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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Oct 15. 2024

[단편] 아스팔트 위의 남자

재활용센터에 가면

1.


  사내가 깨어난 곳은 재활용 도시 외곽의 아스팔트 위였다. 그의 머리 위로는 검은 차양이 드리워져 있어서 여간해서는 밖에서는 이쪽을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머리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빛이 견디기가 힘겨운지 사내는 몹시도 헉헉거린다. 간간히 바람이 불었지만 먼발치에서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사내의 숨을 더욱 갑갑하게 조여 온다. 챙이 달린 파란 모자가 아니었다면 사내는 벌써 몇 차례 까무러쳤을지도 모른다. 사내는 연신 좌우를 살핀다. 불안한 눈동자를 쉼 없이 굴려댄다. 전방에 ‘공사 중’이라고 쓰인 비상 표지판 서너 개가 세워져 있다. 그 앞에는 ‘급커브 사고다발지역’이라고 적힌 경고판이 서있다. 뒤도 돌아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어차피 뒤쪽도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무슨 희망이라도 찾고 싶었던 것일까. 사내는 다시 고개를 좌우로 돌려본다. 도로 양쪽에는 소나무가 반쯤 깎아져 내린 절벽이 비스듬히 내려앉아 있다. 사내를 삼켜버린 도로는 폭이 꽤나 넓다. 새로 포장을 했는지 짙은 검은색이었고 특유의 아스팔트 냄새가 진동을 했다. 몇 번 국도 일까. 3번 국도. 아니면 27번. 어쩌면 사내가 종종 다니던 33번일까. 그렇지만 이 근처엔 사내의 위치를 확인할 만한 어떠한 표시도 없다. 외진 도로와는 어울리지 않는 회색 카메라 두 대가 사내의 전방 20m 지점에 설치되어 있다. 마치 시선이 아스팔트에 박혀 있는 사내에게 고정되기라도 한 듯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다. 간간히 트럭과 자가용 몇 대가 부우웅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사내는 그때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살려달라고 외쳐본다. 하지만 차들은 하나같이 비상 표지판을 피해 제 갈 길만을 내 달릴 뿐이다.


출처-pixabay


  “끄으응.”

  사내는 단말마의 신음을 터뜨린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이번엔 낮게 읊조려 본다.

  “도대체, 어떤 개새끼야!”


  그러다가 사내는 갑자기 분노가 치받쳐 올라온 듯 눈을 부라리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그의 비명은 굽이진 산허리를 돌고 돌아 공허한 메아리만 허공에다 쏘아댈 뿐이다. 언제부터였을까?라고 사내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도대체 왜? 사내는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연신 눈을 깜박이며 지난 며칠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하루나 이틀, 사흘. 아니면 그보다도 훨씬 오래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목요일 저녁에 딸아이의 보험 계약 건으로 회사 근처의 호텔 로비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잠시 만나고 택시를 탄 기억까지는 선명했다. 여자가 건네준 요구르트 하나를 무심코 받아 마시긴 했지만 그날 저녁은 물론 다음날 아침에도 별 이상은 없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할 때 회전문을 나오면서 살짝 어깨를 마주친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빛이 유난히 날카롭긴 했지만 신참 직원이었다. 그렇다면 사내가 퇴근 후에 종종 들르던 호텔 바의 여직원이었을까. 그녀에게 특별히 원한을 살만한 일을 저질렀었던가. 혹여 추잡한 짓거리라도 저질렀나? 풍만한 가슴과 늘씬한 다리를 힐끔거릴 때는 잠시 욕정이 솟긴 했지만 술김에라도 그 하얀 속살이나 탱탱한 엉덩이를 주물럭거린 적은 없었다. 게다가 사내는 그녀에게 수시로 상당한 액수의 팁까지 주었으므로 그녀일 리는 없었다. 사내는 그날도 저녁 늦게까지 평소에 즐겨마시던 버드와이저를 한 병 가까이 마셨고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 바를 나왔다. 한 여름의 열대야는 밤인데도 그를 온몸이 땀으로 젖게 만들었다. 전자제품 쇼 윈도를 지날 때는 미모의 아나운서가 아홉 시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발에 거대한 돌을 매단 채 한강에 투신한 남자의 소식을 무표정한 모습으로 전하고 있었다. 좌우로 길게 늘어선 상점을 벗어나 편의점을 지나쳐 아파트의 놀이터에 다다를 때쯤 약간의 바람이 불었고 동시에 구토와 현기증이 일었다. 그리고서 깨어보니 이 빌어먹을 곳이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그 후로 며칠이나 흘렀는지 사내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2.


