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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Oct 16. 2024

[단편] 백수부 장관 신설편

재활용 센터에 가면

1.


  마침내 재활용 도시의 최고 권력자는 국무회의를 거쳐 백수부 신설을 시민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뭐, 백수부라고?” 우연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혹은 어쩌다가 들른 시내의 한 대형 서점에서 상당히 지명도 있는 문예지나 유명 작가들이 발간한 동인지에 실려 있는 이 글을 읽으신 독자들 “도대체 어느 놈이 이따위 글을 쓴 거야. 그렇지 미친것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하간, 재활용 도시의 최고 수장이 이런 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 까닭은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살인적인 실업률 때문이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날, 검은 복면을 한 백여 명의 괴한이 손에는 방망이와 각목을 든 채 도심의 한 유명 재활용센터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시각 각 지방 주요 도시의 유명 재활용센터도 일단의 괴한들로부터 습격을 받고 있었다.


출처-pixabay


  연일 거리에서는 그동안 온갖 냉대 속에서 기를 펴지 못한 채 살아가던 백수들의 항의와 농성이 이어졌다. 한 자릿수를 밑돌던 생계형 범죄율도 절반을 넘어선 것은 이미 십여 년 전 일이다. 이들의 시위는 시간이 갈수록 과격해지고 조직화되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서 백수 관련 단체가 물밀듯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공식적인 실업률은 30퍼센트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실제 실업률은 40퍼센트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주당 20시간 이하의 근로자들과 일용직 노무자들, 그리고 60세 이상의 노인 인구는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인 인구의 절반이 놀고 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전문가들의 끊임없는 원인분석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라는 자들이 하는 일이 늘 그렇지만, IMF의 사슬에서 벗어 난지 채 십 년도 안 돼서 이런 백수대란이 벌어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외국 거대자본의 투기성 자금, 대중 무역적자로 인한 수출액 급감, 혹자는 아직도 답보상태인 북한의 핵 위기라는 등 구구한 억측들만 난무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라질, ‘백수부’라도 신설하던지 해야지?”

  “뭐, 백수부?”


  살인적인 실업률로 고민하던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당무회의에서 농담처럼 던진 이 백수부 신설 안은 다른 의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실업률을 낮출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책이라며 의원들에게 연판장을 돌리며 안건 발의를 촉구했다. 문제는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야당에게 달려 있었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이 황당한 백수부 신설 안건은 쉽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안건 발의 후 석 달 만인 5월 1일부터 전격적으로 백수부가 신설되었다.


  또한 정부는 이에 발맞춰서 기존 정부의 핵심 부서였던 노동부와 건교부를 백수부 산하 기관으로 복속시켰다. 가장 입김이 센 교육부와 재경부에 이어 또 하나의 강력한 기관이 탄생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신설되는 백수부는 장관직이지만 사실상 노동부와 건교부를 아우르는 부총리의 권한을 가진 막중한 부서였다. 또한 정부는 5월 1일을 기존의 근로자의 날에서 실업자의 날로 명칭을 변경한다고 선언했으며 그날 하루는 근로자를 제외한 모든 실업자가 반나절 이상 근무를 하는 운동을 벌였다. 물론 시간당 수당 3500원씩 지급되는 상태로 말이다. 발표 직후 연일 광화문과 전국 곳곳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을 반대하는 근로자들의 시위와 항의가 빗발쳤다. 그렇지만 수적으로 보다 많고 조직적인 백수단체들의 지지에 힘입어 백수부 신설안과 실업자의 날로의 변경은 별다른 마찰 없이 시행할 수 있었다.


  초대 백수부 장관으로는 여러 명이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재활용 도시의 3대 일간지를 필두로 주요 언론에서도 초대 장관으로 누가 뽑힐지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며 이름이 거론되는 인사들의 과거 이력을 매일 지면에 쏟아 내었다. 로이터 통신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언론에서도 사상 유례가 없었던 국가 기관의 초대 장관의 출현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오 년 전부터 ‘전백모’의 회장을 맡고 있는 홍상우 씨와 ‘오륙도’ 대표인 우영창 씨의 이름도 심심찮게 거론되었다. 그렇지만 백수부 장관에 오를 가장 유력한 인사로는 현 대통령의 고향 친구이자 대학교 동창인 김 OO 씨였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아이비리그에서 수학한 수재였지만 군을 제대한 후 삼십 년 가까이 백수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최근에 펴낸 자신의 저서 “백수, 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서 백수 전문가로도 세상에 잘 알려져 있었다. 그가 백수부 장관 내정자로 거론되는 이유는 대통령과의 친분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과거에 한 번도 취업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다음 주에 열릴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 한 그가 초대 백수부 장관이 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2.


