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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 himi Nov 12. 2020

"스페인으로 가, 은별아. 해가 떠 있는 곳으로."

특이사항 : 거기도 비 왔음   [뒷이야기-에이섹슈얼의 경우3]

*본문에 등장하는 라은은 '좋은 사람'을 재조합한 가명이고, 은별은 저의 별명인 '작은 별'에서 따왔습니다. 


숙소에서야 Glen 덕분에 술과 담배에 절여져 있더라도, 나는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여행지에서 뽕을 뽑아야 한다는 민족의 얼이 DNA에 박혀 있었다.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것과 동행을 구해 베르사유에 가는 건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게 라은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내일이면 라은 언니도 한국으로 돌아간다. 언니는 파리를 떠나기 전에 한 번 타 보라며 바토 무슈(Bateaux Mouches) 티켓을 나에게 쥐여주었다. 여행과 여행지에 미련이 남은 눈 한 쌍과 막막함 가득한 눈 한 쌍이 마지막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땐 스페인으로 가, 은별아. 해가 떠 있는 곳으로. 여기는 너한테 너무 어두운 것 같아."


언니가 떠난 후 쓸쓸히 바토 무슈에 올랐다. 배 타고 야경 보며 영화에서처럼 눈물 한 방울 흘려보려던 건데, 밤공기가 눈물 나게, 아니 눈물이 쏙 들어갈 정도로 차가워 장르가 살짝 바뀌었다.


파리 센 강을 한 바퀴 도는 바토 무슈. 힘든 일이 있다면 바토 무슈를 타보세요! 눈물이 쏙 들어갑니다.




열일곱 시간 동안 기차 타 본 사람? 수고 많으셨군요. 저도 수고 많았고요. 징글징글하게 오랫동안 기차를 타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파리와 달리 쨍한 햇빛에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난 주인공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더운데 길 잃고 헤매느라 금방 증발해버렸지만.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문득 담배 생각이 나 페이퍼와 필터, 그리고 담뱃잎을 사서 말아 피웠다. 음. 맛이 좀 다르군. 한 대 더 말아볼까? 음. 다른데. 그렇게 서너 대를 연달아 피웠지만 생각했던 맛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Glen은 여기다 뭔가를 더 뿌리던데, 그게 조미료 같은 건가?




"그거 아마 weed인 것 같은데. 정말 몰랐어? 너 진짜 애 같다."


숙소에서 알게 된 사람이 알려줬다.




이 XX... 야... 이... 혼란스러움은 둘째치고 뜨문뜨문 끊겨버린 기억과 축 늘어진 몸, 이상하게 오락가락했던 감정 기복의 원인을 알게 된 나는 이틀간 잠에 빠져들었다. 충격으로 앓아눕거나 그런 건 아니고, Glen표 수제담배로 인한 피로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깊은 잠에서 깬 은별이는 도착했을 때와 달리 온통 잿빛으로 변한 풍경을 목격했다. 빠밤. 스페인 장마철 당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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