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기
신경주역에 도착한 후,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경주 시내로 더 들어갔다. 시내로 가는 버스 창밖에는 드넓은 밭과 하늘을 덮을 듯이 높게 솟은 산 듬성이가 펼쳐진다. 시야를 가로막던 높은 건물들 대신 탁 트인 풍경에 눈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이게 바로 자연의 힘이구나 얕게 감탄하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맡기고 근처 동네를 산책했다. 높은 건물이 없고, 구획이 잘 나눠져있어 건물과 건물 사이의 도로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만에 멀리까지 내다보는 것인지. 시력이 그리 좋지 않음을 새삼 실감한다. 거진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니 풀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건물 벽과는 대비되는 채도 높은 초록 빛깔의 잔디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잔디밭에는 고분이 여러 개 솟아있고, 푯말에는 호우총이라고 써져 있었다.
이상했다.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뜬금없는 평지였고, 또 너무 동그랗게 솟아있다. 이상하다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상하리만큼 이상했던 분위기에 취해 고분 앞 나무 밑에 앉아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다가 그토록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 하나를 발견했다. 무덤 주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가정집과 상점들이 위치해있다. 마치 무덤이 뭐 대수라고 하는 것처럼. 죽은 자가 누워있는 터 와 산자가 살아가는 터가 아무렇지 않게 얽혀있다. 생소한 장면에 낯설었던 것이다. 낯섦을 알아차린 순간 경주는 자신의 매력을 이제야 발견했냐며 이곳저곳으로 내 시선을 가져갔다.
하늘을 가르는 고분의 유려한 곡선들은 동네를 포근하게 감쌌다. 산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덕도 아닌, 여러 봉우리들이 예뻤다. 고분들 사이로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거닐다 보니 점차 밀도 높은 어떤 기류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속에 누워있는 사람은 나만치 작은 존재일 텐데. 그 위로 쌓인 흙과 돌과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 몸에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내 몸 위로 쌓일 흙과 돌과 시간의 무게도 가늠해 보며 숙연해진 채로 마저 걸었다.
신라의 옛사람들은 고분 안에 시신과 금장식들을 함께 묻었다고 한다. 이는 죽은 이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함과 동시에 죽은 이의 장례를 치르는 산자의 위세를 나타내는 것이란다. 죽음을 통해 산자는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무덤 옆에 생을 이어가는 그들의 일상이 문득 궁금해졌다. 삶과 죽음이 뒤죽박죽 얽혀있는 경주.
영화 경주의 인물 윤희(신민아)의 집 거실에 걸린 풍자개 그림에는 이런 문구가 써져있다.
“사람들 흩어진 후에 초승달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
경주에서 삶과 죽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동안 계속 맴돌던 문장이다. 솔직히 무엇을 의미하는 건 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 알쏭달쏭 한,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것이 꼭 내가 살아내고 있는 삶과도 같다는 느낌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