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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Oct 09. 2024

[단편] 인스턴트 코끼리


1.


  마침내 3.5톤이 넘는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갔다. 그 일을 계획한 지 정확히 석 달 하고도 하루가 지났다. 절대로 닫힐 것 같지 않던 냉장고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완벽하게 닫히던 그 순간은 얼마나 멋지고 황홀하던가. 네모난 냉장고에 꼭 들어맞도록 자동차 폐차장의 압착기에 집어넣은 첫 번째 코끼리가 반쯤 눌러졌을 때 외마디 비명도 없이 죽어버렸으므로 두 번째 코끼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어렵사리 구한 두 번째 코끼리도 식음을 전폐 한 채 한 달을 버티다가 굶어 죽고 말았다. 이번이 세 번째, 마지막 기회였다. 돈도 다 떨어졌다. 겨우 냉장고에 넣었다 싶으면 5톤이 넘는 코끼리의 길쭉한 코가 훌러덩 빠져버리거나 뒷다리 한쪽이 문턱에 걸렸다. 철물점에서 구입한 청 테이프로 엉덩이에 찰싹 붙여 놓은 둘둘 말린 꼬리가 불쑥 삐져나왔고 그것을 잡으려다 발을 삐끗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커다란 문제는 툭 불거져 나온 두 개의 상아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끝이 뾰족한 상아는 냉장고의 어떠한 위치에서도 제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이대로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밤마다 가위에 시달렸다. 어떤 날은 성난 코끼리가 뾰족한 상아로 온몸을 찔러댔고 어떤 날은 거대한 압착기에 눌린 채 차가운 냉장고 속에서 꽁꽁 얼어붙기도 했다. 


츨처-paxabay


  그리고 오늘 기어이 거대한 코끼리를 조그만 냉장고에 집어넣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문짝에 끼인 채 애를 먹이던 두 개의 상아를 톱으로 잘라낸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코끼리가 요동을 치는지 이따금씩 냉장고가 흔들렸다. 그동안의 힘겨웠던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기라도 하듯 은회색으로 반짝거리던 냉장고의 외관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고 손잡이는 위쪽이 아예 떨어져 나가 버리고 없었다. 틈만 나면 비난하고 조롱하던 인간들도 이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면 한없는 질시와 부러움을 보낼 테지. 박사학위를 준다는 대학도 있을 것이고 아예 교수직을 맡아달라는 곳도 있을 거야.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얹은 채 마음껏 거드름을 피우면서 가장 조건이 좋은 곳에 서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정말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이 기쁜 일을 누구와 같이 나누지? 그래, 개무량씨가 있었지. 이상한 걸? 개무량씨가 보이지 않는 군. 방금 전까지도 있었는데 어디를 간 거지?’ 그는 함께 기쁨을 나눌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였다. 이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무더위와 피곤에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려고 했을 때 은마 아파트 419호의 바닥에서 수십 배나 큰 소파를 머리에 이고 다니던 개무량씨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의 쇠심줄 같은 지구력과 강철 같은 팔다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냉장고에 코끼리를 집어넣는 기상천외한 프로젝트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심대하고 혁혁한 공로는 앞으로 글을 써가면서 알릴 것이니 이쯤 해서 생략하겠다.


2. 