  외진 곳이라 그런지 도로는 승용차보다는 트럭이나 레미콘 같은 작업용 차량이 더 많이 다녔다. 육중한 몸체의 트럭이 한 번씩 지나칠 때마다 풀풀 먼지가 일고 눈이 따가웠으며 숨이 턱턱 막힌다. 방금 전에도 돌무더기를 한가득 실은 덤프트럭 세 대가 연달아 사내를 지나갔다. 마지막 덤프트럭이 노란선이 그어진 둔덕을 넘을 때 잠시 요동을 쳤고 그 바람에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떨어져 나와 사내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지나갔다. 그는 하마터면 마지막 남은 볼링 핀처럼 스페어 처리가 될 뻔했다. ‘끄으응.’ 사내는 다시 한번 신음을 내뱉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사내는 숲 속에서 뭔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그는 자신을 이 빌어먹을 아스팔트 한 복판에 처박아 둔 작자가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나 싶어 그쪽으로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 동시에 잠시 잊고 있던 공포가 엄습한다. 공포는 언제나 절망과 두려움을 양 어깨에 메고 오는 법.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공포는 사내에게는 정말로 낯선 경험이다. 사내는 가만히 숨을 죽이지만 그의 심장은 낡은 기차의 녹슨 바퀴처럼 헉헉거린다. 숲에서 들려오는 음습한 소리. 바스락.... 바스락... 그것은 분명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다. 하지만 풀숲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정체불명의 괴한이 아니라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였다. 사내는 긴장이 풀리자 온몸에 힘이 빠져 버린다. 사내와 놈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놈은 사내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연신 풀숲의 흙을 훔쳐낸다. 도로변의 풀숲을 어슬렁거리던 놈은 도로를 건너려는지 두어 발짝 앞으로 내딛다가도 차가 오면 뒤로 물러서고는 했다. 그런 동작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사내는 자신이 처해 있는 절박한 상황도 잊은 채 그 장면을 몹시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본다. 아무래도 도로 건너편에 먹을거리나 제 동료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돌려보지만 건너편 풀숲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내는 그때서야 이 끔찍한 상황을 다시 떠올린다. 그는 문득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선 혼자서 주절거린다.


  “이건 꼭 오대수가 되어 버린 느낌이군.”


  꼬르륵... 꼬르륵... 그는 지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다. 기억이 없으니 마지막 식사를 언제 했는지도 모른다. 사내는 문득 오대수라는 작자가 부러웠다. 부스스한 머리와 수염을 기른 ‘올드보이’. 그치에겐 최소한 매일 중국집의 군만두와 편안한 잠자리가 주어졌었는데 지금 자신의 주위엔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이대로 밤이 된다면 언제 자동차에 치여 목이 뎅겅 날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사내의 공포감은 극단으로 치달았고 모든 것이 절망스러웠다. 그 공포와 절망을 삼켜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사내는 갖은 욕설과 비명을 내지른다.


   “아아악~ 이런 씨팔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떤 개자식이 날 이런 곳에다 처박아 놨어. 빨리 그 면상을 드러내란 말이야 이 개자식아!”


  하지만 사내의 날 선 비명은 을씨년스러운 돌무더기와 허공으로 황망히 사라질 뿐 사방은 여전히 고요했고 킁킁 거리며 숲을 헤집고 다니던 멧돼지만 사내의 외침을 좇아 고개를 두리번거릴 뿐이다.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내의 반복되는 괴성에 짜증이 났는지 놈이 왔던 풀숲으로 잽싸게 사라져 버린다.    


