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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Oct 11. 2024

[단편] 괴물을 열람하다.

재활용 센터에 가면

1.


“자 그럼 지금부터 괴물을 해체하는 과정을 설명하겠습니다.”


마침내 괴물 해체 감독관 B는 재활용 도시의 시청 앞 잔디 광장에 쓰러져 있는 거대한 괴물의 해체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괴물은 오 층 건물 정도의 높이였고 길게 늘어진 꼬리 쪽까지 포함하면 대략 축구장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 시청 홈페이지에서는 지난 두 달이 넘도록 새로운 괴물 해체 공고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한 달이면 두세 마리씩 나타나던 괴물이 벌써 두 달이 지나도록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했다. 이제나 저제나 괴물의 등장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매일 아침마다 시청 앞 광장에 모여서 해가 질 때까지 시위를 벌였다. 밤이 되면 일부 술에 취해서 이성을 잃은 사람들 때문에 시위는 격렬해지기도 했다. 마침내 지난주 토요일 저녁 시청 앞 잔디 광장에 새로운 괴물이 등장했다. 그것은 이제껏 등장했던 괴물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 그 크기부터가 남달랐다. 그것은 경외와 호기심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오늘 아침 괴물 해체 작업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의 직업은 그들의 외모만큼이나 다양했다. 새로 부임한 듯 보이는 감독관 B는 표정에서부터 그리 녹록지 않아 보였다. 전임 감독관보다 덩치도 컸고 목소리도 걸걸한 탓에 조금만 인상을 써도 사람들은 주눅이 들었다. 신임 감독관은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오직 자신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한 듯 목소리에 잔뜩 힘을 주었다. 사람들은 신임 감독관의 기대에 실망을 줘서는 안 되겠다고 여겼는지 신체의 모든 촉수를 그에게 향했다.


출처-pixabay


“여러분들이 우선 해체해야 할 부위는 ‘코’입니다.”

감독관은 괴물 앞에 서있는 커다란 작업도(괴물의 내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감도처럼 생긴 해체 작업도는 크게 머리와 몸통 그리고 꼬리,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잘 들으세요. 입이나 눈, 귀가 아니니깐. 지난번 괴물 해체를 잘못해서 해고된 선임자 말을 들으니 작업할 때 꼬리부터 해체하는 조가 있었다던데 저는 그렇게 어물쩡 넘어가지 않을 거요. 그러니 명심들 하시오. 작업 방법은 동일한데. 어떤 괴물이든 꼬리는 맨 나중에 해체하시오. 명심하시오. 반드시 해체 작업 순서대로 해체하셔야 하오. 이를 어길 시 가차 없이…….”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 목을 자르는 시늉을 연거푸 세 번이나 해댔다.

“저기 질문 있습니다. 그럼 해체할 부위는 어떻게 정합니까?”

앞에 섰던 키가 작달막한 사내가 조급한 듯 질문을 던졌다.

“그건 조금 있다가 조 추첨으로 결정할 거요. 아아! 거기. 그거 만지지 마시오. 아직 살아서 꿈틀 거리는 거 모르시오? 모든 심폐 기능이 정지한 듯 보이지만 아직 시청 괴물 해체반의 마지막 테스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오. 조금만 회생기미가 보이면 언제든 해체반 휘하에 있는 <방역반>들이 살수차에서 독이든 물살을 마구 퍼부어 대야 하니까. 조심들 하시고.”

감독관이 짐짓 겁을 주며 그렇게 말했지만 광장에 쓰러져 있는 검은색 핸드백 모양의 거대 괴물이 다시 회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괴물은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후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단 한 번도 꿈틀거리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도 대부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재활용 도시의 유일한 공영 방송국인 <재활용 방송국>의 카메라가 24시간 생방송으로 괴물의 모습을 송출을 하는 바람에 이제는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괴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이 재활용 도시의 어딘가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괴물에 비하면 오래전에 죽은 괴물은 겁날 게 없었다. 사람들은 죽은 권력을 무서워하지 않듯이 죽은 괴물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권력을 무서워하듯이 지금 살아서 시내를 펄쩍펄쩍 활보하는 괴물을 무서워할 뿐이다. 그 괴물은 아직 괴물이 된 후 아무것도 삼킨 것이 없지만 이번엔 어떤 형태로 무엇을 삼켜버릴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저 핸드백 모양의 괴물은 싯누렇고 커다란 이빨을 드러내며 괴성을 지르거나 누군가를 삼키거나 해치려들 지도 않았다. 괴물은 그냥 그 커다란 몸피를 드러낸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살아있을 때 안개처럼 도시를 향해 거침없이 토해내던 콧김 같은 것이 없었다.