  독자들 중에는 도대체 무슨 연유로 3류 유머 방에서나 나올법한 황당한 이야기를 이토록 거창하게 떠벌리고 있는 건지 의아해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하긴 나도 상상해 본 적이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미 밝혔다시피 이 이야기의 요점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냉장고에 코끼리를 집어넣는 것이다. 인터넷 유머 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수많은 우스개 소리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십중팔구는 이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비단 인터넷과 같은 사이버 공간뿐만이 아니라 무료한 오후의 거리에서 들려오는 라디오나 서점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유머 관련 책자나 친구들 간의 격의 없는 대화에서도 이런 종류의 우스개 소리를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이런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 그저 그런 유머로 치부해 버리거나 심지어 말하는 사람의 어설픈 몸짓이나 말주변에 따라 썰렁하기까지 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대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끼를 치게 마련이어서 코끼리뿐만이 아니라 낙타나 얼룩말 심지어는 지구에서 가장 등치가 크다는 고래를 넣는 방법도 알게 된다. 나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중 하나인 코끼리 냉장고에 집어넣기를 본 지면을 통해서 나의 특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법 심각하게 다루어 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다. 뭘까? 내가 독자라면 틀림없이 그 점을 짚고 넘어갈 것이다. 그것은 하필이면 코끼리가 들어가야 할 물건이 하고 많은 물건들 중에서 냉장고 그것도 칸칸 냉장고냐,라는 점이다. 김치 냉장고나 가스오븐도 있을 테고 세탁기도 있는데 말이다. 하다못해 전자레인지도 있지 않던가? 그거야 이 유치하고 썰렁한 농담을, 물론 처음에는 재미있었을 테지만, 처음 만들어낸 사람에게 가서 따져 물을 일이므로 더 이상 거론하지는 않겠다.


  어쨌거나 이 시점에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간단히 살펴보자. 그것은 여러분도 알고 있다시피 대략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치게 될 것이다.


  “첫째, 냉장고를 연다.”


  “둘째, 코끼리를 넣는다.”


  “셋째, 냉장고를 닫는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정말이지 너무나 쉽고 깔끔하지 않은가?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머리를 싸매고 자리에 드러누운 채 심각하게 생각해 보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더운 여름날 오후의 무료한 시간을 더욱 지치게 만들어줄 썰렁한 유머에 지나지 않으니까. 또한 이미 언급했듯이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얼룩말이나 기린 혹은 고래처럼 커다란 동물등도 얼마든지 냉장고에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마약 중독자처럼 이 썰렁한 유머에 길들여진 독자들이라면 좀 더 복잡한 과정을 추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미 코끼리가 들어 있는 냉장고에 낙타를 넣는 법 같은 것이다. 그것은 대략 이런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첫째, 냉장고를 연다.”


  “둘째, 코끼리를 꺼낸다.”


  “셋째, 낙타를 넣는다.”


  “넷째, 냉장고를 닫는다.”


   유머 감수성이 63 빌딩만큼이나 높은 아이들이나 아드레날린이 필요이상으로 분비되는 일부 어른들은 이처럼 썰렁한 농담을 듣고도 배꼽을 부여잡은 채 땅을 데굴데굴 굴러대며 포복절도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다수 어른들은 이런 유머를 들으면 마치 떫은 감을 씹은 것처럼 쓴웃음을 짓거나 신경질을 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 냉소 형인가. 은근 형인가. 포복절도 형인가. 그건 그렇다 치고 이 부분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듣던 내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작했냐는 것이다. 물론 독자들에 따라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저간의 사정을 밝히자면 대강 이렇다. 평생을 동물원의 사육사로 보내셨던 아버지는 아이큐 140이 넘는 둘째 아들이 유명한 건축사가 되기를 바라셨다. 


  어쩌면 그것은 병원에서 나를 낳자마자 돌아가신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있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용맹스러운 사자나 호랑이를 마치 애완동물처럼 다루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반해 버린 탓에 멋진 조련사가 되고 싶었던 나의 바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맨손으로 호랑이나 사자의 등을 올라타는 아버지는 정말 멋있었다. 코끼리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코끼리 한 무리가 우리를 뛰쳐나왔고 급기야는 동물원을 뛰쳐나와 도로변에서 난동을 부렸었다. 그들을 진정시키던 중 흥분한 코끼리에게 다리를 밟혔고 그 뒤로 아버지는 불구가 되셨다. 병원을 퇴원하던 날 조련사는 되지 말라던 아버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두 번의 재수 끝에 건축학도가 되었다. 하지만 원하던 공부가 아니었으므로 학교생활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무료하고 건조했다. 하루하루를 수감자의 심정으로 당구장과 도서관을 전전하고 있던 차에 영장이 나와서 군대를 갔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제대를 한 다음 올해 초에 다시 복학을 했다. 일은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3.