-청문회 첫째 날-


  “반갑습니다. OOO당의 조갑배 의원입니다. 질의에 앞서 수많은 쟁쟁한 후보자를 물리치고 백수부 장관 내정자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김 내정자의 과거 이력을 보니까 특이한 사항이 몇 군데 있더군요.”

  “.....”

  “혹시 이십 년 전에 한 편의점에서 삼 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하시지 않았나요? 그리고 시에서 행하는 공공근로에 참여하신 적도 있더군요. 사실입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그런 사실 없습니다.”

  “정말입니까?”

  “맹세코 없었습니다.”


  시종일관 부드럽던 의원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고 목소리도 차가워졌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게 뭔지 아십니까? 이틀 전에 OO일보에서 보도한 김 내정자의 과거 이력입니다. 이걸 보면 김 내정자가 십몇 년 전에 근무했던 편의점과 근무기간, 그리고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의 증언까지 나와 있는데, 그럼 이 신문 기사가 허위라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기억나셨나요?”

  “오래전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장관이 되시려면 과거에 어떠한 노동행위를 하거나 직업을 가진 적이 없어야 된다는 사실을 모르셨나요? 공무원 윤리 강령 제68조 3항에 나와 있는 기본적인 내용인데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그런 규정이 있는 줄은....”

  “백수부 장관은 훌륭한 인격과 도덕성도 겸비하셔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과거에 떳떳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그리고 윤리강령도 읽어보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김 내정자가 앞으로 맡게 될 백수부는 정부와 의회가 살인적인 실업률로 고육지책 끝에 내어놓은 사상 초유의 정책입니다. 정치 선진국이라 자부하던 유럽과 미국에서도 이제껏 시도해 본 적이 없어요. 따라서 해외 각국도 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 내정자가 장관이 되신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은 국내에 백수 관련 단체들이 난립해 있습니다. 각 단체들이 정부의 백수 지원 기금이나 다른 백수 관련 정부 시책에 대해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인 국가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난마처럼 얽혀 있는 수십 개의 단체들을 대표성을 지닌 한 두 개의 단체로 통합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미리 질문할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막힘없이 술술 풀어 나갔다.


  “그건 맞는 말이에요.”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관련 단체와도 긴밀히 연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십여 년 전부터 국제 백수 연합과 같은 초국가적인 단체를 만들어 군사력과 경제력에 이은 제3의 헤게모니를 주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정부의 백수부 신설 방안은 세계 패러다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시간으로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는 네티즌들과 시청자들의 반응은 극단으로 나뉘었다. 특히 온라인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는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김 내정자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공공근로 경력에 대하여 동정론과 비판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한 국가 기관의 수장이 되겠다는 사람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또 한 네티즌은 이렇게 말하며 김 내정자를 옹호하기도 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실수는 하게 마련이다. 과거의 한때 잘못을 너무 비약시키는 것이 아닌가.”


  또한 백수 단체의 통합론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았다. 자신의 아이디를 ‘이태백’이라고 밝힌 이십 대의 네티즌은 새로운 개혁세력의 출현을 두려워한 기득권 세력들의 계획적인 음모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모두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민족적 자긍심을 불러일으킨 김 내정자의 아시아 백수연대론은 대다수의 환영을 받았다.


3.


-청문회 둘째 날-


  “반갑습니다. OO당의 한계령 의원입니다.

  “오늘은 김 내정자에게 백수 전성시대의 근본적인 원인에 관해서 질의할 예정입니다. 이 질의는 앞으로 김 내정자가 장관에 취임하고 나서 맞닥뜨리게 될 국정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저도 아직은 구체적인 업무 보고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하게 답변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쓴 저서를 인용하자면 작금의 백수 전성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우리 사회의 무분별한 부패와 잘못된 과거 청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내정자의 예상치 못한 발언으로 청문회장은 한동안 술렁거렸다.

  “부패의 만연과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하셨나요? 그것들이 지금의 살인적인 실업률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이죠?”

