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토끼 May 12. 2024

5월의 어느 하루

햇살은 따사롭고, 공기는 청량하다.

은회색 자작나무의 초록 잎들이 햇살을 머금어 반짝거리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기분이 좋다.

그러고 보니 5월의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뒤덮여 살랑거리고 있다.


연한 초록, 짙은 초록, 좀 더 검고 탁한 초록....

그 초록 들 틈바구니에 빨간 장미가 곳곳에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조금 걷다 보니 햇살은 점점 더워져 나무 그늘이 왠지 더 반가운 마음이다.


요즘 날씨를 종잡을 수가 없다.

더운가 싶으면 서늘하고, 온도가 내려가는가 싶으면 무더위가 찾아온다.

봄과 여름이 엇갈리며 오고 가는 느낌이다.


햇살 속을 걷는다.

조금씩 더워져 겉옷을 벗어 손에 든다.


검은색 반팔 티와 반바지 차림에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얼굴의 반을 가린 얇은 검은 천 마스크를 쓴 남자가 달려온다.

헉헉대는 숨소리가  지나쳐간다.



똑 닮은 강아지 두 마리를 줄에 맨 여자가 저만치 앞서 걸어간다.

강아지 한 마리가 풀냄새를 맡으며 경로를 이탈해 잔디밭으로 들어간다.

그 옆을 태연한 척 스쳐 지나간다.

작은 강아지든, 큰 개든 그들을 보면 항상 긴장이 된다.


어릴 적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오던 개에게 쫓기던 경험이 공포로 남아있어서 일까?

이상하게 개만 다가오면 무섭다.

누군가 개에게 물려 시퍼렇게 멍든 모습을 본 기억이 있는 듯도 한데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포근한 햇살 아래서 걷고 있는 나 자신이 왠지 현실감이 없다.

가끔 그렇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나 자신이 내가 맞긴 한 걸까?

그렇다면 왜 마음 한구석이 이렇게 시린 걸까?

진정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현재의 나를 살고 있는 것일까?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방황하면서 그렇게 지금의 나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모든 것이 밝고 온화하고 여유롭다.

그 온화함 속에 알지 못할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마치 쌀쌀한 이 바람처럼....

너무나 평온해서, 너무도 아무 일이 없어서,고요하고 잔잔해서 낯설다.



갑자기 지나가던 개가 느닷없이 컹컹 짖는다.

깜짝 놀라 어딘가 마구 부유하던 나의 생각이 현실로 돌아온다.

늘 현실로부터 0.00001mm쯤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든다.

아주 사소한 그 작은 현실과의 괴리가 나를 내 삶에서 제3자로 느끼게 한다.


그렇게 현실인 듯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조용한 어느 5월의 하루가 흘러가고 있다.

언제쯤 내 삶의 한가운데서 오로지 지금 현재에 집중한 하루를 살아 볼 수 있을까?

자꾸 어디론가 달아나려는 생각을 다 잡아 글을 써 본다.


지금도 흘러가 과거가 되어가는 나의 현재를, 어디론가 떠도는 나의 마음을 이렇게나마 박제해 놓을 수 있을까 싶어 미련을 잔뜩 품고서 글을 쓴다.


자꾸만 부유하는 5월의 어느 하루를, 그저 흘러가 사라져 버릴 어느 하루를, 온통 휘몰아치다 소멸하려는 지금의 생각을 이렇게 글자로 채워나가 본다.


이렇게라도 오늘 하루에게 부질없을 의미를 부여해 본다.



◆◈◇◈◆

작가의 이전글 봄날은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