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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Oct 13. 2024

[단편] 콜라를 마시고 싶어

재활용센터에 가면

1.

  

  “있잖여, 어젯밤에 나가 콜라 마셨데이. 느그들 콜라가 뭔지는 알제?”

  “알제, 고거이 참말이가?”

  “그것도 한 병이나 마셔부렀데이.”

  “오메. 어쩌스까? 부러버라.”


  아이들은 콜라를 마셨다는 희주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듯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그 귀한 콜라를 니가 마셔부렀단 말이지. 그것도 한 병이나.”

  “아직 집에 두 병이 더 남았당께.”

  “무신?”


  순식간에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희주는 득의양양한 듯 어젯밤에 콜라를 마신 사실을 아이들 앞에서 당당하게 선포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희주를 향하여 부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게다가 희주는 아직도 집에 콜라가 두 병이나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늘어놓고 있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재차 물었다.


  “희주가 콜라를 마셨다고?”

  “희주가 콜라를 마셨당께.”

  “고거이 참말인겨?”

  “아녀, 거짓일겨.”

  “아, 지가 그러잖여, 안직도 집에 콜라가 두병이나 남아 있다고...”


출처-pixabay


  처음엔 반신반의 하던 여자 아이들도 희주가 거듭 콜라를 마신 사실을 자랑하자 점점 귓속말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희주는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아이들이 야속했던지 한동안 풀이 죽은 듯 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아이들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보자기에 감싸져 있던 빈 병을 꺼내 오른손으로 높이 쳐들었다. 햇빛을 받은 콜라병이 하늘 위에서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오매, 저거이 진짜 콜라 병 아닌가베?”

  “니, 참말로 콜라 마셔부렀데이.”

  “아따, 참말이었당께.”


  아이들은 하늘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미끈한 콜라병을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하고 넘어갔다. 기껏해야 나는 어젯밤에 검은 솥단지에 눌러 붙은 누룽지에 물을 넣고 끓인 숭늉밖에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도 콜라가 마시고 싶었다. 미치도록 콜라가 마시고 싶었다.


  “도대체가 콜라를 마셔 본 적이 언제였지?”


  희주가 어젯밤에 콜라를 마신 사건은 반나절도 못 되어 섬 전체에 알려졌다. 희주는 언제나 우리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녀석은 우리가 쉽게 경험 하거나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항상 먼저 가졌거나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일 년에 몇 번 먹을까 말까한 자장면을 녀석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먹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도라에몽이니, 피카츄니, 메이플 스토리니 하는 장난감을 들고 와선 우리 앞에서 자랑하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희주가 그 귀한 콜라를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어제가 바로 할아버지의 제삿날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녀석의 막내 삼촌이 콜라를 사왔던 것이다. 희주 뿐만 아니라 희주네 아빠랑 엄마랑 심지어 여든이 넘으신 희주의 할머니도 여간해서는 마시기 힘든 콜라를 막내 삼촌이 사가지고 오자 굉장히 기뻐했다는 것이다. 그 날 저녁 집에 돌아간 아이들은 일제히 엄마와 아빠를 조르기 시작했다. 나도 콜라를 마시고 싶은 마음에 고기 잡으러 나가셨던 엄마가 돌아오자마자 콜라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엄마는 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누나였다. 나는 거의 애원하다시피 해서 엄마에게서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누나, 이번 추석에 내려 올 거지?

  “응.”

  “그럼, 나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무슨 부탁?”

  “올 때 콜라 사와라.”

  “갑자기 웬 콜라? 알았어.”

  “몇 병 사올 건데?”

  “무거워서 많이 못 가져와.”

  “그래도 다섯 병은 사와라.”

  “알았어.”


   전화를 끊기 전 누나에게 몇 번씩 다짐을 받았지만 추석이 되려면 열 손가락을 다 세고도 두 밤이나 남았다. 도저히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깜깜한 밤이 되었어도 낮에 보았던 희주의 미끈한 콜라병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 거렸다. 광고 모델의 날씬한 몸처럼 미끈하게 빠진 콜라병, 톡하고 따지는 병뚜껑 소리는 한 여름 더위에 지친 나의 가슴을 얼마나 시원하게 뚫어 주었던가? 게다가 투명한 유리잔 속으로 콸.콸.콸 시원하게 쏟아지는 검은 액체들, 그 위에 살포시 쌓이는 하얀 거품들. 아! 그 검은 액체가 내 목을 타고 넘어 갈 때의 느낌은 얼마나 짜릿했던가? 콜라를 마시고 났을 때의 그 청량함, 환희와 황홀함. 그리고 이어지는 “꺼어억” 소리, 그것은 내가 콜라를 마셨다는 틀림없는 증거였다. 오! 그것은 맨 날 집에서 마시는 누룽지 물 하고는 비할 데가 없었다. 누르튀튀한 누룽지 물은 아무리 마셔대도 “꺼어억” 하는 트림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미치도록 콜라가 마시고 싶었다.


2.


  토요일 오후, 아이들 모두는 마을 뒷산에 모여 있었다. 아이들의 협박(?)에 못이긴 희주가 오늘 콜라를 한 모금씩 맛보여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손에 한 가지씩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수연이는 옥수수를 들고 있었고 하영이는 물오징어 두 마리, 재국이는 감자 네 개, 종원이는 무우 두 개, 그리고 나와 혜수는 누룽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개중에는 빈손인 아이도 있었다. 그것들은 희주가 조심스럽게 가지고 올 콜라 한 잔과 교환 할 물품이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희주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의 왼손에는 작은 보자기가 하나 들려 있었다. 그는 그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들은 그 보자기를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침도 꿀꺽 넘어갔다.


