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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세찬 Jun 12. 2021

도로가 막히면 케찹을 선물로 드립니다

버거킹 와퍼도 드릴게요!

크래프트하인즈(KraftHeinz)는  케찹브랜드 '하인즈'를 소유한 글로벌 식품 기업이다. 2015년 워렛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Berkshire Hathway)와 브라질 사모펀드 3G 캐피털이 주도해 두 거대 식품 기업인 크래프트(Kraft)와 하인즈(Heinz)를 합병하며 탄생했다.


하인즈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케찹이다. 글로벌 TOP 10시장 중 7곳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북미 60%, 유럽 8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자연스럽게 TOM(Top Of Mind : 소비자가 특정 산업이나 개별 제품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브랜드를 의미하는 표현) 브랜드를 떠올리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이 되었다. (아직 한국에서의 TOM 케찹 브랜드는 오뚜기이지만 말이다)


Heinz Tomato Ketchup


2021년 여름 하인즈는 새로운 캠페인을 론칭했다. "Heinz Bottleneck(하인즈 병목)" 캠페인은 캐나다 벤쿠버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Rethink(리씽크), 사용자 참여형 내비게이션 앱 Waze(웨이즈)와 협업해 휴가철 교통체증 속에 낭비하는 시간을 즐거움으로 바꿔줄 수 없을까란 생각해서 시작했다. 차가 막히는 곳엔 언제나 스트레스가 함께하지만, 그 느림이 언제나 나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도로가 막히면 케찹을 드립니다

웨이즈(Waze)는 이스라엘 웨이즈 모바일에서 만든 사용자 참여형 내비게이션 앱이다. 사용자 참여형이란 내비게이션 사용자들의 차량 속도를 GPS로 감지해 실시간으로 막히지 않는 루트를 안내하는 방식을 뜻한다. 서비스 론칭 후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며 2013년 구글에 인수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빠른 길을 알려주는 앱이라고 한들 휴가절 교통체증에는 장사가 없다. 평소 20분이면 충분했을 길도 휴가철엔 1시간이나 걸려 통과할 수 밖에 없다.  운전자들은 더 빠른 길을 찾기 위해 지속해서 앱 업데이트를 확인할 것이다.


하인즈는 이러한 휴가철 병목현상에 지친 운전자들에게 케찹을 나눠주기로 했다. 웨이즈 운전자들의 차량 속도가 시속 0.045km 까지 느려지면, 앱 화면에 보이는 차량이 케찹으로 변신한다. 케찹화(?)를 달성한 사람들은 하인즈 케찹을 선물 받게 되며, 버거킹 임파서블 와퍼 교환권도 받는다.


Heinz Ketchup <HeinzBottleneck>, Adage


크레프트하인즈 브랜드 혁신 디렉터 Daniel Gotlib 는 "펜데믹이 완화되고 휴가철이 다가옴에 따라 교통체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늘 것입니다."라고 전하며, "저희는 소비자들에게 하인즈 케찹선물로 드림으로써 느림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Heinz Ketchup <HeinzBottleneck>, Adage


케찹 브랜드가 새로운 캠페인의 키 아이디어로 교통체증을 선정한 것이 뜬금없을 순 있지만, 이는 역사 깊은 브랜딩 전략의 일환이다. 창업주 헨리 존 하인즈가 처음으로 토마토 케찹을 출시하던 1876년, 미국에는 100곳이 넘는 군소 제조업체가 난립하며 불량 토마토케찹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행태는 산업 전체의 성장을 저해시켰고 사람들은 토마토케찹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헨리는 이를 극복하고자 포장용기로 투명한 유리를 사용해 고객이 내용물을 볼 수 있게 했으며 원재료의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이러한 노력은 1960년 대들어 시작된 'Slow Pour' 캠페인을 거치며 결실을 맺었다. 농도가 진하고 맛이 뛰어난 케찹을 즐기기 위해선 붓는데 시간이 걸려도 기다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67년 "Slow" 광고가 라이브 된 이래 하인즈는 '가장 느리게 나오는 케찹'이라는 슬로건으로 진한 농도와 진정성을 강조해왔다.


https://youtu.be/nc_CCViZrFY

Heinz Ketchup Commercial 1967 "Slow" Very Cool Dramatic Music


1987년엔 드라마 '프렌즈'로 유명한 멧 르블랑(Matt Leblanc)이 출연한 광고가 히트를 쳤다.(당시엔 프렌즈가 방영되기 전이었다) 영상은 건물 옥상에서 하인즈 케첩을 기울여 놓은 멧이 1층으로 내려와 빵을 산 뒤 떨어지는 케찹을 받아내는 스토리다. 하인즈가 케찹의 진한 토마토 농도를 창의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https://youtu.be/pQKCxXgJj2Y