  그는 한동안 청문회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다음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눈을 뜨고 차분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버터플라이 효과죠”

  “뭐라고요?”

  “나비 효과 때문입니다.”

  “.......”

  “일반 상식 34페이지 첫째 줄에 나오는 기본 적인 내용인데 모르셨나 보군요.”

  김 내정자의 말을 듣던 한의원은 자신이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한동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거렸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섬나라의 한 소도시에서 나비가 날개를 퍼덕이면 다른 대도시의 증시가 대폭락을 한다는 이론이죠.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마찬가지입니다. 한 아이의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잘 봐달라고 선생님에게 촌지를 건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아이의 부모도 그 선생님에게 촌지를 건넵니다. 곧이어 아이들 사이에서 촌지에 관한 소문이 나돌고 다른 아이들 부모의 귀에도 들어가게 됩니다. 학교에서 자신의 아이만 외톨이가 될 것을 염려한 학부모들은 너도나도 촌지를 들고 학교를 찾아갑니다. 아파트 동 모임이나 동네 반상회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동에서 구로 그리고 시로 이렇게 퍼져 나가게 되는 것이죠.”

  “이것 보세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김 내정자의 답변을 듣는 동안 한의원은 알듯 말 듯 연신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 하더니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이 김 내정자에게 소리를 내질렀다.


  “뭐, 그 정도 가지고 이렇게 거창하게 떠들어대는 겁니까?”


  김 내정자의 답변을 듣고 있던 백발이 성성한 야당의 한 국회의원도 비아냥거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뭐 그 정도 가지고라고 생각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섬나라 소도시의 나비 한 마리가 아니라 이곳에서는 학교나 기업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수백 수천 마리의 나비가 동시에 그것도 아주 거대한 날개를 파닥 거린다는 것이죠.”

  “......”

  “잘못된 과거 청산이라니, 그건 또 뭐요?”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 들어보셨죠?”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었다. 개미는 겨울에 먹을 식량을 모으기 위해서 여름 한 철 내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일하고 베짱이는 풀잎에 누워서 바이 올린만 켜대며 죽도록 일만 하는 개미를 놀려대다가 막상 겨울이 되자 먹을 것이 없어서 개미를 찾아갔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근데 지금 난데없이 김 내정자는 청문회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를 모르시는 분은 없겠지만 요즘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거죠?”

  “개미는 여름 내내 죽도록 일만 하다가 결국엔 허리 디스크 걸리고 베짱이는 바이올린 켠 덕분에 음반 내서 대박을 터뜨린다는 거죠.”

  “푸하하하.”


  순간 청문회장은 의원들의 파안대소로 폭소의 장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의원들의 표정은 다시 진지해졌다. 김 내정자의 말속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문회 직후 김 내정자의 촌지 관련 발언으로 학부모들과 학교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김 내정자의 안티 카페 수십 개가 만들어지고 나비와 촌지를 모델로 한 김 내정자의 패러디 사진도 속속 등장했다.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도 다시금 인구에 회자되었다. 전학모(전국 학부모 모임)와 전교조(전국 교원 노조)에서는 다음 날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김 내정자의 촌지 관련 발언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대다수 선량한 선생님들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의 반응도 다양했다. 대표적인 보수 언론이자 국내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U일보는 사설을 통해서 김 내정자의 학창 시절 정신과 상담을 맡았던 의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며 그가 제대로 국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를 비판했다. 대표적인 진보신문이자 인터넷 매체인 S일보는 U일보의 사설을 비판하며 김 내정자의 병력은 단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 상담이었을 뿐 U일보의 주장은 자신과 정치적 노선과 이념을 달리하는 김 내정자를 끌어내리기 위한 모함이라고 주장했다.


4.


-청문회 셋째 날-


  “반갑습니다. 무소속의 이봉삼 의원입니다. 오늘은 김 내정자의 군복무와 재산 변동 사항에 관해서 질의할 것입니다.”

  군 복무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자 지난 이틀 동안 의원들의 무수한 질문에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던 김 내정자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김 내정자의 군 복무 기록을 보니까, 경기도 양평에서 훈련병 조교로 정확히 36개월 동안 복무 했더군요. 게다가 복무기간 동안 사단장 표창을 세 번이나 받았더군요.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본 의원이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김 내정자의 부친은 월남전 파병 용사이시죠?

  “맞습니다.”