3.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사이 뒤에 짐을 잔뜩 실은 오토바이 한 대와 덤프트럭 석 대만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사내를 비켜갔을 뿐 사내의 주변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은 이제 남자의 정수리 꼭대기에서 한낮의 폭염을 퍼붓는다. 사내의 입술은 바짝바짝 타오르다 못해 오랜 가뭄의 논바닥처럼 버석버석 갈라졌고 아스팔트는 더욱더 뜨거운 열기를 사내의 얼굴 위로 훅훅 뿜어댔다. 사내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가늠해 보며 지금은 정오가 조금 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소라면 호텔 식당 같은 지점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김 대리와 함께 그날 치 주식시황을 주고받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꼴이람.’ 사내는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기가 막히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따금씩 지나다니는 트럭이 일으키는 먼지 때문에 입안이 까끌까끌하다. 캭, 퉤. 나무처럼 아스팔트에 뿌리내린 허벅지와 발목에선 무언가가 징그럽게 스멀거린다. 두 번씩이나 오줌을 지린 바지는 축축하다 못해 지린내가 올라온다. 모자를 눌러쓴 이마와 얼굴에선 땀이 비 오듯 솟는다. 머리도 가려웠지만 긁을 수도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내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갈증이었다. 남들보다 힘들게 보냈던 군 복무시절 이후로 이토록 갈증에 허덕인 적은 없었다. ‘캭, 퉤.’ 사내의 입안은 침이 고인다. ‘시원한 물 한잔만 마셨으면....’ 바로 그때였다. 오전에 잠시 얼쩡거리다 사라졌던 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부스럭....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놈은 도로 안쪽으로 왼쪽 앞발을 내딛는다. 놈은 이번엔 기필코 도로를 건너려는 모양이다. 멀리서 차가 한 대 내려오자 뒤로 주춤 물러난다. 주춤거리던 놈은 다시 왼쪽 발을 내딛는다. 오른쪽 발을 내딛는다. 연이어서 내딛는 뒷발. 그리고 길고 납작한 코를 킁킁 거리며 서서히 앞으로 나온다. 그 순간 고개 너머로 육중한 덤프트럭 한 대가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맹렬한 속도로 이쪽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놈은 그걸 눈치채지 못한 듯 천천히 도로를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삼분의 일쯤 건넜을까. 거대한 덤프트럭이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를 했을 때는. 관성을 이겨내지 못한 트럭은 십여 미터를 맹렬한 속도로 치닫는다. 쾅, 꽤 애액! 돼지의 날 선 비명과 육중한 몸체가 거대한 트럭에 부딪는 소리가 적막하기만 하던 도로와 산야를 황황하게 울려 퍼진다. 십 여 미터를 붕 날아오른 놈의 몸뚱이는 사내의 머리를 훌쩍 뛰어넘어 건너편 도로의 턱받이로 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놈은 앞다리를 몇 번 버둥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축 늘어진다. 놈의 목 부분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검은 아스팔트를 붉게 물들이고 사내의 목 아래로 스르륵 스며든다.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차문을 연 채 주위를 살피던 운전자는 건너편 길가로 떨어진 놈의 사체를 확인하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부르릉 시동을 건다. 사내는 뒤로 사라지는 ‘그 운전사를 향해서 살려 주세요’라는 말을 외치지 않은 자신을 저주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삐이익~ 아아아!”

  카메라의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래 처음부터 저거일 거라고 생각했어.”

  “삐이익~ 삐이익~”

  “당신, 도대체 누구야.”


  사내는 카메라를 통해서 자신을 보고 있을 괴한을 상대로 최대한 감정을 누그린 채 말을 걸었다. 하지만 카메라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나가는 바람소리였나? 그는 더위와 갈증으로 탈진한 나머지 이젠 환청마저 들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삐이익~ 아아아!”


  바람소리나 환청은 아니었던 듯 이번엔 확실하게 들린다.


  “박경용 씨 편안하신가요?”


  사뭇 비아냥 조인 목소리는 하이 톤의 여자 목소리다.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짧은 음성,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발음, 사내는 전에 어디선가 저 목소리를 들어본 것 같다. ‘저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더라?’ 점심시간마다 듣던 FM라디오의 디제이였던가. 종종 들르던 스포츠센터의 사내 방송 아나운서 같기도 했다. 하지만 사내는 선뜻 목소리의 주인공을 떠올리지 못한다.


