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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므강 Aug 11. 2023

못된 생각 5 (The thinking of bad)

천칭저울

생각을 저울 위에 올리세요.
뭐든 기준을 세우는 방법은 저울질 밖에 없어요.


디케는 방금 겪었던 현상으로 말미암아 생각보다 인간세계의 정의가 많이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크샤라고 했던가. 옆에 있던 여자의 말에 따르면 분명 그의 사무실이 근처라고 했었다. 명색이 자신이 정의의 여신인데 방금 봤던 장면들이 진짜라면 가만히 지나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디케는 바바꼬 영감의 몸을 일으켜 쓰러진 천칭저울을 바로 세웠다.


'이 저울의 짓일까? 내 천칭저울은 어떤 능력이 있었던 거지?'


코크샤가 동전을 천칭저울의 저울판에 던지고 쨍그랑 소리와 함께 저울판이 내려가는 장면을 되새겼다. 그때 정신이 날아올라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침투하듯이 빨려 들어갔다. 디케는 저울에서 멀찍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코크샤가 던진 동전을 주워 들었다. 그때 망토가 남자 두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할아버지! 경찰 아저씨들 데리고 왔어.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자!"

"사고 조사관 스미스입니다. 아니, 벌써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거예요? 몸은 좀 어떠세요?"


왜소한 골격에 정리가 되지 않은 더벅머리를 한 남자가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옆에는 덩치가 산만한 남자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바바꼬 영감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내 집이나 좀 찾아주게나. 사고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네."

"아직 퇴원은 힘드실 텐데요. 아무튼 잠시만 이 사람하고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시죠. 흠. 병실로 돌아갈 필요 없이 지금 여기서 얘기하면 될 것 같네요."


스미스는 바바꼬 영감의 부탁을 대충 무시하고 옆에 서있는 남자를 다짜고짜 소개했다. 제리라고 불리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스미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바바꼬 영감의 코앞으로 다가온 제리는 땅바닥에 철퍼덕 무릎을 꿇었다.


"다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어떤 책임이든 다 지겠습니다. 수술비가 얼마든 다 내놓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어르신."

"아저씨가 우리 할아버지 친 사람이에요?"


망토가 끼어들어 제리에게 물었다. 팔짱을 낀 자세를 보니 사고를 낸 당사자가 맞다고 하면 욕이라도 퍼부을 기세였다.


"자네가 누구이며 무엇에 대하여 사과하는지 설명을 해야 하지 않겠나. 일단 앉아보게."


땅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제리가 바바꼬 영감이 앉은 벤치 옆자리에 앉았다. 그 옆을 망토가 따라 앉았다.


"저는 교통경찰관 제리라고 합니다. 저 때문에 어르신이 사고를 당하신 겁니다. 제가 그 차를 쫓지만 않았어도."


제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빨간색 포르셰 파나메라가 신호를 무시하고 교차로를 통과한 것이 발단이라고 말했다. 이를 발견한 제리가 순찰차의 사이렌을 울리며 세우라 했지만 빨간색 포르셰는 속도를 올려 보란 듯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심 속 추격전이 이어졌고 제리는 끝까지 그 차를 따라붙었었다. 그러다 결국 포르셰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바바꼬 영감을 치고 가로수를 들이받고서야 멈춰 섰다. 제리는 현재 무리한 추격으로 시민을 다치게 한 연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였다.


"그러니까 평소에 제발 무리하게 단속하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왜 그렇게 단속에 집착을 하는지. 결국 이 사달이 난 거 아니에요. 아휴. 어르신이나 혹은 어르신 가족 분들이 혹시라도 사고 원인이 제리 씨에게 있다 생각하고 소송 준비 중이실까 이렇게 찾아뵌 겁니다."

"뭐야. 아니 사고 낸 당사자는 어디 가고 경찰 아저씨가 여기에 와있어요?"


망토가 끼고 있던 팔짱을 쓱 풀며 말했다.


"그 사람은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고 아마 합의를 위해 그 변호인이 어르신을 찾아올 거야."


경찰이라면 자고로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직업을 가진 인간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디케의 옆에 있는 제리라는 경찰은 제 임무에 임하던 중에 나온 사고 때문에 처벌까지 받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인간세계의 정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법규를 위반한 자와 이를 단속하고자 쫓아 사고를 유발한 자. 위반한 사람은 경찰이 무리하게 쫓아왔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라 주장을 하고 경찰은 당연히 지시대로 세웠다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는 조사관 스미스의 설명을 곱씹었다. 디케는 덩치도 해태같이 거대한 청년 본인의 생각이 단순히 신의 인간에 대한 호기심 차원에서 궁금해졌다.


"제리. 평소에 단속에 그렇게 집착한 이유가 뭐요?"


바바꼬 영감의 갈라진 입술을 통해 디케가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에 빠진 제리가 아무 말 없이 경찰 공무원증을 꺼내 벤치에 올려뒀다.


"저는 경찰 자격이 없습니다. 이 공무원증 반납하고 오늘부로 일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내가 물어본 말에 대한 대답이 아니군."


제리는 끝까지 디케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좋아. 어디 한 번 확인해 보자고."


디케는 바바꼬 영감의 빼빼 말라 핏줄이 다 보이는 손으로 제리의 공무원증을 집어 들어 천칭저울로 던져버렸다. 저울판이 휙 하고 내려가자 아까처럼 정신이 블랙홀에 흡수되듯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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