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학동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호영 Dec 15. 2022

원의 비밀을 찾아라 5

5  소가 만든 원

“아 참, 누렁이 데리고 나와서 풀을 뜯겨야 하는데…….”


굴렁쇠 굴리기에 빠져 누렁소에 밥을 주는 것을 그만 까맣게 잊어버린 시내가 문득 멈춰 서며 말했다.


“누렁이?”

“응. 지난달에 태어난 소야. 내가 따로 키워.”


시내가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멈췄던 시내의 굴렁쇠가 다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수담이도 질세라 굴렁대 쥔 손에 다시 힘을 쥐며 시내의 뒤를 따라 달렸다. 

얼마나 신나게 달렸을까. “음매” 하는 누렁소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어느새 외양간 앞이었다.

잠시 후 시내가 누렁소를 몰고 나왔다. 수담이도 굴렁쇠를 걸어 놓고 얼른 시내를 따라갔다. 이제 시내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둘은 누렁소를 몰고 논길을 에돌아 학교 쪽으로 갔다. 시내는 학교 운동장 옆 공터에 말뚝을 박았다. 부드러운 풀이 우묵하게 자라 있었다. 누렁소는 큰 눈을 슴벅거렸다. 거품이 하얗게 묻은 입으로 풀을 뜯어 먹었다.

수담이는 시내를 따라 운동장으로 내달렸다. 여기저기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축구 골대가 있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자 낡은 학교 건물이 보였다. 수담이는 교실 유리창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여기가 시내가 공부하는 교실이구나.’

교실 뒤에는 재미있는 그림들이 붙어 있었다. 수담이는 시내가 그린 그림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는 사이 시내가 갑자기 수담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리 와 봐, 또 원이 생각났어.”


시내는 학교 뒤뜰로 수담이를 데리고 갔다.


“자 봐, 이 우물도 동그랗지? 그리고 이것 봐.”


시내가 작은 돌멩이를 주워 우물 속에 떨어뜨렸다. 우물 안에서 금방 퐁 소리가 났다. 동심원들이 생겨났다. 물살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수담이도 돌멩이를 하나 떨어뜨렸다. 동글동글 동그란 물살이 스르르 퍼져나갔다. 우물에 비친 시내와 수담이의 얼굴이 물살을 따라 흐물흐물 흔들렸다. 수담이와 시내는 우물에 비친 얼굴이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가만히 들여다보며 웃었다.

‘쓰름 쓰름 쓰휘웅 쓰휘웅.’


갑자기 학교가 소란스러워졌다. 잠시 숨을 죽이고 있던 매미들이 모두 한꺼번에 울기 시작한 것이다. 

수담이가 뒷산 나무들을 올려다보는 사이 시내가 나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수담이도 시내를 뒤따라 달렸다. 커다란 나무 밑에 선 시내가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한 나무 위로 올라가 매미를 잡아 왔다. 시내는 수담이 손바닥 위에 매미를 올려놓았다. 손바닥 위에 놓인 매미가 움직일 때마다 수담이는 간지러워서 몸을 비틀어대며 쿡쿡 웃었다. 매미는 제법 큰 놈이었다. 수담이는 날개와 머리, 가슴, 배를 차례로 살펴보았다. 곤충도감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그사이 시내는 수풀을 돌아다니며 풀여치와 무당벌레도 잡아다 주었다. 방아깨비의 뒷다리를 잡고 수담이에게 인사도 시켜 주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수풀 속에서 시내는 이것저것 잘도 찾아냈다. 그리고 하나하나 이름과 특징까지 자세히 알려 주었다. 수담이가 처음 들어 보는 희한한 이름의 곤충도 있었다. 시내와 수담이가 수풀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데, 이번에는   “음머” 하고 누렁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 먹었나 보네. 이제 말뚝을 옮겨 박아야겠어. 가자!”


시내가 말뚝을 옮기기 위해 뛰어갔다. 수담이는 시내가 잡아 준 곤충들을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모두 놓아 주고는 시내를 따라 뛰어갔다.


“수담아, 이리 와 봐. 여기 또 원이 있네?”


시내가 빨리 와서 보라며 손짓을 했다. 누렁소는 말뚝을 가운데 두고 고삐 줄이 닿는 데까지 풀을 뜯어 먹었다. 그 자리에 원 모양으로 흙이 드러났다.


“우리 누렁이가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야.”


시내가 누렁소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삐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아이고, 우리 누렁이가 수담이 숙제도 도와줬네.”


시내가 토닥토닥 누렁소의 등을 두드렸다. 누렁소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걸 뭐라고 써야 하지? 소가 풀을 뜯어 먹은 자리?”


수담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시내는 피식 웃으며 말뚝을 뽑았다. 누렁소의 코뚜레를 붙잡고 풀이 많은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좋겠어. 나무가 없으니까 줄이 감길 염려도 없고. 고삐 줄을 좀 길게 해 줘야겠다.”


시내가 말뚝에 친친 감긴 고삐 줄을 마저 풀고 다시 단단하게 말뚝을 박으며 말했다.


“고삐 줄이 늘어나면 누렁이가 풀을 뜯어 먹은 자리에 생긴 원도 그만큼 커지겠지? 그러면 원주도 길어지겠다. 그렇지?”

“그럴 것 같은데…… 원주는 왜?”


수담이가 시내의 추리 능력에 감탄하며 물었다. 


“우리 숙제는 원주를 구하는 좋은 방법을 생각해 오라는 거야.”

“줄자로 재면 되지 않아?”


수담이가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말했다. 


“재 봤는데, 정확하게 재기가 어려워. 좋은 방법이 아니야.”


시내는 접시를 엎어 놓고 줄자로도 재고 실로도 쟀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고삐 줄이 짧으면 원주도 짧고, 고삐 줄이 길면 원주도 길다면? 그렇다면 반지름에서 원주를 구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시내가 고삐 줄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의 비밀을 찾아라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