괴물은 한 도시에 두 마리 이상 존재하지는 않았다. 물론 학자들 간에는 이견이 있었지만 한 번에 두 마리가 나타난 적은 이제껏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한 마리가 나타나면 다른 한 마리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거나 바로 수명을 다했다. 문제는 괴물의 생존 기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괴물은 상당히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누리던 놈 같았다. 어쩌면 오래전에 이 도시에 괴물이라는 재앙을 뿌려놓고 시청 앞 광장의 시계탑 위로 사라져 버렸던 바로 그 괴물일지 몰랐다. 그 사실을 인지하던 순간부터 내 심장은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붉은 확성기를 든 채 바쁘게 돌아다니며 이 거대한 괴물의 해체 과정을 설명하던 감독관 B는 마침내 우리가 서있던 자리에 도착했다. 좋은 부위를 차지하려 아웅다웅하던 사람들에게 밀리던 우리는 어느새 괴물의 오른쪽 눈알 바로 밑에 서 있었다. 툭 불거져 나온 괴물의 눈동자 밑 부분을 발로 툭툭 치던 사내를 향해 감독관은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아 거기! 거기! 경계선 밖으로 나오시오.”

흠칫 놀란 사내는 재빨리 경계선 밖으로 나왔다.

“아! 그리고,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 아직 이 괴물을 열람하지 않으신 분 있소?”

감독관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한 가지를 빼먹을 뻔했다는 듯이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나는 순간 어떻게 할까 망설였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서너 명이 손을 들었다. 이렇게 큰 괴물을 해체하기는 처음이었다. 괴물을 해체하려는 사람들은 모니터의 영상을 통해서 충분히 괴물의 내부를 열람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것조차 하지 못했다. 손을 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감독관은 우리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양손을 허리춤에 괴었다. 그는 우리를 따로 불렀다. 

“그럼 다른 괴물들은 해체해 보았소?”

“………..”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군.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당신들은 괴물을 열람하면서 해체 작업을 진행하시오. 참나 이거야 원. 이런 생 초짜들을 데리고 어떻게 일을 해 먹겠다는 건지…..” 

감독관 B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더니 마지못해 우리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냈다. 이런 광경이 제법 익숙한 듯 사람들은 우리가 지나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감독관은 다시금 몇 번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꼭 가슴팍에 걸려있는 무전기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전기는 검은색이었는데 모서리 부분이 닿아서 어두운 회색빛이었다. 통화를 끝내고 나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는 모습이 영 불안해 보였다. 돌아서서 뒤통수 듬성듬성 흰머리가 보이는 그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사람들이 괴물에게 다가갈 때마다 확성기를 통해서 몇 번이고 같은 말들을 반복해 댔다. 

“어이, 거기!”

“어어~이, 거기!”

“어어어~이, 거기!” 

작업 모둠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네 명씩 편성이 되었다. 나와 같은 조에 속한 S와 J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들도 낯을 가리는 걸로 봐서는 서로를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거의 한 달이 넘도록 만만찮은 괴물 해체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들답게 체격은 다부지고 건장했다. 뜨거운 뙤약볕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S의 흰 피부와 윤기 나는 머릿결은 흰 가운 하나만 걸치면 영락없이 옛 시청 자리에 세워진 종합병원의 의사였다. 짝 달라붙는 티셔츠 위로 드러나는 그의 복근은 헬스클럽에서 다듬은 것이 분명했다. 반면에 키가 작고 머리가 곱슬곱슬한 J는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까무잡잡했다. 그는 펜이나 수술용 칼보다는 차라리 포클레인의 때 묻은 손잡이나, 삽, 낫이 더 잘 어울렸다. 이따금씩 인상을 쓸 때마다 그어지는 주름살은 그를 더욱 사내답게 보이게 만들었고 툭툭 튀어나오는 팔뚝의 문신과 붉은 심줄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2- 


이렇게 거대한 괴물 해체하는 작업은 처음이었다. 물론 전에는 학생 신분으로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박재 상태로 된 다른 소소한 괴물들을 열람한 적은 있었다. 실습 과정으로 삼일에 걸쳐서 모종삽으로 괴물의 왼쪽 눈알을 몇 차례 파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거대한 괴물을 열람과 해체를 동시에 하기는 처음이었다.

S와 J도 처음인 것 같았다. 아니 그들은 아예 생초짜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나처럼 감독관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나중에 맘에 안 들면 밀고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제 곧 시작될 이 엄청난 작업을 앞에 두고도 무척이나 태연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그들의 나른한 시선 속에는 지루함마저 묻어났다. 그들에게서 초조하다거나 불안한 기색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은 뜨거운 햇살아래에서 어떤 행위를 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했고 그럴수록 그들의 시선은 점점 더 나른해져 갔다. 하지만 감독관이 묵직한 무전기를 가슴팍에 매단 채 우리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자 그들도 조금은 긴장이 되는지 입술을 굳게 앙다문 채 시선을 감독관에게 고정했다.