  햇빛이 따사로운 어느 금요일 오후였다. 금요일을 주신 신에게 감사를, 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금요일은 파티와 쾌락의 시간, 모두들 술집으로 나이트로 거리로 쏟아져 버리는 그 순간에 나는 혼자였다. 농담처럼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을 맞이하기 위하여. 곧 있을 중간시험에 참고할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서 강의실에 남아서 머리를 끙끙대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복도를 지나가시던 K교수님이 강의실에 불이 켜져 있는 걸 확인하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노트에다 열심히 자료 정리를 하고 있던 나에게 조용히 다가오셨다. 정신없이 자료를 뒤지고 있던 나는 교수님이 코앞에 올 때까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봐, 문군?”


  “네.”


  깜짝 놀란 나는 책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논문은 잘 돼 가나?


  “그게.... 좀.... .”


  사실 그때까지 논문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결정을 못한 것 같군?”


  “네, 아직?”


  “내가 하나 일러 줄까?”


  “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은 어때?”


  “네?!”


  “어때, 괜찮은 소재 같지 않나?”


  교수님은 마치 나에게 오래된 농담이라도 던지듯 이 한마디를 던져 놓고서는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교수님의 말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교수님은 강의시간에도 종종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우리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는 건축학 관련 수업을 하다가 ‘자유는 반드시 폭력을 필요로 하는가?’ 라든가 ‘나이트클럽의 수질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같은 질문을 불쑥 학생들에게 던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몇 번 반복된 교수님의 제안은 내가 쉽게 거절할 수 없는 당근을 포함하고 있었다. 연구에 필요한 장비와 경비는 물론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면 괜찮은 건축회사의 일자리를 알아 봐 준다는 것이었다.


  “흠...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라.”


  며칠을 심사숙고한 끝에 나는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연구동 별관에 위치한 K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았다. 깔끔한 외모답게 교수님의 연구실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고 기분 좋은 냄새가 풍겼다. 무슨 급한 자료라도 찾는 듯 내내 모니터를 들여다보시던 교수님은 한참이 지나서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교수님께서 홍차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일전에 말씀하신 주제로 논문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교수님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시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빙그레 웃으시며 조그만 서류봉투에 담긴 종이 한 장을 건네주셨다. 종이의 맨 위쪽에는 “오래된 농담.”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종이에 적힌 내용을 절반도 읽기 전에 다시 한번 심각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 계약서에는 냉장고에 코끼리를 집어넣을 때 유의해야 할 사항이 조목조목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반드시 가정용 냉장고를 사용할 것.”


  “둘째, 용량은 630리터를 넘지 않을 것.”


  “셋째, 코끼리는 5년 이상 된 수컷으로서 몸무게가 5톤 이상일 것.”


  “넷째, 코끼리는 산채로 집어넣을 것.”


  “다섯째, 증빙자료를 첨부할 것.”


  등등 그 외에도 깨알 같은 글씨로 십여 개의 조항이 더 적혀 있었다. 작은 아버지가 임원으로 계시는 가전 회사를 찾아가서 대형 냉장고 제작을 의뢰한 후 동물원에서 갓 태어난 코끼리 새끼를 빌려다가 집어넣으면 간단히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순진한 생각은 보란 듯이 빗나가고 말았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교수님은 자못 흥미롭다는 듯 말을 이었다.


  “자네가 처음이야.”


  “무슨?”


  “실은 자네 말고도 여러 사람에게 같은 제안을 했었네. 꽤 오래전부터였지.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못하겠다고 하더군. 아니 딱 한 사람이 있긴 했어. 비록 절반 밖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래서 이번에도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자네가 이렇게 찾아오니 오히려 내가 당황스럽군.”


  하지만 교수님은 전혀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가당치도 않는 일을 해보겠다고 자신을 찾아온 가엾은 당신의 어린양이 한없이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것도 젊은 혈기의 패기나 열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정신 나간 짓이었다. ‘냉장고에 코끼리를 집어넣으라니.’ 그야말로 지나가던 소가 다 웃을 일이 아니던가.


