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아 Jul 13. 2022

두 세계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며

본가에서 일주일간의 요양을 마치고 서울 자취방으로 다시 올라왔다. 용인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타는데, 이 구간에서만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이 있다. 마치 형형색색의 빛이 어지럽게 휘몰아치는 마법 터널을 지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자취는 내 20n 년 생에서 꽤나 큰 사건이다. 안전하고 포근한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자립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라(몇 차례에 걸친 심리검사에서 항상 이 항목이 높게 측정되었다.) 2학년이 끝나고 휴학했을 당시에 더 이상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포를 하며 금전적인 지원을 스스로 중단했었다. 그것도 나름 큰 결심이 필요했던 사건이었는데. 자취를 시작하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부모님 곁을 떠나 독립된 개인으로서 사회와 생존에 직면하는 느낌이다.



부모님의 그늘 밑은 모든 것이 안전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차분한 세계이다. 그러나 그곳을 벗어나면 여태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질서가 파괴되어 혼란이 가득하고, 어떻게든 치열하게 살아 내야만 하는, 그리고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격동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세계가 펼쳐진다. 이 두 세계의 괴리는 '집'이라는 공간이 위치한 지역을 벗어남으로써 자각된다. 본가가 위치한 용인에서 느긋한 여유를 느끼다가 서울로 진입하는 경부고속도로만 들어서면, 마치 마법 터널을 지나 전장에 나가는 듯한 긴장감에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진다. 이 괴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가면이 필수적인데, 적장들에게 내 느긋한 모습을 보여줬다가는 그대로 즉사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라고 비유하자면 삶이 너무 척박해 보이려나).아무튼, 매번 자취방으로 향할 때면 자아의 가면을 마치 투구처럼 겹쳐 쓰고 전장에 나서는 느낌을 벗을 수가 없다.




​데미안의 첫 번째 장 "두 세계"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소란스럽고 요란한 것, 어둡고 폭력적인 것이 가득한 곳에서 한 걸음에 어머니 품으로 도망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두 세계의 경계가 가깝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두 세계가 얼마나 가까운지!” 헤르만 헤세 - 데미안




이 문장은 안전한 세계에서 걸어 나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사람의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안전한 곳에서 걸어 나와 수많은 세계들이 충돌하는 혼돈의 장소에서 본인이 열고나온 세계의 문을 바라보고 있다. 전혀 다른 곳이지만, 상당히 가깝게 맞닿아 있는 두 장소의 분리를 자각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을 갖게 됨으로써 느꼈을 여러 종류의 감정들에 어렴풋하게나마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으며 오늘도 힘겹게 살아낸 나를 다독인다.


<our memory> 2021


작가의 이전글 내게 남은 삶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