설립 초기 센터장을 했다는 사실은 앞의 두 상황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악조건이었다. 


"그럼, 그 선생님이 센터장을 하시는 게 좋지 않나요?"

"그게 좀...."


나는 차라리 대표의 부인이라는, 그 선생님이 센터장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중간에 휴직을 한탓에 센터장이 되기 위한 사회복지시설 경력이 모자란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속칭 브릿지, 바지사장(?)이었구나 싶었다. 카페가 덥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듣자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김 선생님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힘을 실어줄 테니까."


최종 면접을 보는 동안 대표는 이 말을 언제쯤 꺼내야 할까 무척 고민했을 것이다. 아니 일주일 전 센터장 면접을 보면서, 어쩌면 현 센터장이 중병으로 퇴사를 해야 하는 시점부터 고민했을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시간 전 센터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보이던 사무실의 싸한 분위기가 납득이 갔다. 마스크를 쓴 현 센터장의 퀭한 두 눈은 한눈에 봐도 아픈 기색이 역력했고 좌우 두 직원의 알 수 없는 냉랭한 기류가 낯선 공간에서 경직된 온몸의 신경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 입사면접 입사면접 스틸컷 ⓒ pixabay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면 제가 센터장을 하긴 어렵겠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에이 그건 별문제가 안 돼요."


대표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업무 지시를 할 선생님이 법인 대표의 부인이다. 게다가 센터 설립 초기 센터장도 했었다. 정말 별게 아닐까?  센터장이 되면 모든 권한과 무게는 나에게 실어줄 테니 경력을 살려서 함께 일을 해보자고 했다.


뽑아야 하는 자와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자. 입사 면접은 갑을이 존재한다. 특히 취업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면접은 철저히 을의 시간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기업이나 조직의 면접관도 면접자를 평가하지만 면접을 보는 사람도 면접관과 그 조직의 운영 방식과 철학을 평가한다. 센터장 응시자 7명 중 3명이 최종 면접을 봤고 내가 최종 선택이 되었다. 차선책이었을 수도 있다. 지난 일주일 사이에 내가 모르는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공이 내게로 넘어왔다. 문제는 그 공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였다. 대표가 마지막으로 던진 공은 더욱 받을 자신이 없었다. 그 공을 받기엔 이 시설의 비정상적인 구조에서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이십대 이후로 뽑혀야 하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거절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른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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