  “아아아~ 박경용 씨 편안하신가요?”


  사내는 그때서야 자신의 이름이 박경용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얼마 전에 서울 근교의 신도시에 들어선 이십 층 건물에 새로 지점을 낸 OO은행의 지점장이라는 사실도. 은행 예치 문제로 몇 십억 대 자산가와 약속을 했었던 일도. 그리고 지점장이 된 지 한 달도 채 안되어서 이런 엿 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그와 더불어 행방불명이 된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아내와 딸아이의 얼굴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박경용 씨 대답이 없네요. 편안하신가요?”


  여자의 거듭되는 질문에 사내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를 이 구석진 아스팔트 한가운데에 처박아 놓고서 고작 처음 내뱉는 소리가 편안하냐고?


  “염병할, 돌아버리겠군.”

  “박경용 씨, 질문에 대답만 하세요.”

  “야, 이년아. 잡소리 집어치우고 대갈통 부숴버리기 전에 빨리 안 꺼내 줘.”

  “아아아, 박경용 씨 입이 거친 건 여전하시군요.”

  “흥.... 입이 거칠어?”

  “그래요.”


  여자의 대답은 의외로 짧았다. 짧지만 그 음성엔 알 수 없는 사내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가득 담겨 있다. 카메라 속 여자의 말처럼 사내의 입은 국내 굴지의 은행 지점장이라는 사회적 신분에 걸맞지 않게 제법 투박하고 거칠었다. 아스팔트 속에 처박힌 남자가 지점장이 아니라 한평생 동안 사회의 밑바닥을 바닥바닥 기던 공사현장의 막일꾼이나 노숙자였다면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사내가 생각하기로는 자신은 언제나 사회에서 모범적이었고 그것은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자상한 남편이자 아이들에게는 친구 같은 아빠였다. 게다가 매달 후원금을 두 군데나 내는 자신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사내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내의 과격한 반응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 이년아. 너 같으면 그런 소리 안 나오겠냐? 도대체 왜 날 이런데 처박아놨어? 뒈지고 싶지 않으면 빨리 여기서 꺼내줘.”

  “박경용 씨, 입에 걸레를 문걸 보니 상당히 화가 나셨나 보군요.”

  “도대체 너 누구야.”

  “궁금한가요?”

  “그래 정체가 뭐야?”

  “급할 거 없잖아요. 어차피 당신은 저를 모를 테니까요.”


  카메라 속의 여자는 사내가 무슨 말을 내뱉건 상관없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저 여자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사내는 다시 구토와 현기증이 일었다. ‘이름을 말해도 모를 거라니, 그럼 도대체 저 여자는 왜 나를 여기에 묻어놨단 말인가?’ 사내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있는데 카메라 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이제 갓 유치원에나 들어갔을 법한 여자 아이의 목소리였다.


  “엄마, 엄마 거기서 뭐 해?”

  “소율이 벌써 일어났어?”

  “응.... 뭐 해?”

  “엄마 지금 중요한 일 하고 있어.”

  “그게 뭔데?”

  “언니 한을 풀어주고 있는 중이야.”

  “한? 그게 뭐야?”

  “응... 그런 것이 있어.”


  사내는 다시 현기증이 일었다. ‘한? 언니의 한을 풀어주고 있는 중이라고? 그럼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 여자의 딸을 죽이기라도 했다는 건가?’ 저 여자는 지금 미쳤거나 제정신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고 사내는 생각했다. 어쩌면 외모가 비슷한 다른 사람과 자신을 혼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세상엔 비슷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까.’ 사내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두렵고 떨리던 마음이 다소 진정되는 듯했다. 더군다나 사내에게는 오 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모는 물론 목소리와 이름도 비슷해서 식구는 물론 어머니마저도 종종 헷갈리곤 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툭하면 싸움에 도둑질에 감옥을 제집 안방 드나들듯 했으니 분명 그 자식의 짓이 틀림없었다. 그 새끼는 죽어서도 사고를 치는군,라고 사내는 생각했다.