“이 조는 왜 세 명뿐이지?”

감독관 B는 차트와 우리를 서너 차례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그리고 바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처음 볼 때부터 왼쪽 눈썹을 위로 치켜뜨고는 했는데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나타나는 습관인 것 같았다. 전화번호부처럼 두툼한 리스트를 한참 뒤적이던 그는 상당히 날렵한 동작으로 오른쪽 가슴팍에 걸려있던 무전기를 움켜쥐었다. 그런 직후 누군가를 호출했는데 그 목소리는 마치 쇠를 가는 듯 탁하고 귀에 거슬렸다.

“9조 작업 인원이 한 명 없는데 어떻게 된 거야?”

잠시 후 무전기에서는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괴물 해체 전산 시스템에 착오가 발생했나 봐요?” “망할! 또 그놈의 망할 시스템 착오야. 이게 벌써 몇 번째야. 망할 놈의 <괴물 해체반> 놈들 같으니.”

감독관은 무전기를 끄지도 않은 채 아예 신경질적이었다. 그는 이 회사 아니 회사라고 부르기엔 다소 애매한 <용역 회사>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 거친 욕설들은 연일 뜨거운 뙤약볕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자신과 달리 시원하게 냉방된 사무실에서 ‘재활용 커피’와 ‘재활용 빵’을 우적우적 씹어대며 키보드만 두드려대며 실없는 소리만 해대는 사무실 직원들을 경멸하는 듯한 어조였다. 무전기에서 다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전산 시스템 착오로 오늘 작업자 명단에서 세 명이 빠져있었는데 방금 괴물 해체반에서 그들을 명단에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지금 즉시 그쪽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빨리빨리….. 이런 망할!.”

감독관은 확실히 성격이 급했다. 지랄 맞도록 급한 데다 참을성까지 불어 터진 라면 국물에 말아먹은 듯한 감독관은 다시 신경질적으로 무전기를 꺼버렸다. 그는 초조한 듯 같은 자리를 서성이더니 채 오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열 번도 넘게 손목에 찬 시계를 올려다봤다. 다른 사람들은 멀찌감치 혹은 괴물의 붉은 경계선 바깥에서 산처럼 쓰러져 있는 괴물을 구경하는 일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우리 또한 전산 착오로 명단에서 빠졌다는 다른 사람이 오기 전까지 할 일이 없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괴물의 꼬리 쪽에서부터 몰려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두 갈래로 갈라졌다. 웅성거림 속에 흥을 돋우는 듯한 간드러진 휘파람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인파를 헤치고 우리 곁으로 오고 있는 사람은 사내가 아니라 상당히 키가 큰 여자였다. 하이일의 높이를 빼더라도 그녀의 키는 얼추 170센티미터는 넘어 보였다. 그녀는 쩍 달라붙는 스판 계열의 붉은 티와 징이 박힌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볼록 솟은 그녀의 왼쪽 가슴 중간에는 가로로 지퍼가 달려 있었다. 혹시라도 젖을 구하지 못해 우는 아이가 나타난다면 언제라도 수유를 해 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의 매끈한 이목구비를 확인한 순간 나와 S와 J는 동시에 회심의 감탄사를 내질렀다. 이렇게 험한 작업을 저토록 아름답고 섹시한 여자와 함께 한다는 것은 상당한 행운이었다. 망할 전산 시스템이 다시 착오를 일으킨 듯했지만 어쨌거나 우리에겐 행운이었고 감독관도 늘씬하게 뻗은 그녀의 허벅지에만 음흉한 시선을 둘 뿐 다시 무전기를 켤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해체해야 할 부위는…...”

그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다시 사람들을 향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아! 거기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직이란 말이오.”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른 곳은 우리 쪽에서 조금 떨어진 괴물의 꼬리 쪽 방향이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붉은 경계선을 넘어서 날이 선 도끼와 삽자루로 괴물의 두꺼운 가죽을 벗겨내고 있었다. 

이번 괴물은 모두 서른 조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한조에 네 명씩 서른 조면 얼추 괴물 한 마리를 해체하는데 백 이십 명이 투입되는 대형 작업이었다. 작업량이 만만치 않다 보니 방송과 언론사에서도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한쪽에서는 재활용 도시에서 가장 내실 있고 영향력이 높은 <재활용 방송국>의 한 여기자가 누군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가 처음인 듯 계속 말을 더듬었다.