  그날 저녁 밤새도록 잠을 못 자며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도무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꼬박 밤을 지새우고 내린 결론이라야 고작 다시 교수님을 찾아가 싹싹 빌며 도저히 못하겠다고 사정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심을 굳히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다음날 학보에 ‘이색 논문을 쓰는 문공달씨.’라는 제목으로 교수님과 나의 사진이 신문 전면에 실린 것이다. 함정에 빠져든 기분이었다. 항의를 했지만 담당기자는 학보 주간을 맡고 계시던 교수님의 추천이라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미리 선수를 친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지? 교수님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교내에서의 반응은 굉장했다. 잘 알지 못하던 선배들까지도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잘해 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게 중에는 그런 황당한 짓거리로 한번 떠보고 싶은 거냐? 미친 거 아니냐? 라며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논문 건으로 나는 교내에서 일약 스타가 되어 버렸다. 메이퀸으로 뽑힌 무용과의 선아마저도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일은 더욱 커져버려서 도시의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기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제 와서 못한다고 하기엔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K교수님의 제안이 오래되다 못해 살벌한 농담임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렸던 것이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저질러 보는 거야.’


4.


  시간은 어느덧 한 달이 훌쩍 흘러버렸다. 그동안 한 일이라고는 집에 있는 구식 냉장고의 가로 세로 높이 치수만 재며 바닥이 꺼지도록 한숨만 푹푹 쉬었을 뿐이다. 그리고 기운 없이 코끼리가 있는 동물원 몇 군데를 둘러보고 사육사들에게 물어서 코끼리의 습성을 파악한 것이 전부였다. 논문은 고사하고 계획서조차도 작성하지 못했다. 마음속 한쪽에서는 커다란 배추 한 포기가 자라고 있었다. ‘아직도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포기해 버리는 거야. 사람들이 비웃을 텐데.... 흥. 비웃어 보라지. 나중에 개망신당하는 것보다야 낮지 않겠어. 아니면 처음부터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까? 코끼리에게 최면을 걸어 보는 거야. 스스로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거지. 왜, 동물들도 최면에 빠진다고 하잖아.’ 머릿속에서는 온갖 쓸데없는 잡념이 떠올랐다.


  “아아, 정말 돌아버리겠군.”


  잔디밭에 앉아서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아, 정말 돌아버리겠군.”


  어디선가 메아리가 들리는 듯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지?”


  “누구지?”


  이번엔 더욱 확실하게 들렸다. 잠시 후 스스슥 잔디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었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눈앞에 생쥐 한 마리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점은 생쥐의 등에 붙어 있는 이상한 모양의 혹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의 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며칠 전 생물학과 실험실에서 사라졌다고 난리를 치던 바로 그 실험용 생쥐였다.


  “당신이 이상한 논문을 쓰겠다고 한 작자군.”


  생쥐가 말을 걸었다. 꿈을 꾸나 싶었다.


  “그걸.... .”


  “어떻게 알고 있냐고?”


  “그래.”


  “당신 친구가 내 등에 인간의 귀를 만들어 놓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학교 안의 별의별 소식을 다 듣고 있지. 요즘엔 눈만 뜨면 들리는 당신 이야기 때문에 정말이지 귀가 따가워 죽을 지경이야.”


  허벅지를 있는 힘껏 꼬집어보았지만 꿈이 아니었다. 냉장고도 코끼리도 말하는 생쥐도 모두가 다 생생한 현실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우거지상이지?”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어야 하거든.... .”


  “푸하하하.”


  “왜 웃지?”


  “정말 그 짓거릴 할 생각인가 보군.”


  “취소할 수도 없게 되어 버렸어.”


  “하기야, 나까지 알고 있을 정도니.”


  “후유..... .”


  “암튼, 잘해 보라고.” 