  “이봐, 지금 뭔가 착가하고 있는 모양인데.”

  “착각이라고?”

  “그래, 나는 당신이 찾는 사람이 아닐 거야.”

  “제가 누굴 찾는데요?”

  “당신 딸을 죽인 사람.”

  “누가 누구를 죽였다고?”

  “아이, 씨팔. 방금 그랬잖아.”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한을 풀어준다며?”

  “한, 한이라고요? 그래요. 어쩌면 저는 한풀이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그래요. 우리 큰 아이를 죽게 만든 건 결국 당신 인지도 몰라요? 언제나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던 우리 딸, 소윤이. 그 착한 아이를 당신이, 아니 당신들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예요.”


  사내가... 당신들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그럼 사내가 직접 죽인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사내는 여자의 말을 들을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엄마, 나 목말라.”

  “그래, 엄마가 슈퍼에서 시원한 음료수 사줄게.”

  사내는 다시 침이 고인다. 물이라는 말을 듣자 미칠 것만 같다.

  “이봐, 이봐, 나도 물 좀 줘. 내가 당신 딸아이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난 결코 그런 적이 없어. 그러니 제발 물.... 물 좀 줘.”

  “뭐 그 정도 고통 가지고 그렇게 발광하고 지랄하세요.”

  “.... 아... 씨팔... 돌아버리겠네.”

  “참 제가 누군지 궁금하다고 했지요?”

  “그래.”

  “문경.... 김문경이에요!”

  “?????”

  “자 이제 소율아, 음료수 사러 가자.”

  “이봐... 이봐... 잠깐!”


  사내의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딸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문경, 김문경이라고....’ 사내는 여자가 말해준 이름을 수십 번 되뇌어 보았다. 하지만 그의 지나온 사십 년의 인생 어디에도 그런 이름과 관련된 기억은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귀신에 홀린 듯한 느낌이다. 사방이 고요로 묻히려 할 때쯤 카메라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바이올린 같기도 했고 첼로 같기도 했다. 그것은 처음엔 저음으로 낮게 흐르다가 경쾌해졌고 다시 3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으로 사내의 귓전을 두들기면서 기괴해진다. 간간히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 소리도 들린다. 빠르고 강렬한 비트의 드럼 소리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사내의 정신을 더욱 황폐화시킨다. 이윽고 사내의 영혼을 쥐어짜던 기괴한 소리가 멈춘다. 사방은 다시 고요로 빠져든다. 그 뒤로 한참 동안을 카메라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4.


  사내는 허기와 갈증에 탈진한 나머지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다기보다는 까무러쳤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사내는 꿈속에서 악몽을 꾸었다. 여자의 말 때문이었을까. 꿈속에서 그는 끔찍한 살인마가 되어 있었다. 어두운 밤이었고 어딘지도 모를 낡은 창고 같은 곳에 사내를 포함해서 세 명의 남녀가 아이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다. 아이는 이미 숨이 끊어졌는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축 늘어져 있다. 사내 옆에 있던 남자가 스위스제 잭나이프로 죽은 아이의 배를 가른 것은 순식간이었다. 여자와 사내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아이의 뱃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갈라진 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남자가 꺼낸 것은 죽은 아이의 생간이었다. 그가 생간을 쑥덕 잘라내더니 한입에 삼켰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옆에 있던 금발의 여자는 공포에 질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가 사내에게도 생간을 내밀었다.


  “먹어.”

  “싫어.”

  “어서 먹어.”

  “우엑~.”

  사내는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씨팔, 나만 뒤집어쓸 수는 없잖아.”


  남자의 날카로운 칼끝이 사내의 목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깔 끝으로 피가 스며 나왔다. 광기 어린 그의 눈빛은 여차하면 찌를 태세다. 목전의 간에서는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비린내가 진동했다. 물컹한 느낌이 돼지의 그것과 흡사했다. 맛도 비슷할까? 맙소사. 사내는 자신이 생각하고도 놀라서 소스라친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코도 막았다. 입안에서 두어 번 씹혔을까? 생간은 그대로 목울대를 타고 위장으로 넘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남자는 남은 조각을 들고 공포에 떨고 있는 여자에게로 갔다. 금발이 까무러쳤다. 남자는 찬물을 끼얹은 다음 여자의 뺨을 몇 대 후려갈겼다. 여자가 깨어났다.