작업기간은 대략 한 달 정도였지만 상황에 따라서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괴물의 입구도 입에서부터 목, 팔, 다리, 귀, 그리고 항문을 포함한 십여 곳이었다. 그 입구란 것도 편의상 그렇게 붙여놓은 것이지 인간의 그것처럼 생각한다면 오산이었다.

감독관 B는 다시 바쁘게 다니며 각 입구마다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투입을 시키더니 다시 우리 쪽으로 와서는 작업지시를 했다.

“9조는 이쪽 입구로 들어가서 왼쪽 방향으로 틀면 소의 내장 같은 부유물이 쌓인 통로가 나올 거요. 다른 작업조들이 드나들려면 불편하니까 우선 그 부유물부터 바깥으로 치우고 난 다음에 시작하세요.”

감독관은 확성기로 다시 한번 반복했다.

“아아! 거기 거기. 그쪽.”

“시작합시다.”

그의 말이 끝나자 그때까지 괴물 주변에 힘없이 널브러져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입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보이는 행태로만 보자면 그들은 흡사 제대 말년의 병장이나 예비군 7년 차 같았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게으름은 금세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해체 작업을 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런 말들을 입에 달고 다녔다. 지난가을 중급의 괴물 해체 작업에 참여했던 삼촌도 그런 말을 했었다.

괴물의 입구는 허리를 충분히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자 감독관이 말한 통로가 나타났고 그 통로를 따라서 소의 내장 같은 부유물들이 통로 안쪽 깊숙이 질척하게 퍼져 있었다. 우리는 그 부유물을 보자마자 헛구역질을 해댔는데 가장 비위가 약할 것만 같은 하이힐을 신은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만히 서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먼저 맨 앞장을 섰던 J가 들고 있던 삽과 커다란 쓰레받기를 휘휘 움직이며 부유물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한 번씩 휘저을 때마다 밑에선 새로운 부유물이 올라왔다.

괴물을 사람들에게 개방하기 전에 해체반에서 미리 스피커를 설치해 놓았는지 사람들이 지나는 통로마다 귀에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음습한 괴물의 내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이었다. 그것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나 쇼팽의 ‘도나우 강의 잔물결’처럼 대부분 잔잔하게 흐르는 곡들이었다. 보통 이렇게 거친 작업을 할 때는 작업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 비트가 상당히 빠른 음악을 틀게 마련인데 상당히 의외였다. 

소의 내장 같은 부유물을 다 치우는 데는 대략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여자의 향수 때문에 코의 점막이 이상 반응을 일으켰고 그것은 부유물의 악취와 겹쳐지면서 아주 극심한 재채기를 동반했다. 벌써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들과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그들도 아직까지는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나와는 통성명을 할 필요를 못 느끼는 듯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카레이싱 모델 출신이었다는 사실만 말했을 뿐 아직까지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여자는 하이힐이 불편했는지 작업 시작 후 두 시간 정도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맨발이었다. 그러면서 내일은 운동화를 신고 와야겠다고 투덜거렸다. 사람들은 그 투덜거림마저 섹시하다고 수군거렸다. 

나는 괴물을 해체하는 작업 외에도 한 가지 더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감독관이 처음부터 말했듯이 이 정체 모를 괴물을 열람하는 것이었다. 이번 괴물은 학자들뿐만 아니라 재활용 도시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던 내게도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도통 그런 것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학자들도 겁이 많은 것인지 도통 괴물의 내부를 살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용역을 시키거나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서만 연구를 진행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난번 한 젊은 학자들 몇이 그리 크지 않은 괴물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지 못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선 이 괴물이 폐기 처분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했다. 괴물이 스스로 자신을 버렸을까? 우선은 이렇게 가정을 해봤다. 하지만 그것은 의문이었다. 학자들은 이 부분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렇지만 괴물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의견은 많지 않았다. 이제껏 등장했던 어느 괴물도 스스로를 폐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 담당 교수님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그는 학계에서 상당히 권위를 인정받는 <역사학>의 원로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괴물은 그러한 공식을 빗겨 나가고 있었다. 괴물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것은 대부분 <괴물 해체반>에 의해서였지만 이 괴물은 느닷없었다. 느닷없이 시청 앞 잔디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괴물 해체반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더니 마지막으로 발사한 독이든 작살 한방을 맞고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며칠에 걸쳐서 도시를 다 덮을 것 같은 잿빛 안개를 토해 내더니 그냥 그렇게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오래전 느닷없이 나타나서 이 도시를 온통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검은 핸드백’ 인지도 궁금했다. 어느 부유한 여자의 검은 핸드백이었을 그 괴물은 도시의 절반을 삼키다시피 하더니 시내 외곽에 자리한 여학교의 스쿨버스를 마지막으로 삼키던 날 광장의 시계탑을 오르며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수많은 괴물들이 나타났지만 검은 핸드백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검은 핸드백’ 임이 분명했다. 그 궁금증은 조만간 풀릴 것만 같았다. 그것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었다. 이 괴물 어디엔가 있을 노인을 발견하기만 하면 되었다. 괴물의 주인에 관해서는 종종 신문에 보도되고는 했었다. 괴물 한 마리가 쓰러지면 그 괴물의 주인도 쓰러졌다. 괴물 한 마리가 나타나면 도시의 누군가는 이유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은 어느 날 괴물의 주인이 되어 나타났다. 괴물의 주인은 대부분 허리가 구부정하고 이가 다 빠진 할머니나 할아버지였다. 간혹 생기 가득한 이십 대 청춘도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괴물의 주인이 된 것을 후회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해 버렸다. 하지만 그 괴물과 함께 평생을 보냈던 노인들은 괴물의 운명과 함께 자신의 운명을 마감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이 없었다. 이 모든 추측과 추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이 괴물의 주인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내 할아버지나 할머니일 수도 있고 내가 잘 가는 편의점이나 마트 주인일 수도 있었다. 