  “해병대 출신이시던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무공 훈장도 두 번이나 받으셨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김 내정자는 3대 독자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굳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었나요?”

  순간 청문회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그 까닭은....”

  “더듬거리지 말고 구체적으로 이유를 대 보세요.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군에 입대를 한 이유가 뭡니까?”


  이제까지 여유롭던 김 내정자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얼굴빛은 하얗게 질렸고 이마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질문을 던진 의원은 자신이 김 내정자의 커다란 비밀을 밝혀 낸 듯 더욱더 목소리에 힘을 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한동안 할 말을 잃어버린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주머니를 뒤져 손수건을 찾다가 못 찾겠는지 연신 손으로 이마를 훑어 내렸다. 보다 못한 한 의원이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좋습니다. 군복무 관련 질의는 그 정도만 해두죠.”


  이봉삼 의원은 그 정도면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다음은 재산 현황에 관한 질의입니다.”

  “제 명의의 부동산은 없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뭡니까?”

  “아내 명의로 되어 있습니다.

  “선산이 있다던데.....”

  “시골에 조그만 선산이 있습니다. 제 동생 소유로 되어 있고요.”

  “얼마 전 아파트를 내놓고 두 칸짜리 빌라로 옮기셨죠?”


  겨우 진정이 된 듯한 김 내정자에게 이의원은 다시 한번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아버님 병원비랑 둘째 아들 결혼식 비용 때문에 내놓았습니다.”

  “참, 답답하십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대통령과 막역한 친구 사이가 아니셨나요?”

  “.......”

  “어렸을 적부터 한 고향에서 자라고 고등학교도 함께 다니셨죠?”

  “네.”

  “대통령과 그렇게 막역한 사이였다면 최소한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의 입찰 정보나 인사 청탁용 뇌물 몇 억 정도는 받아 챙길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그런 것 하나도 챙기지 않고 뭐 하셨습니까?”


  순간 청문회장은 다시 한번 술렁거렸다. 김 내정자를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는 의원도 있었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리는 의원도 있었다.


  “본 의원은, 지난번에 신도시 건설 발표가 나기 전에 그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어요. 건설 교통부 위원장이 본 의원과 막역한 친구 사이였기 때문이죠. 그때 가지고 있던 주식과 부동산을 처분해서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가능한 한 많이 사들였지요. 지금은 원금보다 오십 배가 넘게 올라 있어요. 앞으로 얼마나 더 뛸지도 모를 일이고....”


  이의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문회장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본 의원은 지금 돈방석에 앉아 있어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나요?

  “저는 전혀 그런 생각을....”

  “앞으로는 그렇게 하세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김 내정자는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간신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연거푸 두 번씩이나 예상치 못했던 질문을 받자 굉장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는 그의 몸짓과 표정의 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전날 밤을 새워가며 준비했던 답변 자료들은 다 무용지물이었다.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뇌물 받은 영수증이라도 가짜로 만들어 놓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라고 말했을 때 무시했던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청문회 직후, 네티즌들의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자신의 아이디를 ‘신의 아들’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김 내정자의 군복무에 대하여 맹렬히 분노를 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 내정자의 군복무 작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도 그가 군에 입대를 한 것은 다른 ‘신의 아들’을 조롱하는 아주 비열한 행위이다. 나와 내 형제는 모두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다. 병명은 허리디스크와 습관성 어깨 탈골이었다. 참고로 우리 형제들은 현재 모두 농구 선수들이다. 그는 절대로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반면 자신을 ‘말년 병장.’이라고 소개한 네티즌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비록 한 순간의 선택으로 그릇된 길을 가긴 했지만 어쨌든 그는 재활용 도시의 시민으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마친 것이다. 그가 살인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때의 그릇된 선택을 가지고 마치 마녀 사냥하듯 다그치는 것은 너무하다. 너그럽게 한 번만 용서하자.”


5.


