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후 한 달, 가끔 우울할 때도 있었지만 우울증이 도진 것 같이 느껴지지는 않는 정도의 경미한 우울함이었다. 마냥 좋고 행복하기만 했으니까. 심지어 내가 계획했던 것들이 얼토당토않다는 걸 발견하고 전혀 다른 길로 나서야 하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아니었으면 아직도 우울증 일기를 쓰며 출근해서, 우울증 일기로 하루를 마무리해야 했을 테니까. 그런데 집에서 반복되는 일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어서 그런지 다시 우울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내가 행복하려고 한 일이고 내가 행복하려고 사는 삶이기 때문에 하루하루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노력했다. 설령 그게 놀고먹는 일이더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행복하니까. 근데 우울증이 재발하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하고 싶은 게 없어지니까. 그리고 할 수 있는 힘도 없으니까. 밤이면 우울의 늪에 빠져 멍하니 앉아 멍을 때렸다. ‘뭘 해야 할까, 뭘 해야 하지, 자야 할까’. 심할 때는 ‘이렇게 행복하든 불행하든 항상 죽음만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 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회사에서 무표정하게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니까,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할 수 있으니까, 나 혼자서 견뎌 낼 여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휴직이라는 행복 아래에 우울을 이겨낼 조금의 힘이 남아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아래의 방법은 지금 같은 경미한 우울증의 경우에 가능하다)
1. 힘듦을 받아들인다 :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안주와 술을 마시고 잠에 들기, 너무 힘들면 낮잠 자기 등
2. 잊고 몰두할 만한 걸 찾는다 : 홈 트레이닝 자전거를 미친 듯이 탄다. 속도는 상관없다.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도록 몸을 혹사시킬 정도로 움직인다.
3. 나에게 말을 건다 : 내가 아기라고 생각하며 나에게 말을 건다. ‘00아, 지금 이건 하기 싫구나. 그럼 이건 어떨까, 이러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뭘 원하는지 떠올려봐’ 나를 우쭈쭈 하며 나를 보살핀다.
4. 사소한 일도 내 성과인 것처럼 기록한다 : 손발톱 깎기, 빨래 개기 등 사소한 일이라도 힘을 내고 이뤄냈다고 생각하며 노트에 기록하고 체크표시를 한다.
아직 나에겐 위의 방법밖에 없지만, 우울증 관련 책을 읽어보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위안 법을 찾으라고 하더라.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병원을 다니는 일이다. 휴직을 하며 약을 조금씩 줄이고는 있지만, 병원에 꾸준히 다니고 있다. 병원을 다니면 아무리 내가 좋은 상태여도 계속 나를 체크하게 되고,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누군가 돌봐주고 있음을 항상 느낄 수 있다.
생각난 김에 이 지면을 빌려 가끔은 채찍 같고 가끔은 언니 같은 우리 원장님께 소소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항상 감사합니다. 당신의 인사 한마디, 말 한마디가 나를 일깨워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