  “먹어.”

  “차라리 저를 죽여요.”

  “먹어.”


  이번엔 남자의 깔 끝이 그녀의 볼을 짓누른다.


  “정말 죽고 싶어. 죽여줄까?”


  남자는 정말로 여자를 죽일 것만 같았다. 남자의 우악스러운 손이 금발의 입을 벌린다.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이 뭉크의 ‘절규’처럼 괴상하게 일그러진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여자는 여전히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간을 삼킨 다음 흐느낀다. 

  우두둑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사내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여전히 아스팔트 속에 처박힌 채였다. 하늘을 보니 크고 작은 먹장구름 몇 개가 사내의 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 방울, 두 방울 아스팔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였다. 사내는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허겁지겁 입을 벌려 빗물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위로 올려 젖힌 고개가 뻐근하고 아팠지만 한참 동안을 그렇게 입을 벌린 채 빗물을 받아 마셨다. ‘으하하... 으하하하....’ 한참을 그렇게 빗물을 받아마시던 사내는 갑자기 미친 듯 웃어대기 시작했다. 사내는 방금 전의 그 꿈이 너무나 생생했다. 그 꿈이 죽었다던 여자의 딸아이와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걸까. 사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슨 일을 과거에 저질렀던가? 카메라는 여전히 말이 없다. 도로 턱받이에 걸쳐진 돼지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기분 나쁜 신음소리를 내며 힘없이 앞발을 휘적거린다.


5. 


  여자가 다시 카메라 속으로 나타난 것은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작열하던 태양은 열기를 잃고 서녘 하늘로 홀연히 넘어갔지만 오후 내내 달궈진 아스팔트는 하루의 남은 열기를 한꺼번에 뱉어 버리려는 듯 여전히 지독한 열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삐이익~ 삐이익~ ”


  사내의 감겼던 두 눈과 귀가 번쩍 뜨인다. 하지만 기진맥진한 사내는 이제 말을 할 힘도  카메라를 쳐다볼 힘도 없다.


  “답을 찾으셨나요?”

  “........”

  “당신이 왜 거기에 쳐 박혀 있게 되었는지.”

  “몰라, 모르겠어.”

  “저런, 머리가 나쁘군요.”

  “캭, 퉤.”

  사내는 다시 침이 고이는지 바닥에 침을 뱉는다.

  “소윤이는 그림을 아주 잘 그렸어요.”

  “그래서?”

  “미술 학원을 다닌 지 채 석 달도 안 돼서 몇 년씩 배운 아이들을 다 따라잡았어요. 원장 선생님은 소윤이의 예술적 재능이 남다르다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꼭 유학을 보내라고 하셨었어요. 틀림없이 훌륭한 화가가 될 거라는 말과 함께 말이에요. 그때가 꼭 삼 년 전이었어요. 환경 미화원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하던 우리에게 유학은 꿈만 같은 일이었지요. 하지만 남편과 저는 어떻게든지 소윤이의 예술적 재능을 살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개인 과외에서부터 학습지 교사, 파출부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었지요. 오천만 원이 넘는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이 년 정도 그렇게 억척을 떨었더니 이천만 원이 모아지더군요. 하지만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지요. 그때 미술원장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전국 규모의 미술대전에서 입상을 하면 장학생으로 갈 수 있다고 말이에요.”

  “...... 그런데?”

  “잔말 말고 더 들어보세요.”


  여자는 여전히 사내의 시큰둥한 대답과 상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전국 중학생 미술 대전에서 대상을 탄 작품이 문제였어요. 그해의 주제는 바람과 환경이었거든요. 소윤이는 각기 모양이 다른 12개의 기하학적 도형을 3줄로 나열해 놓고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는 길을 내 지구 형상의 도형에서 껍질이 떨어지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지요. 추상성을 띠면서도 전달하는 이미지가 확실해서 심사위원들로부터 굉장한 평가를 받았어요. 그림에는 문외한이던 제가 봐도 소윤이의 그림은 정말 훌륭했어요. 그런데 같이 시험에 응시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 다른 미술 대전에서 금상을 받았던 작품과 유사하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여자는 이 부분에서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낮게 흐느끼기 시작한다.