  “저기, 희주다.”

  “긍께, 저 보자기 속에 든거이 분명 콜라일거고만.”

  “우와.”

  “다들 모였제?”


  희주는 커다란 바위에 올라서더니 그 바위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제법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보자기에 싸여있던 물건을 무슨 보물 다루듯 조심스럽게 펼치기 시작했다. 금속성의 병 뚜 껑이 나타나고 콜라 병의 가느다란 목이 드러나더니 이윽고 그 미끈한 몸체가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었다. 태어날 때 외에는 한 번도 세상을 향해 열리지 않았던 투명한 콜라병 속에는 검은 액체가 가득 들어 있었다.


  “어쩌스까, 저거이 분명 콜라맞제?.”

  종원이가 콜라병을 보자 소리를 쳤고,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 질렀다. 

 

 “우와.”

  박수를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지금부터 요 귀한 것을 조금씩 나눠 줄팅게. 퍼뜩 줄 서드라고.”


  아이들은 희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로 맨 앞에 서려고 야단법석이었다. 그 와중에 제일 어린 혜린이가 재국이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다. 팔이 까진 혜린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은 혜린이를 달래느라고 콜라 마시기를 좀 더 기다려야 했다.


  “희주야. 걍, 너가 순서 정해라.”

  “고거이 좋것제, 어디 함보까?”


  희주는 아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은 회심의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긍께 뭐시냐, 빈손인 느그들은 맨 뒤로 빠지그라.”

  지명을 당한 아이들은 거의 울듯한 표정을 하며 뒤로 빠졌다.

  “수연이가 맨 앞에 서고 그 다음 재국이, 하영이. 혜수, 지영, 종원이 그리고 느그들 순서다. 알겄제.”

  “아, 알았다니께. 각설하고 퍼뜩 따르더라고.”


  맨 뒤에 선 혜린이는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콜라는 한 병 밖에 없었고 앞에 선 아이들을 주다보면 자기 차례가 올 때쯤이면 그 귀한 콜라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조마조마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콜라의 거품이 병 밖으로 마구 쏟아져 나왔다.


  “오매, 어쩌스까.”

  “멍충아, 니, 오면서 콜라 병 흔들었제?”


  아이들은 흘러내리는 거품이 몹시 안타까운 듯 두 발을 동동 구르며 희주에게 한마디씩 던졌다. 거품이 다 가라앉은 콜라병엔 이미 상당량의 콜라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따, 허벌나게 쏟아부렀고만.”

  “시방 뭣허냐, 더 없어지기 전에 언능 따르그라.”

  맨 앞에 선 수연이가 종이컵을 내 밀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콸.콸.콸.”


  수연이의 유리잔에 콜라가 시원하게 흘러 들어갔다. 아이들이 콜라를 받기 위해 집에서 가지고 온 컵도 제 각각이었다. 유리컵을 가져온 아이도 있었고 플라스틱 컵을 가져온 아이도 있었고 집에서 쓰는 할아버지의 놋그릇을 가져온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 압권은 종원이의 그릇이었다. 녀석은 겨우 콜라 한 모금 마시려고 지 머리보다도 더 큰 바가지를 가져 온 것이었다. 희주는 순서대로 콜라를 따라 주었다. 그렇지만 내 차례까지 왔을 땐 이미 콜라병엔 콜라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맨 마지막에 서있던 혜린이의 표정이 점점 울상이 되어 갔다. 결국 혜린이 차례가 되기도 전에 콜라가 다 떨어지고 말았다.


  “으아앙. 나도 콜라 마시고 싶어. 나도 마시고 싶단 말이야.”

  “혜수야, 니 동생잉께. 니가 좀 덜어주그래이.”

  “난, 벌써 마셔 버렸는데... .”

  “아아앙. 콜라, 내 콜라.”


  혜린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아직 콜라를 마시지 않은 아이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 참...


  “자, 내 거 마셔.”


  보다 못한 나는 나의 소중한 콜라를 혜린이에게 건네고 말았다. 콜라를 건네주는 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울음을 뚝 그친 혜린이는 한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나의 소중한 콜라를 단숨에 마셔 버리고 말았다.


  “흑흑흑, 내가 미쳤지. 얼마나 마시고 싶던 콜라였는데... .”


  오열 종대로 대기 중이던 위장이 콜라를 기다리다 지쳤는지 “꼬르륵”으로 신경질을 부렸다. 무지하게 속도 쓰렸다.


  “지훈아, 컵 이리내.”

  “나도.”

  “나두.”

  “... .”


  아직 콜라를 마시지 않은 아이들이 내 컵에다 콜라를 조금씩 따라 주었다. 다 따르고 보니 오히려 처음에 받았던 것보다 양이 더 많아져 있었다. 아이들이 눈치 챌 것 같아 잽싸게 마셔 버렸다. 그 사이 김이 빠져 나가버렸는지 콜라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 톡 쏘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도 행복했다. 다른 아이들도 편안한 맘으로 맘껏 자기 컵 속에 담긴 콜라의 맛을 음미했다.


  “그려 바로 이맛이랑께.”


  우여곡절 끝에 우리 모두는 그렇게도 원하던 콜라를 마실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오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그날 저녁 아이들의 집에서는 다시 한 번 환호성이 들려왔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이 콜라를 마시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던 이장님이 군청에 볼일이 있어 뭍에 다녀오시면서 대형 마트에 들러서 콜라를 사오셨고 그것을 집집마다 한 병씩 나눠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추석 다음날이었다. 


“야들아 있잖여, 나 어제 피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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