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항로의 시계이자 후레쉬 역할에 감사하다
'생각으로 생각을 덮는다'는 환자가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의 하나로 시작한 글쓰기가 어언 1년이 되었다.
환자의 태도로 시작한 글쓰기는 시간이 지나며 습관이 되었고, 이제는 삶의 동력이 되었다라고 할 만하다.
며칠 전에는 인생 첫 책, 브런치북 두 권을 발행했다.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에서 신인 작가를 발굴해 시상을 하는데, 그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한 절차였다.
소책자 브런치북의 제목은 '슬기로운 치병생활'과 '실사구시 세상보기'로 정했다.
수술과 1차 항암을 마치고 2차 항암을 시작한 후, 1년간 블로그에 260편의 글을 썼고, 그 중 82편을 추려 브런치에 올렸다가, 이번에 56편을 골라 브런치북으로 묶었다.
뇌종양 수술로 시야결손이 있는지라 목차 구성부터 내용 검수까지 제대로 신경쓰지 못해 아쉽긴해도 투병기간 좌절에 머물지 않고 희망을 키워왔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 뿌듯하다.
제대로된 글쓰기를 해보지 못해 처음에는 유투브에서 보고 들은 컨텐츠에 단편적인 한 줄 느낌을 적는 식으로 시작했다.
쓰다보니 한 줄 느낌이 너댓줄 단상이 되고, 소재를 모으고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글쓰기 요령이 생기고 습관이 만들어졌다.
또한,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며 글로 표현하는 방식의 틀이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친구와 지인의 격려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읽을 만하다, 글이 따듯하고 진솔하다, 문체가 유려하다는 식의 칭찬이 빈 말일 지언정 큰 힘이 되었다.
객관적인 평가가 듣고싶어 딸의 챗지피티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 순간의 놀람과 흥분을 잊을 수 없다. AI는 "아버지의 글은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에서 우러난 인문학적 통찰을 보여준다"고 했다.
나중에 AI가 사용자친화형 아부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허탈했지만, 당시에는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어제 아침 라디오프로를 듣던 마눌이 넌즈시 묻는다. 개그맨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한 고명환씨가 독서를 '인생 항로를 비추는 나침반'에 비유했다며 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나에게 글쓰기는 살아온 인생을 성찰하고 현재의 모습을 점검하며 앞으로 살아갈 힘을 주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은 겸손과 감사를 배우게 했고, 터잡고 사는 이 땅의 사회 이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마음 다스리는 태도를 만들고,
병을 이겨내는 습관을 체화시켰다.
치병생활에 함께한 글쓰기는 나에게는 인생이라는 여정에 반드시 필요한 시계이자 후레쉬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