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치킨 샌드위치 전쟁이 한창이다. 발단은 2019년 8월, 파파이스가 칙필레(Chick-fil-A)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에서 시작했다. 당시 파파이스의 새로운 치킨 샌드위치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며 품절 대란이 일었다. (같은 시기 캘리포니아에서 거주 중이었는데, 파파이스 신메뉴를 먹어보자는 친구의 말에 넘어가 장작 3시간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맥도널드, 버거킹, KFC, 타코벨 등 글로벌 패스트푸드 브랜드도 앞다투어 치킨 샌드위치를 출시했다. 합리적인 가격과 뛰어난 맛의 치킨 샌드위치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최근엔 서부에 베이스를 둔 버거 브랜드 칼스주니어(Carl's Jr)도 전쟁에 참여할 것을 선언했다. 거의 모든 브랜드가 치킨 샌드위치 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치킨 샌드위치
미국에서 치킨 샌드위치(치킨 햄버거)의 절대 강자는 어디일까? KFC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019년 기준 33%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프랜차이즈는 칙필레(Chick-fil-A)다. 치킨(닭고기)을 활용한 햄버거가 주력 상품이며, 와플 모양으로 생긴 독특한 감자튀김을 판매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해외 진출에 매우 소극적인 경영을 이어나가고 있기에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브랜드일 수 있다.
칙필레 (Chick-fil-A)
그러나미국에서만큼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칙필레는 1964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첫 매장을 연 후 현재까지 약 2,500여 개의 매장을 운영중이다. 미국 맥도널드가 약 1만 4천 개, 버거킹 약 7천 개 등 경쟁사 대비 매장 수는 적지만, 미국 소비자만족지수협회(ACSI)가 매년 조사하는 '베스트 패스트푸드 체인'에서 6년 연속 왕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칙필레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뛰어난 메뉴 퀄리티다. 메뉴 구성을 간소화하는 대신 다양한 소스를 제공함으로써 품질을 개선하는 것에 집중했고, 건강한(?) 패스트푸드라는 인식을 고객에게 심어주었다. 깔끔한 매장 운영과 직원 서비스 관리, 합당한 직원 보상 등은 고객이 지속해서 칙필레를 찾게 하는 원동력이다. (한국의 치킨 맛을 생각하면 실망할 수 있다. 치킨에 관해서 한국을 따라올 나라는 없을 것이다. 칙필레 소스는 정말 맛있다)
2019년 미국 프랜차이즈 매출 랭킹을 살펴보면 칙필레는 맥도널드(약 44조 원), 스타벅스(약 24조 원)에 이어 3위(약 13조 원)를 차지했다. 고무적인 점은 이들이 기록한 넘사벽 수준의 매장당 매출이다. 칙필레는 매장당 450만 달러(약 5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맥도널드나 버거킹, 타코벨, 서브웨이, 웬디스 등 Top 10에 위치한 경쟁사 중 매장당 매출이 300만 달러를 넘은 곳은 없다.
Ranking the Top 50 Fast-Food Chains in America (QSR Magazine, 2020 THE QSR 50)
이러한 칙필레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곳이 파파이스다. 2019년 8월 파파이스가 선보인 새로운 치킨 샌드위치 메뉴는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되며 품절 대란이 일었다. 파파이스 매장 10곳을 들려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CNN 뉴스에 따르면 휴스턴 지역에서 남녀 다섯 명이 치킨 샌드위치 품절 소식을 듣자 총질로 직원을 위협하며 분풀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모든 재고가 소진되자 허위 광고를 이유로 파파이스를 고소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치킨 샌드위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판매를 중단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Popeyes Chicken Sandwich
파파이스가 치킨 샌드위치 시장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3.99라는 합리적인 가격이다. 맥도널드와 타코벨 같은 경쟁 브랜드에도 소위 'Dollar 메뉴'가 있긴 하지만, 메뉴의 양과 퀄리티를 따져보았을 때 파파이스의 치킨 샌드위치는 훨씬 큰 가성비를 자랑한다.
뛰어난 맛도 빼놓을 수 없다. 포브스지의 미쉘린 메이나드(Micheline Maynard)는 파파이스 치킨 패티를 '비교할 수 없는 맛'이라고 전했다. 바삭함과 육즙이 타 브랜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평가다.
환경에 관한 의식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요인도 있다. 엠보리포트가 햄버거 단백질원(패티) 별 생산 소요 자원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소고기(Beef)가 가금류(Poultry)보다 환경 자원은 8배 이상 들고 온실가스 배출은 7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착한 소비, 건강한 소비를 지향하면서도 맛을 포기할 수 없는 새 시대의 소비자에게 치킨 샌드위치는 최고의 대체재인 셈이다.
