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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Jul 21. 2021

[단편] 병따개의문제

재활용센터에 가면

  조용한 가게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람은 사십 대 중반의 남자였다. 처음엔 어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나를 발견하더니 각종 병따개가 진열되어 있는 진열장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호주머니에서 병따개 하나를 꺼내더니 내 앞으로 내던지며 환불을 요구했다. 토요일이라 가게에는 나와 여직원 단 둘만이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스 김은 남자의 거친 행동에 몹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었다면 틀림없이 나도 그녀와 같은 표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짓기에는 입사 십삼 년의 베테랑 경력이 허락하지 않았고 더더군다나 이런 상황에는 이력이 나있었다.


  “손님, 일단 진정하시고 이쪽으로 앉으시죠.”


  정중한 자세로 원형 테이블의 의자를 빼내며 남자에게 자리를 권했다. 남자는 감색 줄무늬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흰색 와이셔츠와 넥타이도 마찬가지로 줄무늬였다. 그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직도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는 미스 김에게 눈짓으로 차를 한잔 내오라고 시킨 후 그와 마주 앉았다.


출처-pixabay


  “병따개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그럼 내가 뭣 하러 여기까지 왔겠소?”

  그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병따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맥주병이 잘 따지지 않나요?”

  “그건 아니오.”

  “그럼 콜라병이.....”

  “그것도 아니오.”

  “그럼 아파트 문이.....”

  “그것도 아니오.”

  “그럼 뭐가 문젠 가요?”

  “사람이 따지지가 않더란 말이오.”

  “그럴 리가?”


  병을 따는 것은 병따개의 가장 기본 기능에 속했다. 자동차와 아파트 현관의 문을 따는 것도 병따개의 보편적인 기능이었다. 강아지와 같은 애완동물을 따는 것도 조금만 방법을 숙지하면 가능했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갑자기 으르렁 대거나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면 병따개를 세워서 한두 번만 따주면 되었다. 펑, 혹은 퍽하고 말이다. 그러면 사납던 동물들이 얌전한 아이처럼 말을 잘 듣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판매하는 병따개의 진짜 용도는 좀 더 복잡하고 특수했다. 사람도 원하는 대로 딸 수 있는 병따개였다. 그러니까 지금 남자는 사람이 따지지 않아서 화가 난 것이다. 징징대며 울어대는 아기를 따려고 했나. 아니면 포켓몬스터를 사달라고 졸라대는 아들을 달래다가 지쳐버렸나. 하지만 이 남자가 사간 병따개는 개발이 채 완료되지 않은 실험 모델일 뿐이었다. 물론 실험실에서야 사람을 따는 것은 몇 차례 성공했지만 제품으로 출시하기에는 아직 보완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따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고 제품은 아주 고가로 팔려나갔다. 물론 남자용 병따개도 개발이 거의 완료된 상태다. 그가 씩씩거리며 내던진 병따개를 다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설명서를 읽어보셨나요?”

  “물론이오.”

  “건전지는.....”

  “그것도 수차례 확인했소.”

  “그렇다면 손님의 잘못은 아닌 것 같군요.  


  진심이었다. 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병따개의 성능은 달라질 수 있었다. 어쨌거나 내 앞에서 징징대는 남자의 비위를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그 사이 미스 김은 여전히 겁을 먹은 표정으로 냉커피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얼마나......”

  “한 이주일 정도.....”

  “그렇게나 오래 걸린단 말이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시험 모델이라.”

  “이것 보시오. 난 이 물건을 사려고 석 달치 사건 수임료를 몽땅 쏟아부었단 말이오.”


  직업이 변호사인 듯한 남자는 욕구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하여간 배운 것들이 더 밝힌다니까.


  “대체품이라도 주시오.”

  “대체품이라......”


  마땅히 제시할 병따개가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뭐라도 받지 않고서는 이곳을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한쪽 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저 벽에 걸린 건 뭐요?”

  “아 저거요.”

  “그래요. 저 티스푼처럼 생긴 거 말이요.”

  “며칠 전에 새로 나온 모델입니다. 저것도 완벽한 제품은 아니지만 가장 최신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죠.”

  “사람도 딸 수 있소?”

  “가능하지만 제한적이죠.”

  “이를 테면......”

  “집 근처에 한해서라면.....”

  “그럼 저거라도 주시오.”

  “무엇에 쓰시려고?”

  “알 거 없잖소.”


  사내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지고는 쾅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여직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의 불같은 성미로 봐서는 조만간 다시 한번 들이닥칠 것이 분명했지만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그나저나 월급을 나보다 몇 배나 더 받아먹는 연구실 박사라는 작자들은 제품을 이따위로 만들어놓고 어떻게 영업을 하라는 말인가? 이번이 도대체 몇 번째냐고? 앞으로도 계속 저런 시답잖은 작자들의 불평을 들어줄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날 퇴근시간이 다 되도록 남자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미스 김 이제 그만 퇴근하지?”

  “네.”


  퇴근이라는 말에 화색이 도는 걸 보니 저녁에 애인과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오랜만에 식구들과 외식이나 좀 해볼까? 막 셔터 문을 닫으려는데 문 앞에 조그만 아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서있는 것이었다.


  “아저씨 가게 문 닫으실 거예요?”

  “그래, 무슨 일이니?”

  옷을 갈아입고 나온 미스 김이 꼬마를 보더니 이상한 듯 물었다.

  “이거요.”

  아이가 내민 것은 아동용 병따개였다.

  “고쳐주세요.”

  “왜, 고양이가 말을 듣지 않던?”

  “그게 아니에요.”

  “그럼 동생이 자꾸 귀찮게 해?”

  “그것도 아니에요.”

  “그럼 뭐가 문젠데?”

  “아버지가 다시 바람을 피기 시작했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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