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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므강 Aug 12. 2023

못된 생각 6 (The thinking of bad)

위험천만 제리

도덕, 양심, 윤리와 법규의 대치에서
무엇을 어기는 것이 더 나쁠까.


시스템을 이용하여 개인적 이득을 취한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과 그에 대항하여 이득을 막고자 법규까지 위반한 자 누가 더 나쁠까.


긴급 신고도 소위 유행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터지면 칼을 들고 돌아다닌다는 신고가 폭증한다. 인도네시아나에서 압사 사고로 무수한 사망자가 났을 무렵에는 압사할 것 같다는 신고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우편물 독극물 테러 관련 뉴스가 나온 날, 식료품이 든 짜장라면 박스가 수상하다와 같은 택배 관련 신고가 많아졌다. 큰 사건은 사람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자극하고 작은 일에도 크게 반응을 일으키지만 일반 시민으로선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을 악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부에나 주립 체육관 주차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 압사할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전 세계적으로 압사 사고에 의해 수 백명의 사상자가 연달아 발생했던 시기라 경찰은 압사 관련 신고에 과할 정도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찰차 3대가 동원됐으나 주차장에 도착한 경찰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주차장에서 나가려는 차가 많았을 뿐 걸어 다니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행사가 끝나고 한 번에 나가려는 차가 많아졌고 유료주차장의 출구가 하나라 빠져나가는데 한참이 걸릴 뿐 안전 문제나 압사의 위험성과는 일절 무관해 보였다. 주차장은 사유지였고 행사 주최자와 수익자가 그 상황을 통제할 책임이 있다.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아 주차장에서 나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단순히 빨리 귀가를 원하는 얌체 같은 사람이 비정하게도 압사사고를 팔아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오인신고든 말든 일단 출동부터 하고 상황을 파악한다. 경찰관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그날 신입 경찰관 제리를 포함해 출동한 경찰관들은 주차요원이 되어 열심히 주차장 관리 임무를 다해주고 복귀했다.




신입 경찰관 제리는 출동마다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 필요한 범죄 관련 신고보다 술 취한 사람을 상대하거나 사소한 말다툼을 중재하는 일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주차장에 관련된 신고에 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기? 절대 압사 사고가 날 수 없는 장소야. 야외 주차장에 자리도 많지 않아 꽉 들어차도 차량이 얼마 없는데 말이 된다고 생각해? 주차장을 빨리 빠져나가려는 얌체신고라고. 굳이 갈 필요 없는데 말이야."


희생자가 무더기로 나온 사건을 이용하여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 있다니. 그럼에도 제리는 그런 소리를 뱉는 경찰관과는 달리 별 불만 없이 그날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신고가 들어왔는데 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얌체신고를 하려는 생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불평은 결국 혼자만의 생각에 그치고 그 경찰관도 열심히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임무를 끝까지 책임졌다. 반면 얌체 짓을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긴 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제리는 겨우 집에 좀 빨리 가겠다고 수많은 희생자가 나온 사건을 이용해 먹은 사람의 인간성에 의문이 생겼다.


처벌까지는 아니지만 비난받아 마땅한 생각을 행동에 옮긴 사람.


처벌까지 받을 만큼 위험한 생각을 떠올리고 행동은 않는 사람.


꼭 이번 사례가 아니더라도 있을 수 있는 두 경우가 이렇게 맞부딪히는 경우, 선택을 해본다면? 주차장 신고를 마치고 잠깐 사무실로 복귀한 제리는 커피 한 잔으로 한숨을 돌리며 이리저리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멀쩡했던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리는 나이만큼이나 불평불만도 많은 만스찰차를 탔다. 그와 2인 1조 근무를 하면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늘여놓는 불평을 듣거나 순찰을 돌고 있으면 옆에서 코 고는 소리를 듣는 것이 일과였다. 만스를 욕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징계를 받은 적은 없었다. 자면서도 순찰을 돌 때 긴급상황을 먼저 발견하여 처리하고 그렇게 불만을 내뱉는 신고도 정작 도착하면 누구보다 깔끔한 일처리 솜씨를 보였기 때문이다. 빗줄기가 거세지자 하나씩 신호등 고장신고나, 저지대 침수우려 신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만스는 유난히 재해재난 관련 신고에는 소극적이었다. 비만 오면 찰차에서 내리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말이 좋아 베테랑이지 썩은 사과 같은 선배 만스가 제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인은 나이 들어도 저런 흉한 경찰은 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순찰을 도는 동안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해지기 시작했다. 언제 그렇게 폭우가 쏟아졌냐는 듯이 하늘이 개자 바이크를 몰던 중년 남성이 안전모를 쓰지도 않은 채 운행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리는 곧장 차를 돌려 담배를 꼬나물려는 바이크 운전자에게 다가가 신분증을 요구했다. 홀딱 젖은 바이크의 주인은 온몸을 바들바들거리며 자신의 딸을 핑계 삼아 제발 봐달라고 사정을 했다. 먹고살기 위해 고생하는 모습과 항상 써온 안전모를 오늘만 빠뜨렸다는 말, 그리고 죄송하다며 다음부턴 꼭 쓰겠다는 다짐을 거듭하며 빌어대는 그를 제리는 계도 조치로 처리하고 단속하지 않았다. 그 운전자를 믿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굽신거리는 그의 모습에 우월감을 느끼며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생각이었을까. 제리는 무차별적인 단속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근무에 임했었다. 그러나 사고 한방에 그의 가치관은 무너지고 말았다. 어떤 바이크 운전자의 사망사고 소식. 사고 당사자는 발생 불과 30분 전에 제리가 계도 조치했던 그 사람이었다. 그날이 계기였다. 미친 듯이 단속에 매진했던 제리. 사소한 법규 위반까지 절대 봐주는 일이 없었다. 그만큼 원망 섞인 민원을 수도 없이 받았고 팀장을 비롯해 경찰서장까지 나서서 제발 무리한 단속은 지양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제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날 5살짜리 딸의 아버지를 본인이 죽였다고 생각했다. 안일한 그의 대처가, 만스의 말대로 철저히 단속하지 않았던 과오가 만든 처참한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했다. 제리는 그날 이후로 마치 악귀에 씐 것처럼 눈에 불을 켜고 바이크들을 잡아댔다. 그래야 그런 희생자가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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