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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에 Jan 24. 2021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어요

내 주변의 공간을 무너뜨리지 않는 방법


Leon Spilliaert, <Self-Portrait>, 1907, Metropolitan Museum of Art


어느 날 갑자기 내 주변의 견고한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 혹은 지금처럼 살면 그 끝의 내 모습엔 무엇이 남는지 끊임없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두커니 선 채로 생각에 사로잡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지금 여기쯤에서 나를 한번 돌아보라는 신의 한 수 일 수도 있었고,

지금 이쯤에서 무언가를 그만하라는 신의 경고일 수도 있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 앎에 걸맞은 행함과 마음이 따라오지 못해서 나는 매일을 지독하게 견뎌낸다. 생각과 행함의 괴리를 탓할 순 없다. 부자가 되는 삶이 지난하고 오래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매주 복권을 긁는 우리의 심리를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득이 있으면 실이 있고 노력이 없는 성취는 언젠가 썰물처럼 내 손가락을 빠져나갈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모든 문제의 해답은 시간과 인내라고 손수 적어 우리의 손에 쥐어주셨다. 하지만 악마는 이브가 사과 한 입을 베어 먹고 신처럼 전지전능한 인간이 되고자 한 인간의 마음을 언제나 건드린다. 그 지독한 유혹을 걷어내고 기다리고 참아야 하는데, 참는다 한들 내가 원하는 화양연화는 결국 오긴 하는 건가?

잔인한 신은 시간과 인내가 답이라 알려줘 놓고, 미래는 마음에 달려있다는 허망한 말을 남겼다. 모두가 원하는 아름다운 삶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 아무리 부유한 삶이 펼쳐진다 한들 가난한 사람의 한 뼘의 행복을 갖지 못할 수도 있고,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삶을 살아간다 한들 부족한 사람의 속편함을 즐기지 못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음이 부유해야 하고 다리 뻗고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아이를 낳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하면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낳았지만 아이는 정말 독립적인 운명을 갖고 있다. 신이 이 아이를 세상에 보내기 위해 나라는 통로를 사용했을 뿐, 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만들었다는 생각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인간은 경이롭다. 자라나는 속도와 발달의 시간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어떤 동물보다도 비약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도 뜨지 못하던 '시작'에서 손가락을 자유롭게 쓰는 '중간'을 거쳐 상상을 할 수 있는' 완성'이 되는 것이 인간이다. 


어느 목숨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떤 운명하나 고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무언가로부터의 비교와 결핍을 갖게 되는 것일까. 독립적인 운명을 가진 나는 왜 오늘 무난하게 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 공간을 흔들며 잘 살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반문을 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좋은 동네에 살고 있고, 누군가는 유동성 장세를 이용하여 우수한 투자수익을 거두게 되었고, 누군가는 그럴싸한 좋은 차를 샀다고 하던데. 내가 그런 관점에서 나를 재촉하며 반문을 해대고 있다면 나 스스로에게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스스로 고문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다림은 참으로 지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모아 보면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재촉하며 급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소박한 나에게 찾아온 공간의 무너짐은 내 영혼을 피폐하게 하고 답 없이 열차에 오르는 방랑자의 마음만을 남겨준다. 나 스스로가 내 주변의 공간을 무너뜨린다 한들 나는 그것을 채울 길을 알지 못한다. 지금 내가 만든 이 공간과 나 자신의 모습이 타인의 눈에 보잘것없이 보여도 내 영혼은 수많은 시간 동안 이 모든 것을 일구었다. 빡빡한 사람들로 가득 찬 출퇴근 지하철에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귀에 꽂으면 내 몸통 안은 아름다운 울림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 순간 나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의 번잡함을 잊고 내 몸이 어떤 성스러운 공간이 되어가는 일탈을 느끼면서 행복해했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만들어 갔고 나의 공간을 하나씩 채워갔었다. 


내가 잘 살고 있느냐고?


모르겠다. 어쩌면 이번 질문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이 질문을 마주하고 괴로워하는 순간은 반드시 나에게 또 도둑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그때에도 속절없이 질문에 당하지 말고 지금처럼 똑바로 정신을 차린 채 '그래, 나는 나름대로 일상을 잘 일구고 있었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렇게 내 일상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스스로 내 주변의 공간을 무너뜨리지 말고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보이지 않고 기억이 선명하지 않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 열심히 나를 위해 살아왔다.



나의 공간은 그렇게 하찮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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