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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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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Apr 14. 2024

호모 이코노미쿠스 vs 호모 폴리티쿠스

2024년 4월 13일(맑고 더움)

  인간을 두고 ‘생각하는 동물’이라고들 한다. 우민이 보기에 이는 틀린 말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생각하기 싫어하는 동물’이란 표현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각을 하려면 뇌가 활성화돼야 한다. 뇌는 인간 체중의 2%밖에 안 되지만 깊은 생각에 빠질 때 20% 안팎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깊은 생각에 빠지면 엄청난 에너지 소비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 개체로 봤을 때 이는 막심한 손해다. 그래서 생각하는 일, 즉 머리 쓰는 일은 잘난 척 뻐기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맡겨두고 자신들은 최대한 뇌를 안 쓰고 살 방법을 궁리하는 게 인간이다. 똑똑한 사람들에게 무임승차하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인간이 책읽기와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게임이나 유튜브에 몰입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게임이나 유튜브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뇌를 조사해보면 뇌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그것도 미미하게 활성화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발견된다. 지루한 건 싫으니까 뇌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면서 가늘고 오래 자극을 받는 것을 선택한 결과다.     


  이게 바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추구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실상이다.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가장 적은 돈과 에너지를 들여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을 택하는 사람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모든 것을 단순화해 이해하려는 이유도 거기에 숨어있다. 만물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환상이 기막히게 작동하는 이유다. 이분법적인 흑백논리가 횡행하는 이유도 같다. 어떡하든 에너지를 덜 쓰면서 세계가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이야기가 많다.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우민은 그런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무의식적 욕망을 엿보게 된다. 상황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모든 것을 꿰뚫는 하나이 이론을 만들고 싶은 몸부림이다.     


  선거결과를 파랑과 빨강의 두 색깔로 동서가 나뉜 것처럼 그려내는 인포그래픽부터 그렇다. 당장 서쪽에 위치한 서울만 봐도 출구조사와 달리 강남3구는 물론 용산, 동작, 도봉 등 빨강이 여럿 보이지만 애써 그런 변수들을 무시하는 것 역시 단순해야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국힘당이 보수표 단속에만 나섰으면 이겼을 것을 괜히 중도 확장을 한다고 설쳐서 대패했다는 해석 역시 좌우의 논리로만 정치를 이해하려는 아전인수의 극치다. 페미니즘을 극혐하는 20대 남성이 캐스팅 보터였다는 분석 또한 세상을 남녀의 이분법적 대결 국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견강부회의 산물이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뇌 속의 가상현실로 옮길 때 어느 정도의 단순화는 불가피하다는 것을 우민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를 앞뒤와 좌우, 진위와 선악의 이분법의 그물로만 포착하려는 동물적 본능과 맞서 싸울 줄도 알아야 진정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어떤 현상을 분석할 때 숫자 1이나 2에 매몰되지 말고 3까지 떠올리는 것, 그것이 진정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그렇게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분투하는 인간이야말로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한나 아렌트가 이상적 인간으로 여긴 정치적 동물로서 호모 폴리티쿠스의 진면목이지 않을까라고 우민은 다시 생각한다.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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