-3- 


감독관 B는 스피커를 통해서 작업진척을 확인하고는 했다. 아니 우리라기보다는 나중에 합류한 여자를 통해서 보고를 받는 형식이었다. 여자가 감독관에게 맨 처음 보고한 것은 부유물을 두 시간에 걸쳐서 바깥으로 치웠다는 내용이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괴물 해체 작업을 시작합시다.”

S가 먼저 들고 있던 망치로 괴물의 한쪽 벽을 부숴대기 시작했다. 고무처럼 물렁물렁할 것 같던 괴물의 벽은 의외로 단단해서 웬만한 힘으로는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못했다.

“하! 이거 쉽지 않겠는 걸.”

연거푸 도끼를 휘둘러 대던 S가 숨을 헐떡이며 뒤로 물러섰다.

“형씨! 거 등치는 산만해가지고 어디 한번 내가 해보죠.”

S가 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J가 팔을 힘차게 걷어 부치더니 망치를 낚아챘다. S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두 세 걸음 물러섰다. J는 있는 힘껏 괴물의 벽을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힘껏 내리쳤다.

“하! 이거 장난 아닌데. 뭐 이따위 괴물이 다 있어.”

J도 믿기지 않는 듯이 도끼를 바닥에 내던지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따금씩 다른 조의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통로를 지나치고는 했는데 그들은 오래전에 코끼리를 보관하던 630리터짜리 냉장고나 재활용 센터에 있던 45인치 텔레비전 같은 폐품들을 수레에 실어 날랐다. 그것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검은 핸드백’이었을지도 모를 괴물이 자라면서 하나둘씩 삼켰던 이 도시의 최신식 가전제품들이었다. 너무나 커서 통로를 지나갈 수 없는 것들, 이를테면 학교 통학용으로 쓰이던 스쿨버스나 공사장에 모래를 실어 나르던 레미콘이나 덤프트럭 같은 것들은 망치나 전기드릴 혹은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톱으로 잘게 부수어서 실어 날랐다. 스피커에서는 감독관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종종 들렸다. 그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음담패설이나 욕설들로 가득했다. 간혹 그들의 잡담 속에는 우리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도 섞여 있었다. 스피커에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들은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첫날의 작업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쯤 괴물 한쪽에는 노인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 노인은 이 괴물의 주인이 분명했다. 다른 괴물들의 주인의 말로가 그랬듯이 이 괴물이 주인도 괴물의 해체와 더불어 생을 다 할 것이다. 툭 불거져 나온 이마와 퀭하니 움푹 들어간 노인의 두 눈은 그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해주고 있었다. 그의 흐리고 탁한 눈동자는 이제 그가 살면서 직면했던 공포 같은 것은 넘어선듯했다. 일정한 시선이 없는 그의 흐릿한 눈동자는 이따금씩 공포 이상의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감히 그것을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 노인은 우리가 해체 작업을 벌이고 있는 동안 우리 곁을 떠나지도 그렇다고 말을 걸거나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날의 작업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날 오전 아홉 시부터 다시 괴물 해체 작업을 시작했을 때 노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가 있던 자리에는 예닐곱 살이나 됐음직한 귀여운 여자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 아이도 노인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여자도 나도 S도 J도 가급적 그 아이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어제 우리가 해체한 것이라고는 고작 녹이 슨 다리미 하나였다. 괴물의 두꺼운 벽에 단단히 박혀 있던 다리미를 꺼내는 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은 녹슨 밥통이나 문이 너덜너덜한 캐비닛 문짝이라도 찾아내야만 했다. 다른 조는 어제 하루만 해도 10톤이 넘은 해체 작업을 벌였다. 그중에 백미는 단연 러시아제 탱크와 미국의 장갑차였다. 미국의 장갑차는 궤도 무게만 해도 1톤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 조는 별 소득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오전이 다 지나가는데 괴물이 오래전 이 도시를 삼켜버린 수많은 것들 중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S와 J가 땀을 뻘뻘 흘리며 괴물의 물컹물컹한 벽을 파내며 잔해를 찾는 사이 나는 그곳을 벗어나 다시 괴물의 이곳저곳을 열람하기 시작했다. 이 괴물은 도시에서 생산되는 것들은 거의 모든 것들을 삼킨듯했다. 미로처럼 얽힌 내부를 들어가니 안전모와 전기드릴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아는 체를 했다. 그들은 제법 열심히 일을 한 듯 온몸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수레에는 소형 냉장고나 에어컨 그리고 장롱 같은 것들이 파편화된 채 실려 있었다. 조그만 편의점이나 슈퍼 하나를 통째로 삼켜 버린 듯 어떤 작업조의 수레에는 캔 맥주와 담배, 그리고 칫솔이나 고무장갑 같은 생활 용품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감독관 B는 여전히 삼십 분에 한 번씩 작업 보고를 재촉했다. 아마도 괴물 해체를 다 할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가 그렇게 열심인 까닭은 한 번이라도 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여자도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된 여자의 맛을 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감독관은 아직 미혼인 내가 보기에도 여자를 대하는 방식이 서툴렀다. 반면에 여자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녀는 순수와 요염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고 또 사람들을 대할 때도 매번 간드러진 숨소리와 야릇한 미소를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자기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그녀에게 열광했다.