Matt LeBlanc Adverts - Heinz Tomato Ketchup and Coke


하인즈가 <HeinzBottleneck> 캠페인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 또한 지난 40년간 해오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이번엔 '숫자'를 활용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우리 뇌는 일반 명사보단 특정 숫자를 더욱 오래 기억할 수 있다. 그간의 캠페인들이 '느리게 나오는 케찹' 이라는 직관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면, 이번 하인즈보틀넥 캠페인은 정지상태나 다름없는 속도 0.045km/h을 강조한다. 그들의 창의성과 시의적절한 감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하인즈 속도'에 다다른 운전자는 케찹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와퍼 교환권도 받는다. 휴가철 교통체증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기왕 기다릴 것 즐겁게 기다릴 수 있는 셈이다. 캠페인이 목표하는 소비자 경험은 진정한 케찹을 즐기기 위해 조금 더 기다리는 게 어떻냐는 하인즈 브랜드 메시지 전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위기를 극복하는 하인즈의 방식

하인즈는 모두가 알고 있는 TOM 소비재 브랜드다. 웬만한 생채기로는 소비자 인식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기업이 전대미문의 비리를 저질르지 않는 이상, 소비자는 가장 익숙하고 가장 자주 먹었던 하인즈 케찹을 구매할 것이다. 그만큼 확고한 시장 지위를 지니고 있지만, 성장 역치를 뚫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이 TOM 브랜드의 숙명이기도 하다.


더구나 2010년 대 후반, 미국 소비 시장에게 불어닥친 웰빙 바람은 철옹성 같은 크래프트하인즈에게도 위기의식을 불어넣었다. 그 중심엔 2010년 설립된 '서 케싱턴(Sir Kensington's) 케찹'이 있다. 서 케싱턴은 브라운대 재학 중이던 학생 2명이 만든 회사로, 기존보다 설탕은 50%, 나트륨은 33% 줄였으며 케찹 생산에 필요한 유전자조작식품(GMO)과 가공식품첨가물도 사용하지 않는다. 틈새를 파고드는 확고한 전략에 힘입어 2017년 다국적 소비재기업 유니레버에 인수되었으며, 2019년 미국 유기농 식품 매장인 홀푸드마켓에서 하인즈 케찹을 제치고 점유율 1위 브랜드로 등극했다.


Sir Kensington's Products


크래프트하인즈의 끊임없는 하락세엔 내부적 요인도 한몫했다. 경영을 주도해온 3G캐피털은 기업을 인수하자마자 '제로 베이스 예산편성' 방식을 적용했다. 이는 기존 사업비용에서 예산을 절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업비용을 제로(0)로 가정한 후 예산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고정비를 합병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추는데 성공했지만, 기업 혁신에 체력이 되어주던 전사 자원의 감축은 변화하는 시장을 따라가는데 실패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크래프트하인즈 2010년대 주가 변동 추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CEO Miguel Patricio는 2020년 9월 15일 '크래프트하인즈 2020 아웃룩'을 공개했다. 이는 조직 전체를 관통하는 대대적인 변화(Transformation) 플랜으로, 유통/물류, 인적자원, 주주가치 등 벨류 체인의 전면적인 개편과 함께 마케팅 예산을 30% 증액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 '크래프트하인즈 2020 아웃룩' 발표 이후, 전보다 더욱 창의적인 하인즈의 광고 캠페인들이 라이브 되고 있다. 2021년 1월에 공개된  광고가 대표적이다. '케찹을 그려보세요'라는 미션에 실험에 참가한 거의 모든 사람이 '하인즈 케찹'을 그려낸다. TOM 브랜드 설문조사를 광고 스럽게 만든 것으로, 단순한 플롯이지만 글로벌 선두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https://youtu.be/APoGHH1Ns2M

Heinz Draw Ketchup (2021. 01. 21)



올여름 공개된 <HeinzBottleneck> 캠페인 또한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인즈의 '느리게 나오는' 이미지'는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오래된 브랜딩 전략이다. 시장의 지위를 빼앗긴 브랜드가  영광을 찾기 위해 가장 잘하는 것을 무기로 내세운 셈이다. 또한 과거와 같이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 하지 않는다. 내비게이션 협업이란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서 소비자 접점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하인즈의 노력을 엿볼  있다.



(Editor) 권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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