  “흑흑흑......”

  “소윤이는 결백한 아이였어. 내가 잘 알아. 절대로 남의 것을 베끼거나 표절할 아이가 아니었어. 그런데도 방송과 언론에서는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채 온갖 추측성 보도를 해댔지."


  사내는 몇 년 전 신문에서 그런 내용을 본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악의적인 인터넷 댓글에 충격을 받은 십 대 소녀가 11층 임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뉴스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사내는 그때 ‘뭐 그딴 일로 아까운 목숨을 버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 소설 같은 기사에 달리던 수많은 댓글들... 그 끔찍한 기억들. 아~ 칼이나 총 같은 끔찍한 무기가 아니라 말로도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심장을 꽂는 것만 같았어. 내 가슴에.... 그런데 그토록 착하고 마음이 여린 우리 소윤이는 어땠을까?”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무슨 상관이냐고?”

  여자는 강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

  “네 놈이 소윤이에게 내뱉었던 그 더러운 말들.....”

  “당최 무슨?”


  우습게도 사내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화장실의 휴지 조각처럼 구겨져 버린 무수한 말의 쓰레기들. 여자는 그것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타인이 타인에게 가하는 무수한 폭력들, 그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언제 어디서든지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거대한 나무처럼 자라서 마침내는 날 선 검이나 도낏자루가 되어서 사람들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한꺼번에 베어 버린다.


  “그거 알아? 아무리 죽을죄를 지은 사형수라도 그의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지는 법인데, 내 딸 소율이는 죽어서도 그 억울함을 풀지 못했어. 화장을 하고 강에다 뼛가루를 뿌리는 순간에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플들이 소율이의 신문 기사와 미니 홈피에 넘쳐났지.....”

  “... 그럼?....”


  사내는 언뜻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사내는 그즈음 새로운 고객을 상대하느라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중이었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런 짓을?’ 사내는 비로소 자기가 이곳에 쳐 박힌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사내는 억울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잃어버리는 삶인데 그런 사소한 것까지 기억할 수 있겠냐고 사내는 카메라 속 여자에게 항변하듯 대답했다. 


 “그까짓 것이라고....”

 여자의 말끝이 파르르 떨렸다.

 “아냐, 아냐......”

 사내는 지금 제정신이 아닌 여자의 비위를 건드린 것 같아 비굴한 모습으로 사래를 쳤다.

 “내... 내가... 잘못했어.”

 “아니, 너 같은 놈들에게 그런 말은 안 어울려.”

 “끝까지 당당해 봐.”

 “흥미로운 점은 말이야. 하나같이 다 자기가 내뱉었던 더러운 말들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거야. 당신처럼..... 그래서 돌덩이를 매단 채 한강물에 떨어지면서도, 불타는 자동차 속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면서도, 끝까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억울하다고 울먹이지 않았겠어.”

  사내는 불현듯 그날 저녁거리에서 미모의 아나운서가 전하던 뉴스 기사를 떠올렸다.

  “엄마, 저 아저씨가 언니 죽게 했어?”

  “응”

  “아니야, 아니야!”


  사내는 여자의 딸이 자기의 구세주라도 된 것처럼 아니라고 울부짖었다.


  “유치원에 다녀오다가 아파트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언니를 본 소율이는 일 년 동안을 정신병원에 있었지. 손에 잡히는 물건이면 뭐든 베란다로 내 던지는 바람에 집에는 남아나는 물건이 없었어.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정신 상담을 받고 있어."

  “차라리 경찰에 고소를.....”