같은 자리에 웅크리고 앉은 채 일주일을 넘게 우리를 지켜만 보던 여자 아이는 괴물 해체 작업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그 영원할 것 같던 웅크림을 멈춰 버렸다. 노인은 첫날 이후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이가 웅크림을 멈추던 날, 틈틈이 괴물을 열람하는 내게 다가오더니 익숙한 말과 손짓으로 괴물의 내부를 열람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아이는 잘하면 아이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로서 이번 괴물은 그 검은 핸드백임이 더욱 분명해졌다. 지금까지 해체됐던 크고 작은 어떤 괴물도 가족이 함께 머문 적은 없었다. 괴물의 주인은 대부분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였고 어쩌다가 딸이나 아들을 둔 노인을 만나기는 했는데 그것은 아주 드문 경우였다. 아이는 운이 좋으면 괴물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이 괴물의 초창기 원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초창기 원형이라면 그것은 바로 모든 괴물을 잉태했을 ‘검은 핸드백’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 S와 J는 32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 한 대와 범퍼가 일그러진 중고차 한 대와 가스레인지 넉 대를 해체했다. H라는 브랜드로 시작하는 중고차는 작업 시작 후 우리가 거둔 가장 큰 수확이었다. 감독관에게 작업내용을 보고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더욱 간드러졌다. 그 후로도 나는 작업에 참여하기보다는 괴물의 이곳저곳을 열람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종종 내가 열람했던 괴물의 내부를 S와 J에게 설명을 해줬으므로 그들은 나에게 별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자는 아직까지는 내 이야기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괴물은 모두 총체적이야.”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눈앞에 있는 괴물을 해체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지 괴물을 해체하고 나면 또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

그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노인의 말이었다. 노인은 확신에 차 있었다. 여자 아이가 말했던 대로 괴물을 열람하던 나는 괴물의 꼬리라고 추정되는 부위에선가 그 노인을 다시 만났다. 젊었을 때는 상당한 미남 소리를 들었을 법한 그 노인은 다른 조의 작업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나를 보자 반갑다는 듯이 자글자글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여자 아이의 아빠를 만나지 못했는지를 물었다. 그것은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여자아이가 노인의 손녀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아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는 한 번도 내게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괴물은 삼대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가족들을 주인으로, 혹은 그 반대로, 모시고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분명 다른 괴물과 다른 점이었다. 


