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함과 분노 그 어딘가

불편함으로 압축되는 감정을 해소하기 위하여

by 오오리

*본 글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지나가시면 됩니다.



약 두 달 만에 본가를 다녀왔다.

집에서 도보 포함 약 30분 거리에 있는 본가는, 나에게는 강 건너 1시간 반 걸리는 친구의 집보다도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본가에 가기 전,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부모님 간의 대화가 원만하게 흘러가지 않은 것이라는 확신. 나의 어떤 말이나 내가 갖고 가는 무엇이나 아무튼 뭐든 간에 엄마가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 그 확신들은 때로는 빗나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꼭 들어맞기도 하고, 때로는 확신으로 인해 문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번은 그런 경우였던 것 같다. 확신으로 인하여 문제가 만들어진. 예민해져 있는 나의 모습에 엄마도 예민하게 되어 갈등이 좀 더 빠르게 점화된 것이지 않을까.


본가에 갈 때면 밖에 나갈 준비를 할 때부터 이미 스트레스다. 원래도 밖에 나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스트레스가 더욱 심하다.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떠올리며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상상해 본다. 어떻게 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넘길지 상상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가 또 배운 게 그런 게 아니다. 유머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집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경직을 배웠고 강박을 배웠다. 통제를 당하고 억압을 당하던 나는 점점 그 통제와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공격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10대 초까지, 내가 많이 어리고 작았을 때에는 그저 잘못을 빌 수밖에 없었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조금은 강해진 나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아빠에게 폭언과 무언으로 분노를 표현하였고 온갖 저주를 하였다(분노의 저주는 중학생때부터 였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마음이 여리지만 통제적이었던 엄마에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다 공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온건한 방법으로는 무엇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 나를 보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아직도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나를 지켜내곤 한다. 조금도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다. 성숙하지 않은 부모의 모습을 욕하면서 나 또한 성숙해지지 않은 모습을 몇 년째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엄마와 큰 갈등을 겪고 돌아왔다. 갈등을 남겨둔 채로 돌아왔다. 나는 분명히 몇 번이나 그 주제로 더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다. 스쳐 지나가듯 언급된 우리의 과거는 그렇게 스쳐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덮여있는 채로 지나쳐 보내면 우리는 다시 지금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또다시 과거에 꽂혀버렸다. 그만 얘기하자고 하였지만 엄마는 그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드러내어 좋을 것이 없는 그 이야기를 구태여 이어나가려고 애썼다. 그렇게 하였을 때 우리의 결말은 좋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으나 엄마는 미처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났고, 더 이상 엄마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지만, 엄마는 또 이렇게 그냥 가면 어떡하냐며 계속 쫓아온다. 머리가 아프다.


엄마를 굉장히 좋아했던 엄마를 사랑했던, 엄마의 말을 잘 따르고(물론 안 듣는 것들도 있었지만) 엄마의 사상과 철학을 어느 정도 답습한 엄마의 첫째 딸은 몇 년 간의 긴 싸움 끝에 더 이상 엄마의 눈물에 어떠한 감정도 못 느끼게 되었다. 오히려 이제는 이렇게 싸우다가 우는 엄마를 볼 때면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엄마가 울 때 같이 울던 첫째 딸은 애진즉에 사라져 버린 것을 엄마는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이번에 벌어진 엄마와 나의 싸움에서 나의 잘못은 많이 잡아봐야 3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마음이 왜 이리 불편한 걸까. 아무래도 내가 소리 지르면서 뱉어낸 단어들이 걸리는 것일까. 정말 그뿐일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찾고자 갤럭시 유저로서 모든 통화를 녹음하는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엄마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내용을 들어보았다.

그렇다. 엄마는 아직도 우리의 묻어둔 갈등에 대하여 본인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무슨 잘못을 했었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다. 내가 수년간, 수 차례에 걸쳐서 엄마가 나에게 준 상처들을 명확하게 얘기하였는데도 엄마는 그 무엇 하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매번 묻고 또 물었다. '엄마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거야?'

......

그리고 지금. 내가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들에 대해서 수십 번 이야기하였는데, 엄마는 여전히 '그래서 엄마가 뭘 잘못했었다고 생각하는데?'라는 나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역시 그렇다. 엄마의 '반성'은 지금 이 상황을 본인이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도록 던져낸 단어일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직까지도 지금 이 지경에 다다르기까지도 자신의 슬픔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온갖 모순 속에서 그는 자신이 나를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며 반성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다시 내게 죄책감을 또 느끼게 하기 위해 자신의 슬픔을 논한다.


아, 그래. 내가 또 속아 넘어갈 뻔했구나.

여기서 정리를 마쳐도 되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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