  "호호호. 고소? 씨발, 대한민국 경찰, 법, 법원. 정말 웃기는 일이에요. 경찰도 검사도 법원도 다 한통속이었지. 아니 따로국밥이었나? 처음엔 관련법이 없으니 고소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고. 어떤 무식한 경찰관이 그랬지. 알고 보니 돈을 요구했던 거야. 일주일간을 울고불고 매달렸더니 고소하려면 직접 증거를 찾아와야 한다고? 컴퓨터라고는 컴 자도 모르는 내가 어찌어찌해서 증거라는 걸 찾아갔더니.... 기껏 고소해 봐야. 재판 한번 받고 벌금 몇십만 원이면 끝이라더군요. 그렇게 일 년을 끌었어. 십 년 동안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한 남편은 채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새벽청소를 하다가 뒤에서 달려오는 덤프트럭에 깔려 하반신이 마비되었지. 그 운전기사 놈도 소주를 세 병이나 마셨더군요. 등에 난 욕창을 볼 때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구역질이 올라오지. 차라리 남편이 그때 죽어버렸으면... 어쩌면 이렇게 까지는....”

  여자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았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사내는 거의 필사적이었다.


  “그래도 당신은 운이 좋은 편이야. 맨 마지막 차례였으니. 참... 그 영화 봤는지 모르겠군. ‘올드보이’라고. 거기서 유지태였던가? 그 배우가 영화 속에서 흘러가듯 말한 대사가 하나 떠오르는 군. 모래알이나 바위덩이나 물속에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라고. 처음엔 그 영화를 세 번씩이나 보면서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었어. 근데 소윤이의 일을 겪고서는 뼈저리게 깨달았어. 더구나 네놈이 소율이한테 던진 것은 모래나 자갈이 아니라 커다란 바위 덩어리였거든. 명심해. 모래알이나 바위덩이나 물속에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라고.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맞은 개구리는 즉사하는 법이라는 걸 말이야. 그것은 작심하고 수백 번을 던진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안 돼, 살려줘.... 살려줘.”


6.


  더 이상 여자의 분노 섞인 목소리도 기괴한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 사내의 주변엔 완전하고도 온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사내에게 또 하나의 검은 장막이 드리워진다. 불빛 하나 없는 외진 아스팔트. 외진 국도. 그곳에 밤이 찾아오자 들짐승과 수많은 자연의 피조물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모습들을 하나씩 내비친다. 그 검은 장막 속으로 슬며시 숨어버린 붉은 바위와 무성한 잡초들 그리고 이름 모를 들짐승들의 울부짖음. 이 적막한 곳에선 그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한 존재들이었다. 그것은 낮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저마다의 언어로 사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휘황찬란한 빛에 익숙했던 사내는 끙끙 신음만 내뱉을 뿐 어떤 물음에도 답을 하지 못한다. 하나... 두울... 밝은 대낮에도 몇 대 없던 차들이 밤이 되자 불나방처럼 넘쳐난다. 사내는 자신을 휘감는 수많은 자동차의 불빛에 눈을 감는다. 고통과 절망의 극단은 그런 것일까? 환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같은 것. 그 밝음의 이면에 감춰져서 보이지 않는 어떤 쓰라림이나 회한 같은 것. 사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이 그녀에게는 그토록 원한이었던가?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또 우리에게는 그토록 원한이었던가? 식물처럼 아스팔트에 뿌리내린 사내는 차례로 교차되는 어둠과 밝음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사내는 혼미해졌다가 다시 깨어나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그 혼미한 의식가운데 사내는 문득 숲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부스럭. 부스럭. 이번에는 환청일까? 아니면 죽은 어미를 찾는 새끼 돼지일까? 얼굴에 복면을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내의 예상은 이번에도 빗나갔다. 복면을 한 사람 옆엔 귀여운 여자 아이가 예쁜 강아지 인형을 들고 서있다. 사내의 눈동자엔 그들의 모습이 단지 검고 희미하게 비칠 뿐이다. 검은 물체가 서서히 그의 앞으로 다가온다. 검은 차양이 치어지고 그의 목숨을 담보하던 비상 표지판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전조등을 켠 차량이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사내는 눈을 감는다. 마침내 사내의 정면으로 돌진해 오는 육중한 덤프트럭 한 대. 빠앙, 빠앙. 사내는 다시 눈을 감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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