-4- 


감독관 B는 드디어 목적을 달성했다. 삼십 분이 지나면 어김없이 스피커를 통해 개별 조의 작업량을 묻던 그가 보름이 지난 어느 날 오후 두 시간이 넘도록 아무런 말이 없었다. 괴물 해체 작업을 시작한 후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점은 여자가 사라졌다가 돌아온 시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여자는 몹시 흥분을 했었던지 볼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흰자위는 실핏줄이 가득했으며 동공은 확장되어 있었다. 착 달라붙는 그녀의 흰색 티 또한 적갈색 유두가 확연이 도드라져 있었다. 그녀의 몸 어디에 선가는 비릿한 정액 냄새가 풍겼다. 그것은 괴물의 부유물과는 다른 냄새였다. 우리 조의 작업량은 여전히 다른 조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졌지만 감독관은 그날 이후로 별다른 타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괴물이 삼켰을 법한 잔해의 위치를 조금씩 알려주고는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여자는 어딘가를 다녀왔다. 괴물에게서 나온 잔해의 양은 실로 엄청났다. 괴물의 크기도 크기였지만 그 괴물에서 나온 잔해의 양은 더욱 엄청났다. 그것은 마치 아기 코끼리를 삼켜 버린 보아 뱀이라고나 할까. 보아 뱀은 단지 코끼리 한 마리만을 삼켰지만 이 괴물은 코끼리가 잠을 자고 있던 동물원의 한쪽 축사를 통째로 삼켜 버렸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괴물은 잔해를 빨아들이기 전 가공할만한 압축기 같은 것으로 모든 것을 압축해 버린 것만 같았다. 실제로 어떤 잔해는 이분의 일이나 삼분의 일정도로 압축이 되어 있었다.

괴물의 몸체는 점점 빈 공간이 많아졌다. 커다란 잔해 하나를 빼내고 나면 그 부위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쿵! 소리를 내며 아래로 가라앉았다. 괴물의 몸체에 빈 공간이 많을수록 쿵! 소리는 늘어났다.

괴물을 완전히 해체하려면 아직도 일주일을 더 해야만 했다. 괴물에서 나온 잔해들은 일단 종류별로 구분을 한 다음 저마다 필요한 재활용 공장으로 보내졌다. 물론 재활용 도시는 그 이름에 걸맞도록 폐품의 재활용 비율을 백 퍼센트 가까이 도달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재활용을 할 수 없는 것들, 이를테면 한때 시청의사당을 시끄럽게 했던 어느 유명한 정치인의 반쯤 썩어 버린 ‘혀’라든가, 도시의 모든 곳을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했던 어느 기업가의 끝을 알 수 없는 욕망에 부푼 ‘혀’였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것들은 재활용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상은 그 반대였다. 혀는 재활용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그만큼 또 다른 괴물의 원형이 될 가능성도 높았다. 그러니까 시에서는 효율적이라기보다는 비효율적인 것을 선택했다. 그것이 지난 세기 수도 없는 괴물의 출현을 겪으면서 터득한 융통성 없고 무능력한 관료들의 유일한 노하우였다.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더디 갈지라도 또 다른 괴물의 출현을 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여자는 감독관에게 만족을 못했는지 점점 다른 남성의 냄새를 풍겨대기 시작했다. 때로 그 냄새는 그녀가 매일 아침 뿌려대는 재활용 향수보다 진해서 나는 누구보다 먼저 그녀의 전날 혹은 몇 시간 전의 끈적끈적한 행위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관계한 남성의 나이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십 대 초반부터 칠십이 넘은 노인까지 다양했다. 실제로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도 있었다. 괴물은 삼분의 이 정도 해체가 된 탓에 내부에 남아 있는 공간이라고는 별로 없었지만 그녀는 용케도 카메라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가고는 했었다. 하지만 스피커를 통해서 울려 퍼지는 신음소리는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다른 사내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를 대하는 감독관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은 탓에 우리 조는 제법 많은 양의 잔해를 해체했지만 감독관은 일일이 그래프를 짚어가며 가장 높은 수치를 점하고 있는 조와 비교를 하고는 했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는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제법 커다란 덤프트럭하나를 해체했기에 억울함은 더했다. 그는 그럴 때마도 몹시 욕망에 굶주려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수많은 남성들을 만나고 다니면서도 유독 우리에게만은 예외였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가련하거나 청순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이미지도 풍겼다. 하늘하늘 거리는 치마와 실루엣 그리고 긴 생머리를 하고서는 풋풋함을 풍기기도 했다. 우리는 그녀의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역겨워하면서도 동시에 선망했다. 


-5- 


마침내 괴물이 완전히 해체되던 날은 날이 눈부시게 화창했다. 내부가 텅 빈 괴물은 마치 철근만 남은 울퉁불퉁한 비닐하우스 같았다. 시청 앞 건물의 북쪽에서 불어오던 미풍은 화창한 여름날 오후의 뜨거운 태양을 살며시 식혀 주었다. 마치 괴물의 완전한 해체를 축하하려는 듯이 텅 빈 괴물의 몸체와 그것을 구경하려고 몰려든 사람들 주변으로 햇살과 바람이 번갈아 다녀갔다. 남쪽에서 흘러온 구름 하나가 해를 가렸을 때 괴물의 마지막 잔해물이 해체되었다. 이제 괴물의 완전한 해체는 거북이 등껍질 같은 가죽만 남은 셈이었다. 전례 없이 많이 운집한 군중들과 군중들 앞에 선 군악대 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흰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괴물의 해체를 축하하는 축포를 쏘기 위해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재활용 도시의 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 감독관 B와 괴물 해체반과 방역반 등 일련의 사람들이 시장을 따르고 있었다. 축포를 쏘기 직전이었다. 쿵! 소리를 내며 거북이 등껍질 같은 괴물의 거죽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렇게 수십여 차례 괴물의 껍질은 땅이 꺼지듯이 쿵! 소리를 내며 아래로 내려앉았다. 괴물의 외형은 무언가를 닮아 있었다.