  재활용 도시의 모든 시민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가운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인사 청문회는 한 무소속 의원의 질의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일주일 후 국회에서는 백수부 장관 임명 동의에 관한 표결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표결을 앞두고 있는 김 내정자는 청문회가 끝나고 나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국내의 언론과 방송사는 물론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백수 관련 단체에서도 김내정자와 안면이 있는 인사나 그 밖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선을 대보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일체의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장관 집무실에 들른 그는 벌써 세 시간이 넘도록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아직 임명 동의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임명 동의안이 통과될 것을 확신한 대통령의 배려였다. 그는 자신이 과연 이 자리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도 성인 인구의 절반이 실업 상태인 백수대란을 극복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될 장관 자리였다. 신문과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동의안이 통과될 확률은 반반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장관이 된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청문회 때 초등학생들 구구단 외우듯이 했던 형식적 답변이 아니라 뭔가 실질적인 조치와 방법들이 필요했다. 조직과 인적구성은 기존의 방식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업무의 성격과 효율성 면에 있어서는 뭔가 색다른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아니 반드시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굉장한 정치적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자신을 장관 자리에 오르게 해 준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었다.


  이틀 후 OO호텔 대 회의실에서는 김 내정자와 백수 관련 단체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좌로부터 홍상우 전백모 대표, 우영창 오륙도 대표, 강동석 이태백 대표등 삼십 여개 단체의 대표들이 둥근 테이블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있었다. 주제의 무거움 때문인지 회의실 안은 상당히 오랫동안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백수 단체의 대통합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김 내정자의 방침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도 이 부분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며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회의실에 앉은 대표들의 표정은 모두들 굳어 있었다. 하나같이 불만에 찬 표정들이었지만 누구 하나 쉽게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모래알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김 내정자님의 의중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저희 입장으로서는 백수 단체 통합론은 절대 불가합니다.”


  오랜동안의 침묵을 깨고 말을 꺼낸 것은 작년부터 전백모의 대표를 맡고 있는 홍상우 씨였다. 전백모는 다른 단체보다도 가장 규모가 크고 조직적이며 오래된 단체였다. 모두들 숨을 죽이며 김 내정자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우영창 씨에게 물었다.


  “그 까닭이 뭡니까?”

  “그 이유는....”

  “말씀해 보세요.”


  그는 그러면서 옆에 앉아 있던 비서와 귓속말로 무언가를 주고받았다.


  “우선은 한 두 개의 단체로 통합된다면 그동안 지급되던 백수 지원 기금이 대폭 삭감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지원되는 금액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인데 이 상황에서 기금이 삭감된다면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의 말은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생각이었다. 현재 정부에서 지원하는 백수 지원금은 복지 기금보다도 많았다. 오히려 교육예산이나 국방예산과 맞먹을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통합시켜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요.”


  김 내정자는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다른 이유를 물었다.


  “또 하나는 세대 간, 지역 간의 불화와 갈등을 조장시킨다는 겁니다. 저희 단체들은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필요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발생된 단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각 단체들은 저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물과 기름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절대로 함께 섞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있나요?”

  “지금도 몇몇 규모 있는 단체는 정치색이 뚜렷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틈만 나면 정치 세력화 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 두 개의 단체로 통합을 시켜 버린다면 이는 분명히 그쪽으로 기울어질 것이 자명합니다.”


  그의 마지막 주장은 의외로 설득력이 있었다. 김 내정자도 거기 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문득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 정치 세력화라는 점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거센 폭풍이 일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내 저으며 의식 속에서 세차게 몰아치는 파도를 빠져나왔다. 벽에 걸린 시계는 어느덧 밤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도 먹지 않고 이어지던 마라톤 회의는 9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날 기미가 보였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건의사항은 적극 검토 하겠습니다.”  


  그는 마이크 앞에 서서 이 말을 힘차게 하면서도 앞으로 이들과의 싸움이 상당히 지난할 거라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동의안 투표 당일-


  언론에서는 백수부 장관 임명 동의안이 부결될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투표 당일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는 그 반대였다. 투표수 271표 중 찬성 231표 반대 38표 기권 2표로 김 내정자의 장관 임명이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인사들까지도 변화를 요구할 만큼 현 상황이 이토록 절망적이었던 것일까? 표결을 지켜보던 대다수 국민들은 임명 동의안이 확정되자 대체적으로 환영을 표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발언권이 약해질 것을 염려한 일부 시민 단체에서는 반대 성명을 내고 김 내정자와 대통령의 모형 인형을 들고 나와 재활용 도시의 광장 사거리에서 화형식을 벌이기도 했다. 청문회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던 해외 언론들도 임명 동의안이 가결되자 즉시 본국으로 타전을 보냈다. 다음날 각 신문에서는 “재활용 도시 초대 백수부 장관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앞으로의 전망과 함께 재활용 도시에서의 백수부 장관 탄생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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