  그는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면서 실험실 병동의 한 장소를 가리키며 그의 은신처를 알려주었다. 그곳에 와서 등에 귀가 달린 생쥐나 개무량씨를 찾으라는 것이었다. 그냥 작은 목소리로 이름만 불러대면 된다고 했다. 개무량씨는 그와 함께 생활했던 실험실의 동료였다. 등에 귀가 달린 생쥐는 말을 끝내자마자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등에 달린 귀가 쫑긋 거렸다. ‘어쩌면 지금 나는 미쳐 가고 있는 중인지도 몰라.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미쳐 가는 건지도 모르지.’ 여하간 며칠을 도서관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뜯은 끝에 간신히 마감 당일 날 논문 계획서를 넘겼다.


5.


  교수님이 건네주신 통장에는 천만 원이 들어 있었다. 교수님은 자신의 오래된 농담을 오늘에서야 과감히 실현하려는 사랑스러운, 아니 어리석은 한 제자를 위해서 아낌없이 돈을 풀어 주실 생각인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술이 고팠다. 첫날은 친구 몇 놈을 불러내어 질펀하게 술을 퍼 마셨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일주일간을 마음껏 퍼질러 놓았다. 몹시 술에 취한 나는 속에 있던 말을 털어놓았다.


  “가능할까?”


  “짜샤, 걱정 마, 우리가 도와줄게.”


  “그래, 문 공달, 너는 할 수 있을 거야.”


  술에 취한 그들은 멋대로 지껄여 댔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나를 피해 다녔다. ‘우라질.’ 우선은 건축학과의 연구동 옆에 코끼리를 위한 조그만 우리를 짓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장소라서 왕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를 짓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끔씩 오가는 이들 중 호기심 많은 학생들 몇 명이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긴 했지만 어쨌거나 연구용 우리를 위한 장소였으니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정작 문제는 그 안에 들어갈 코끼리를 구하는 거였다. ‘케쎄라 쎄라다. 될 대로 되라지.’ 우리가 거의 완성될 무렵 시내의 대형 할인 마트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사기 위해서였다. 냉장고는 가능한 한 아니 최대한 큰 걸로 골라야 했다. 서너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한 대기업이 최근에 출시한 630리터짜리 양문형 OO냉장고를 발견했다. (그래 저거면 되겠군.)        


  “뭘 도와드릴까요.”


  “냉장고를 사러 왔는데요.”


  “찾으시는 모델이 있나요?”


  직원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가능한 큰 걸로.... .”


  “혼수용인가요?”


  “아니요.”


  “그럼?”


  “코끼리를 집어넣으려고요.”


  “네엣.”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님도 차암~ .”


  그는 내 말을 농담으로 알아들은 듯했다.


  “저걸로 할게요.”


  교수님이 주신 카드 용지에 사인을 한 다음 직원에게 물었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편의점에선 삼각 김밥을 팔지 않나요?”


  “그렇죠.”


  “만두가게에선 만두를 팔겠죠?”


  “물론이죠.”


  직원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데 동물원에선 왜 코끼리를 팔지 않죠?”


  “자식아, 안 팔아. 꺼져”


  그는 코끼리를 통째로 냉장고에 집어넣어야 하는 나보다 참을성이 많지 않았다. 사실은 냉장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부는 넓었는데 색상이 칙칙했고 무엇보다도 재질이 튼튼해 보이지가 않았다. 두 번째 코끼리를 넣을 때처럼 냉장고의 옆구리가 터져 버리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두어 곳을 더 들른 나는 매번 점원에게 같은 질문을 해댔다. 그들도 처음에 들렀던 매장의 직원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몇 군데를 더 들렀고 흰색 실크 유니폼이 깔끔한 여직원이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한 마지막 매장에서 630리터짜리 양문형 냉장고를 20퍼센트 할인된 값에 구입했다.


6.