* EMBO Reports, "The Eco-Friendly Burger", Hanna L Tuomisto (2018-12-14)
소셜 미디어에서는 인증샷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졌다. 셀럽들도 앞다투어 파파이스 치킨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SNS에 인증했다. 경쟁사들 간의 난타전도 이어졌다. 칙필레는 자신들이 원조임을 주장하는 트윗을 게재했고, 파파이스는 "괜찮겠어..? (y'all good?)"라는 리트윗으로 맞받아쳤다. 웬디스, 쉐이크쉑, 처치스 치킨 등 경쟁사들도 뛰어들며 자사 치킨 샌드위치를 홍보했다. #chickensandwichwar 해시태그를 중심으로 각 브랜드의 치킨 샌드위치를 비교하는 게시물이 큰 인기를 끌었다.
Social Media #chickensandwichwar
치킨 샌드위치에 포르노를 입히다?
이러한 상황에서 CKE레스토랑 홀딩스의 자회사 칼스주니어(Carl's Junior)와 하디스(Hardee's)는 새로운 치킨 샌드위치 메뉴를 출시하며 전쟁에 참여했다. 두 브랜드는 각각 남서부와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탄탄한 소비 계층을 거느린 프랜차이즈 버거 브랜드다.
칼스, 하디스
재미있는 점은 메뉴 출시와 함께 제작한 광고 영상이다. 칼스주니어의 새로운 치킨 샌드위치 캠페인 영상은 포르노를 연상시킨다. '푸드 포르노'라는 크리에이티브를 무기로 과열된 시장에서 니시(Niche)를 모색하겠다는 전략이다.
광고 영상은 Hot&Sticky(핫하고 끈적한)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한다. 끈적한 소스가 치킨 샌드위치 위로 떨어진다. 모델의 손은 떨어지는 소스를 헤집으며 섹슈얼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배경음악은 힙합 아티스트 Really Khalil의 'Saucy On You'를 사용했다. 치킨 샌드위치 위로 소스가 떨어지는 영상과 함께 'I gotta get saucy on you'라는 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get saucy on' 표현은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어필할 때 사용하는 슬랭이다.
Adage, CARL'S JR. ENTERS THE CHICKEN SANDWICH WARS WITH INTENSE FOOD PORN, Ann-Christine Diaz(May14)
광고 영상은 'OnlyFans'라는 플랫폼을 통해 공개된다. 온리팬스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구독자 전용 소셜 미디어 서비스로, 크리에이터가 올린 사진이나 영상을 유료 구독자에게만 공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 중이다. 덕분에(?) 대부분이 성인 콘텐츠로 이루어져 있다. (2020년 국내 진출 시, 미성년자도 제한 없이 가입할 수 있다는 정책 때문에 문제가 일었다). QSR(Quick Service Restaurant,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이 같은 플랫폼에서 광고 캠페인을 송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CKE레스토랑 마케팅 리더 Patty Trevino는 "우리는 다른 브랜드가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라고 전하며, "버거 업계의 타겟 오디언스가 '가족적인', '화목한' 이미지의 가정이 주를 이루었다면, 우리는 최근 부상하는 새로운 플랫폼의 오디언스를 통해 캠페인을 알리려고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National Chicken Council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0~2020) 미국 일 인당 치킨 소비량은 81.8에서 96.2 파운드로 약 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육류(돼지+소) 소비가 107.9에서 111.7 파운드로 3.4% 증가에 그친 것을 고려한다면 유의미한 소비 변화다.
* National Chicken Council, "Per Capita Consumption of Poultry and Livestock, 1965 to Estimated 2021, in Pounds", (Last Updated : Mar 21, 2021)
닭고기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업계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칼스주니어와 하디스처럼 생각지도 못한 크리에이티브를 시도하는가 하면, 쉐이크쉑은 한국에서 발견한 고추장 소스를 치킨에 접목한 '고추장 치킨 샌드위치'를 미국 시장에 선보였다. 전통의 강자 KFC와 맥도널드는 연일 새로운 치킨 샌드위치를 선보이고 있고, 메뉴 다변화에 소극적이었던 칙필레도 '허니 페퍼 치킨 샌드위치' 메뉴를 출시했다.
춘추 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치킨 샌드위치 전쟁이지만, 소비자는 선택권이 다양해짐으로써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 치킨 샌드위치 전쟁 역사를 한눈에 보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