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쓰여있네. 나쁜 생각...... 공원 이름이 '나쁜 생각'이야? 이렇게 예쁜 공원에 누가 그렇게 못된 이름을 지었대?"
"못된 이름이지. 나쁜 생각이 모이는 공원이라 그렇대."
남자아이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그 얘기를 듣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잡고 있는 엄마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럼 얼른 나가자. 나쁜 사람들이 많으면 위험하잖아."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나쁜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여기는 위험한 공원이다. 아들의 말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학적 논쟁 같은 문장이 머릿속에서 나열했다. 아들이 재촉하는 발걸음에 끌려다니던 아이 엄마가 멈춰 선채 아들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아니야. 아들. 누구든 생각만으로 나쁜 사람일 수는 없어. '나쁜 생각 공원'은 절대 위험하지 않아. 안심해."
아이는 엄마의 손을 붙잡은 힘을 느슨하게 풀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 도시. 주변은 몰라보게 바뀌었지만 공원만큼은 30년 가까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대로였다.멈춰 선 김에 벤치에 앉아보기로 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녀의 기억. 공원에서 빨간 망토를 두르고 어떤 할아버지와 벤치에 앉아 나누었던 어릴 적의 대화. 아이 엄마가 꼭 옆에 있는 아들만 한 나이였을 때 그런 똑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쁘다. 그 할아버지는 그 말을 부정했다. 나쁜 생각이 나쁜 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나쁜 것이다.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배출하는 사람은 나쁘다. 근데 나쁘고 않고를 어떻게 따졌더라?
나쁜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어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때 할아버지가 가르쳐줬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동안 어느새 자리를 비웠던 아들이 어디선가 이상한 물건을 주워왔다.
"이거. 이게 아직 공원에 남아있었어?"
눈동자가 그렇게나 커진 엄마를 처음 봤다. 아이는 가져온 물건을 얌전히 엄마 앞에 내려놨다. 아무 물건이나 주워 온 몹쓸 짓에 혹시 혼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엄마 옆에 착석했다.
"이거 저울 맞지 엄마?"
아이는 엄마의 반응이 자꾸 신경 쓰였다. 커진 눈동자가 끊임없이 떨리는 동안 몸은 굳어진 채 아들이 주워온 물건을 한참 바라보았다.
어디부터 지나가는 생각이고 어디부터가 의지라 봐야 할까.
그때 그 할아버지는 이 물건을 보고 나쁜 생각 판독기라고 말했다. 황금색 천칭저울과 무게추들.천칭저울은 답을 주는 영물이었다. 천칭저울에 물건을 올리면 물건 주인의 고민, 걱정, 생각, 기억 따위들이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물건을 저울판에 올리고 반대쪽 저울판에 무게추를 달아 사람들의 생각을 판단해 주었다. 저울에 올릴 수 있는 크기의 물건이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어떤 생각이든 나쁜 부분이 있으면 깃털을 올려도 무게추를 이기고 저울판이 내려간다. 나쁜 생각이 아니라면 어떤 무거운 물건을 올려도 무게추를 이기지 못하고 그 물건이 놓인 저울판이 올라간다. '나쁜 생각 공원'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피해 다녔고 공원의 이름에 이끌려 모인 사람들은 그래서 할아버지를 꼭 찾아왔었다. 천칭저울을 타고 추억여행에 빠진 엄마는 뜬금없는 아들의날 선 질문에 여행을 끝내야만 했다.
"근데 말이야. 아까 엄마 말대로라면,그럼 사람을 죽이는 생각도 막 해도 되는 거네. 죽여버리고 싶다거나 죽이는 상상말이야. 생각만으로는 나쁜 게 아니라며. 그게 나쁜 생각이구나 인지하기만 하면 되는 거네."
"뭐?"
"나 괴롭히는 녀석. 그 녀석이 짜증 나고 화나게 하니까. 나쁜 짓을 하는 녀석이라 맨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그 생각이 나쁜 건 아니라는 거잖아?"
"뭐라고?"
생각만으로는 나쁘지 않다. 지나가는 말로 한 번씩 분노에 차 '죽여버리고 싶네. 혹은 죽어버려라.' 라며 내뱉는 한탄을 살인의 시도라 보고 처벌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들의 말대로 개인의 생각에 지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며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단순히 나쁜 생각이라고 가르치고 배우면 모든 게 해결될 일일까.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의지를 담아 저지르는 강력범죄 행위들 강도, 살인, 성폭행 따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정말 그것이 나쁘다는 걸 몰라서 한일일까. 배우지 않아서, 잘못이나 죄라는 인지를 못해서? 이제야 떠오르는 그 할아버지의 이름 바바꼬 영감. 그와 나눴던 나쁨에 대해, 못된 생각에 대한 토론. 그는 이런 질문에 뭐라 대답했던가. 아들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아 오랜 기억 속을 파헤쳐 보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불혹이 다 되어 아들과 함께 '나쁜 생각 공원'으로 돌아온 망토는 아홉 살에 벗어던진 빨간 망토를 찾아 다시 걸쳐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