  어느새 서너 달이 훌쩍 지나 버렸다. 냉장고와 코끼리는 어떠한 물리적 접촉도 없이 처음 올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흥분 잘하는 도시의 언론과 방송에서는 ‘문공달씨의 사기극.’이라는 날 선 제목과 함께 신랄한 비판을 해대기 시작했다.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전화통에선 신변 위협이 잇따랐다. 밤이 되면 코끼리 우리로 깡통이며 돌멩이가 날아왔다. 모든 것이 두려워졌다. 교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사/면/초/가.’ 라고 하던가. 그때 문득 잔디밭에서 마주친 등에 귀가 난 생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맞아 그가 있었지. 정말 나를 도와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를 찾았다. 잔디밭에서 그를 불렀을 때 생쥐는 등에 난 귀를 벽에다 대고 있던 중이었다.


  “환장하겠군.”


  “뭐가?”


  “등록금을 이십 퍼센트나 인상할 계획이라는군.”


  “누가?”


  “이사장이.”


  그는 등록금을 내야 하는 나보다도 더 분개해했다. 등에 난 귀를 씰룩거려 가며 이사장과 총장을 비난했다.


  “그치들 등에도 뭔가를 심어야 할 텐데.... .”


  “정말 나를 도와줄 이가 있어?”


  “물론이지.”


  개무량씨를 처음 만난 것은 이틀 후였다. 그는 체구에 비해서 무척 힘이 셌다. 체구도 보통의 개미에 비하면 꽤나 큰 편이었다. ‘딱정벌레보다 조금 클까? 가만있어봐. 그 정도라면 무지막지하게 큰 거잖아. 도마뱀이 고질라가 된 격이군.’ 그는 전에도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K교수 같은 양반이 의외로 많은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무량씨의 능력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비록 힘이 세다고는 하지만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코끼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벼룩은 이백 배나 더 튀어 오를 수 있다오?”


  미심쩍은 나의 표정을 기분 나쁜 투로 바라보던 개무량씨의 말이었다.


  “그럼 당신도..... .”


  그는 왼쪽 더듬이 한 개를 까딱거렸다.


  “백배?”


  “아니, 천배.”


  “푸하하하하.”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신음소리 비슷한 것을 내야 했다. 그가 한 손으로 나를 번쩍 들어 올렸던 것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오.”


  그와의 작업은 하품이 날 정도로 지루 한 것만 빼면 비교적 순조로웠다. 매일 아침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가 들어갈 방향을 제시하면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코끼리를 앞으로 밀었다. 위에서 누르기도 했고 옆에서 낑낑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코끼리는 쉽게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힘이 센 개무량씨라도 냉장고보다도 두 배나 덩치가 큰 코끼리를 집어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 되겠던지 개무량씨는 마치 종이를 접듯이 코끼리를 접기 시작했다. 팔랑거리는 귀를 접고 코와 꼬리를 접었다.


  “꼬리 좀 잡아 주시오!”


  “귀는 어쩌고... .”


  “상아를 잘라야겠소.”


  “불쌍한 코끼리.”


  네 다리는 코끼리의 비명 대신 우두둑 소리가 났다. 비명은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저러다 지난번처럼 또 죽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코끼리는 살아 있어야 하니까. 꼬깃꼬깃 구겨지고, 사각사각 접힌 네모난 코끼리. 인스턴트 음식처럼 투명한 랩에 포장된 코끼리가 천천히 냉장고 속에 밀어 넣어졌다. 크아앙~ 크아앙~ 거리는 코끼리의 비명 소리는 개무량씨의 따끔하고 호된 질책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7.


  교수님의 사무실을 찾아간 것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은 다음날이었다. 그동안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데 들어간 경비내역과 사진을 비롯한 몇 개의 증거자료를 가지고 서였다. 그동안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던 재활용 도시의 신문기자와 학보사의 기자에게도 관련 자료를 보내고 난 뒤였다. 교수님은 내가 제시한 사진과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보셨다. 그러더니 예의 그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문공달 군, 저기를 보지 않겠나.”


 교수님이 가리키는 곳은 벽이었다. 전에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벽이었다. 그 벽에는 커다랗고 조그만 액자들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그것들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하나 있었다. 그 사진 속에는 코끼리 입에 구형 냉장고를 집어넣고서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계시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서계셨다. 앳된 모습의 개무량씨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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