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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Dec 17. 2021

푸른 돔의 도시 사마르칸트 4

무카르나스가 화려한 티무르의 무덤 구르 에미르


소그디아나의 지배자는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1077년부터는 호레즘 제국의 시대가 열렸지요. 호레즘 제국은 호레즘 지역은 물론 이란, 아프가니스탄, 소그디아나에 이르는 매우 넓은 지역까지 영토를 넓혔던 이슬람 왕조였지요. 거침없이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호라즘제국에 칭기즈칸이 450명으로 구성한 사절과 상인들을 보내 교역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호라즘제국의 수도까지 가지도 못하고 사마르칸트 북동쪽에 있는 당시의 국경도시, 지금은 카자흐스탄에 속한 오트라르에서 몰살당하지요. 결국 호레즘 제국은 칭기즈칸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당합니다. 1220년의 일입니다. 그로부터 백여 년 후, 차가타이 칸국 시대에 이곳을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그의 여행기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사마르칸트는 대단히 크고 아름다운 도시다. 까솨린이라는 강가에 있는데, 수차로 화원에 물을 대고 있다. 신시 예배가 끝나면 사람들은 이 강가에 나와 산책을 즐긴다. 거기에는 앉을 자리가 많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점포들도 있어 과실과 기타 먹거리를 팔고 있다. 원래 강가에는 이곳 사람들의 높은 기개를 말해주는 웅장한 궁전과 건물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대부분이 파괴되어 버렸다. 도시도 마찬가지로 많이 파괴되어 성벽이나 성문은 남은 것이 없다. 시내에는 화원이 여러 개 있다. 사마르칸트인들은 심성이 선량하고 외방인에게도 친절하다.      


중앙아시아의 중요한 무역 거점이었던 사마르칸트는 곧 복구됩니다. 아무르 티무르가 사마르칸트의 마지막 부흥을 이끈 지도자입니다. 1370년에 티무르는 사마르칸트를 티무르 제국의 수도로 정합니다. 아프라시압 남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오늘날의 사마르칸트 지역입니다. 신도심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오늘날 사마르칸트에서 보는 유적들은 티무르 제국 시절의 것이 많습니다. 1507년 사마르칸트를 정복한 샤이반 왕조는 수도를 부하라로 옮겼습니다. 벚꽃이 지듯 티무르가 다시 일으킨 사마르칸트의 영광은 짧게 끝나고 천천히 폐허의 길로 들어섭니다.

지금 도착한 이곳, 구르 에미르는 티무르가 묻힌 곳입니다.


티무르가 잠든 구르 에미르      


아미르는 칸이 될 수 없었던 티무르가 가질 수 있었던 최고의 지위이고, 구르 아미르란 ‘왕의 무덤’이란 의미입니다. 구르 아미르는 큰길에서 아주 잘 보입니다. 마치 우리의 일주문처럼 화려한 피슈타크가 전면에 나와 있습니다. 그 뒤로 푸른 돔 형식의 건물과 양옆으로 미나렛이 높이 솟아 있는 모습이 초록색 나무 위로 보입니다. 당시 티무르의 위용이 이랬을까요? 위풍당당합니다.      

티무르는 1370년 티무르 제국을 선포하고 30여 년 동안 정복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 지역은 서쪽으로는 흑해에 이르기까지, 남쪽으로는 지금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인도의 북부에 이르기까지, 동쪽으로는 중국과 접하는 대제국을 건설했지요. 수도인 사마르칸트는 국제적인 상업 도시로 예전의 바그다드를 능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티무르 제국의 전성기였던 1405년의 지도


티무르가 건설한 도시 사마르칸트는 온통 푸른 빛입니다. 구르 아미르의 푸른 돔은 주름이 잡혀 있어 더 눈길을 끕니다. 매끈하지 않고 이렇게 주름을 넣은 돔은 티무르 시대에 시작된 기법이라고 하는데, 주름마다 반복되는 문양도 아름답고 구라고 하기에는 조금 긴 모양이 마치 굵은 뜨개실로 뜬 모자 같기도 합니다. 사마르칸트는 정복지인 페르시아와 아랍 문화를 흡수하며 이렇게 중앙아시아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전면에 피슈타크가 있고 뒤로 주름 잡힌 돔과 미나렛이 보이는 구르 에미르. 입구 바닥의 별십각형 무늬가 화려하다.


