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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름 Nov 28. 2020

9. 나의 정신과 에피소드

  저번 글에서 우울증에 대해 다시 얘기하다 보니, 짧지만 병원을 다녀오며 느꼈던 것들을 얘기해보고 싶어 졌다. 병원에 다니며 기억에 남는 일들이 몇 번 있었다.      


1. 너도 나도 같은 환자야

  이건 좀 사소한 에피소드인데, 정신병원에는 당연히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그리고 대기석에 앉으면 처음엔 내가 있는지도 모르게 숨어있고 싶다가도, ‘저 사람은 무슨 병일까, 다리랑 손을 떨고 있네’, ‘왜 저기는 가족끼리 왔을까, 무슨 병일까’ 하며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 무슨 병인지도 모르는데 나를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나는 여기서 나만 정상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나만 정상인이고 다른 사람들은 위험한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모두 똑같은 환자인데, 나조차 그런 편견 속에 있었구나, 깨닫게 되어 그 후로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대기석에 앉곤 한다.      


2. 그날의 말 한마디

  항상 진료를 시작할 때 선생님은 묻는다. ‘지난주는 어땠어요?’ 10이면 9~10은 이 문장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나도 그에 맞는 답변을 머릿속에 생각해놓고 가는데 어느 날은 달랐다. 병원을 다닌 지 6개월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계속 죽음이 머릿속에 맴돈다고 언제 어떻게 죽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고 난 다음번 진료였다. 

“다다름씨 걱정했는데 괜찮았어요?”

 나는 그냥 그 날의 13번째 환자일 줄로만 알았는데, 신선한 충격이면서도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여기도 이렇게 있네.’ 그 후로 ‘이 사람도 내가 병을 이겨내길 정말 바라고 있구나’ 생각하며 마음을 더 열게 된 계기가 되었다.     


3. 머리를 망치로 맞았다는 게

  나는 대한민국의 흔한 장녀로서 책임감과 부담에 꽁꽁 싸매여 있었는데, 그게 공무원을 선택한 이유기도 했다. 걱정 안 시키고 빨리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였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그날은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얘기를 했다

“제가 행복하면 죄책감을 느껴요.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어요”라고 말했더니 선생님은 큰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부적절한 죄책감이네요”


  제목처럼 머리를 망치로 맞았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질타하는 목소리도 한심해하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단호한 말 한마디가 순간 정신을 차리게 했다. 그러고 나서 알았다. 정말 부적절한 죄책감이었다는 걸. 이건 그 후의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다시금 느낀 것이지만 항상 그때의 말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나고 부모님은 부모님이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 부모와의 관계에 종속되어 내 행복을 뒤로 미루거나 잊어버리지 말자. 그래서 나는 휴직을 선택했고, 지금 이 자리에도 있게 된 것이다.      


  이상, 짧은 3가지 에피소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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