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키워주는 '나'의 자존감
"우와! 엄마, 나 지금 깜짝 놀랐어요."
고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적어내라는 말에 처음으로 '동화작가'라고 써서 제출했습니다. 뭐든지 읽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는데 장래희망이라고 적힌 칸을 보자마자 '동화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에서 파닥파닥 튀어올랐거든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한 걸 보면 제 내면 어딘가에 동화에 대한 환상이 늘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내 세상을 넓혀주었던 동화들처럼 나도 누군가의 세상을 밝혀주고 싶다는 소망.
하지만 그 파닥임은 그저 가슴 안에만 머물렀습니다. 오래오래.
진짜로 동화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입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누고. 동화 속 평범한 문장 하나에서 아이 특유의 천진함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깨달음을 얻어가는 아이를 보며, '나도 내 아이에게 저런 기쁨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꿈틀거렸거든요.
그래서 시작해 버렸습니다.
꼭 동화책을 내보겠다는 거창한 꿈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내 아이가 읽을 동화를 써보자.',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보자.'일 뿐.
그렇게 해서 나의 첫 독자이자 유이(아들 둘)한 독자이며 내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대상이었던 두 아들을 위해 쓰는 동화가 시작됐습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생각하고, 어떤 분위기의 동화를 쓸지 결정하고, 주인공과 조연을 설정하고, 목차를 세우고. 배운 적 없으니 나만의 방식으로 얼기설기 엮어갑니다.
순간순간 멈칫하고, 막연하게 떠오르는 장면을 위해 배경지식이 될만한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고, 썼던 단락을 통째로 지웠다가 다시 쓰고.
내가 만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드디어 아이들에게 제가 쓴 동화를 공개하는 날이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쓴 이야기인데도 막상 공개하는 날엔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리던지요.
평가받는 자리도 아닌데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내 안에서 부풀어 올라 기대감으로 찰랑거렸습니다.
그날, 원고를 다 읽은 첫째가 한 말은, "오! 엄마, 재밌어요." 하고 끝.
음, 뭔가 미진하고 아쉬운데. 이 반응은 뭐지?
표정을 보면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표현이 너무 담백해서 김이 빠졌지요.
연이어 원고를 읽은 둘째가 한 말은, "우와! 엄마, 나 지금 깜짝 놀랐어요.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정신없이 읽고 있는데 내 손에 책이 아니고 엄마가 쓴 원고가 들려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이건 책으로 나와야 해요. 내 친구들한테도 보여주고 싶어요."
오!!! 이런 예쁜 녀석!
동화를 쓰는 중간중간 목차가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쪼르르 달려와서 읽고는 다음 내용을 재촉하던 아이는, 엄마의 글이 마무리된 걸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 줬답니다.
엄마에 대한 기본 예의에 진심을 담은 감탄까지 더해서요.
그 뒤로 우리 집에선 제가 쓴 동화의 주인공들이 종종 아이들 입을 통해 소환됩니다.
동화 속에서 설정했던 상황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주인공을 소환해 상황을 대입하고 해결책을 찾아갑니다. 엄마가 쓴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고 마음 한편에 담아뒀다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드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제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잘 전달된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가슴이 간질거리는 기쁨은 덤이고요.
이렇게 나의 첫 독자이자 글을 읽을 대상이었던 두 아들이 전해주는 말과 행동에 나의 글쓰기 자존감이 매일 조금씩 자라납니다.
아이들 말에 빼꼼히. 아이들 태도에 쑥쑥.
나의 말과 행동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성장시키듯이 아이들의 말과 행동도 '나'의 자존감을 성장시킵니다.
덕분에 말의 영향력을 또 한 번 느끼고 아이들에게 말을 건넬 때 좀 더 다듬어 뱉으려 노력하는 엄마가 되지요.
지금도 이 순간에도, 쓰고 있는 동화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아이들 재촉에 나의 자존감 밭은 더 크고 넓어집니다. 그리고 그 밭에서 나는 오늘도 동화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