무카르나스로 화려하게 장식한 티무르 시대의 건축   

  

별십각형 모양으로 멋을 낸 보도블록에서 보는 구르 아미르의 피슈타크는 이제까지 본 것과는 격이 달랐습니다. 크기와 높이가 엄청나서 그 표면을 꾸미고 있는 푸른 빛 문양의 화려함과 섬세함에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위쪽의 둥근 천장은 무카르나스라고 부르는 구조입니다. 부하라에서도 보았지만, 부하라의 무카르나스가 동네 양반집 대문이라면 구르 아미르의 무카르나스는 광화문이라고나 할까요. 티무르 시대의 건축의 화려함은 무카르나스의 다양한 변주로 나타났습니다.


무카르나스는 ㄷ자 벽 위에 돔을 얹을 때 ㄷ자 모양의 벽을 점점 둥글게 채워나가 마침내 둥글게 열린 천장이 되도록 만드는 구조입니다. 무카르나스를 올려다보면 벌집같이 복잡한 구조에 입이 딱 벌어지며 저걸 어떻게 설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무카르나스는 조금씩 모양이 다른 입체 조각들을 이어 만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무카르나스를 아래서 올려다보면 조각 하나하나가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상상해보지요. 무카르나스는 수백 개의 작은 입체 조각들을 이어붙여 만드는데, 그 입체 조각들이 뼈대로만 만들어졌다고 상상해봅시다. 저 멀리 높은 곳에서 빛을 비춘다면 바닥에는 입체 조각의 뼈대들이 만든 그림자 도형이 그려지겠지요? 뼈대들을 비춘 도형으로 만들어진 그림자, 그것이 무카르나스의 설계도입니다. 작은 입체 조각들이 수평 방향으로 서로 침범하지 않아 가능한 일이지요. 무카르나스는 이차원 설계도를 바탕으로 하여 주변에서 중심부로 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삼차원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증거가 이란, 터키 등에서 발견된 설계 도면입니다. 타슈켄트에 있는 우스벡 과학 아카데미에도 티무르 시대 이후의 무카르나스 건축 도면이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설계도를 들고 건설 현장을 지휘하는 장인! 입체 조각들을 하나하나 이어나가는 그 노고를 감당하는 당시의 건축가들은 진정한 예술가입니다. 다행히 설계도만이 아니라 이런 건축 장면이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16세기 부하라의 무카르나스 설계도면. 우즈벡 과학 아카데미, 타슈켄트


구르 아미르의 무카르나스도 아치문 위로 ㄷ자 벽이 둥글게 올라가는 모양입니다. 전면을 향해 탁 트여 있으면서 둥근 천장의 중심부를 향해 입체들이 몰려드는 듯합니다. 밑에서 보면 중심부에서 뻗어 나오는 문양과 원형으로 배열된 별오각형이 마치 부채를 편 듯한 방사형 구조입니다. 이 무카르나스의 설계도에는 어떤 도형들이 그려져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저 입체 조각은 마름모, 저 입체 조각은 오각형이겠네요. 입체 조각들을 연결하는 수직면이 뾰족한 저것은 표창 모양이고요.

구르 아미르의 무카르나스에는 평면에 사영시킨 모양이 표창 모양, 마름모, 오각형인 입체 조각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구르 아미르 입구의 무카르나스. 아래 사진은 밑에서 올려다본 모양이고 위 사진은 부분 확대 사진이다. 단위 조각의 기본 도형은 A는 표창 모양, B는 마름모, C는 오각형이다.


무카르나스에 대한 수학적 접근은 알 카시가 남긴 <<산술의 열쇠>>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알 카시는 페르시아가 티무르의 지배 아래 놓였을 무렵인 1380년에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사마르칸트에서 울르그 베그와 함께 동한 학자입니다(울르그 베그는 티무르의 손자이자 티무르제국의 다섯 번째 술탄입니다. 울르그 베그 마드라사에서 그를 만날 예정입니다). 알 카시는 <<산술의 열쇠>>에서 무카르나스의 넓이를 계산하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또, 그는 무카르나스에 사용된 입체의 모양, 크기, 각도 등을 분석하여 삼차원 입체를 만드는 방법과 연결 방법을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먼저 무카르나스의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하여 그 설명에 성공하였지요. 이런 그의 연구가 <<산술의 열쇠>>라는 책에 기록되어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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