“저 괴물 누군가를 많이 닮았어?”

“그러게! 누구였지?”

“설마!”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를 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 도시의 황혼을 붉게 물들이는 노인들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탄식에 가까웠다. 점차 사람들은 그 괴물의 진짜 모습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맞아! 저 형상은 재활용 도시의 세 번째 시장을 닮았어.”

“아아아~!”

“사람들을 가장 탐욕스럽게 물어뜯던.”

노인들의 목소리는 언젠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큰 바위 얼굴’ 연상시켰다. 사람들과 소년은 오래도록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기다려왔지만 결국 소년이 큰 바위 얼굴이었음을 알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괴물은 노인들의 말처럼 누워있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꼬리라고 생각되었던 부위는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다리였다. 그는 재활용 도시의 세 번째 시장이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닮은 괴물이 하나씩 나타났다 사라질 때마다 재활용 도시의 사람들은 꿈을 꾸었다. 모든 것들이 재활용되는 도시에서는 꿈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음악이나 미술도 마찬가지였다. 문학이나 철학 그리고 총칭하는 모든 예술을 ‘좆 까라 마이싱’이라 표현했던 한 예술 혐오주의자도 거기에서는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철이 들기 전에 터득한 마스터베이션을 늙어서 죽을 때까지 재활용했다. 

사람들은 동시에 괴물의 완전한 해체와 더불어 새로운 괴물이 나타나는 꿈을 꾸었다. 그들은 꿈속에서 가장 밑바닥을 경험했고 가능하면 빨리 깨어나고 싶어 했다. 꿈에서 깨면 그들은 알 수 없는 나른함 속에서 몸부림을 쳤다. 그들은 지루함이나 나른함 보다는 차라리 뼈를 깎는 고통을 더 원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그런 과민 반응이 이상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결국은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괴물을 해체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괴물의 내부를 보고 직접 만져도 보며 결국은 자신이 도달하게 될 괴물의 실체를 탐닉했던 것이다. 이렇듯 괴물 이후의 상황은 아찔했다. 괴물을 열람한 결과는 결국 괴물! 그것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보며 괴물을 연상시켰고 증오하고 경멸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괴물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닮은 괴물을 만들어냈고 끝내는 괴물 속으로 들어갔다. 괴물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신체 구석구석에 끝없는 욕망을 채워 나갔다. 일부는 미처 괴물이 해체되기 전에 괴물이 되어 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감독관은 괴물이 완전히 해체되자 또 다른 괴물을 찾아 재활용 도시를 떠났다.

S는 다시 그의 본업인 의사로 돌아가서 그에게 걸맞은 괴물이 되어 버렸다. 여전히 팔뚝 문신이 선명한 J는 괴물이 부셔놓은 재활용 도시의 먼지 가득한 재활용 공사 현장을 떠돌며 그 다운 괴물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직 레이싱 모델이었던 그녀는 괴물이 완전하게 해체되던 다음날 무수한 사내들의 체취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가장 빨리 괴물이 되어 버렸을 그녀. 아아~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의 육체를 탐닉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옆을 지나칠 때마다 풍기던 그래서 잠자고 있던 나의 남성성을 불같이 일으켜 세우던 그녀의 고혹적인 향기만큼은 한 번쯤 다시 맡고 싶었다. 왼쪽 가슴의 지퍼를 열어 아기처럼 모유를 수유받고 싶었다.

그토록 확신했던 사람형상의 괴물이 ‘검은 핸드백’이었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어쩌면 <검은 핸드백>은 아직 나타날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또 다른 괴물이 등장하기를 기대하며 재활용 도서관의 재활용 열람실에서 <역대 괴물 사전>을 살피며 괴물에 관한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을 때 도서관 어디선가 익숙한 체취가 느껴졌다. 고개를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지만 그 냄새의 근원을 알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서가 뒤편에서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렸다. 도서관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자가 하이힐을 신은채 내 앞으로 서서히 걸어왔다.

“아직도 당신은 괴물을 못 찾으셨나요?”

그녀는 아직 괴물이 아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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