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인보다 자신에게 좀 더 높은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에 속한다. 그렇다고해서 타인에게 무한정 관대하지는 않다. 나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높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가면서 보이는 비도덕적, 불법적인 것들에 하나하나 분노하는 것이겠지. 아무튼간에 나는 나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꽤나 높은 편이고, 당연스럽게도 나는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못난 사람이 되어있었다.
요즈음 상담을 받고 있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청년 마음건강 지원 사업에 선정된 덕분이다. 신청 당시에 우울감에 빠져있기도 했고, 퇴사를 앞두고 진로에 대한 불안이 커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상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일반 상담소를 찾기에는 금전적으로 조금 많이 부담되었다. 뭣보다 상담사가 맘에 들지 않았을 때, 버려지게 되는 그 돈들이 너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여유가 있는 형편이었다면 더 좋은 상담을 위해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비용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한 회기당의 비용이 나에겐 너무 큰 비용이었다. 교회 상담소를 찾기에는 이미 교회 상담소에 대한 경험이 꽤나 있다. 그리고 나는 교회 상담소에서는 지금 내게 필요한 상담을 제공해주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서울시에서 주관하여 진행하는 사업이면 좀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신청한 상담이었다.
감사하게도, 참여가 선정되어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여러 회기의 상담을 거치면서 나는 조금 더 나를 알아가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 알아가기도 하였지만, 나를 조금 더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너무 높은 목표를 주고선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한심해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돼. 정말 급하고 중요한건 미루지 않고 잘 해내잖아. 라며 나에게 여유를 주며 다독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가도 또 오늘의 설거지를 아직도 미루고 있다며 한심해하곤 하지만.
겨우 10회기의 상담으로 내가 굉장하게 바뀌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은 쉬고 있는 나이기 때문에 여유를 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쉼을 멈추고 달리기 시작하면 나에게 여유를 줄 수 있을까? 그래도 그동안 무기력하던, 아니 무기력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뭔가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는 것이 대견하다. 대견하다고 오늘도 가만히 토닥여본다. 이제 나에게 주어지는 다섯 달의 시간을 알차게, 여유롭게, 행복하고 뿌듯하게 보낼 수 있도록 열심히 달려봐야겠다. 지금의 나에겐 그럴 수 있는 에너지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