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우 Dec 07. 2021

와인빛 흑역사 이야기

때는 바야흐로 첫 직장에 입사한 지 1년 차 신입 병아리 시절이다. 직장은 중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일하는 회사였는데, 3개월 정도 현지에서 일할 직원을 지원받고 있었다. 같은 부서 사람들 대부분이 자녀가 있는 분들이라 나가기를 꺼리고 있어서 신입사원인 나에게까지 기회가 돌아왔다. 나는 중국에 나가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앞뒤 재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기회를 잡았다. 아주 급하게 출국을 하게 되어 나가겠다고 결정을 하고 일주일 뒤가 출국이었다. 회사에서는 12월이기도 했고 부서의 막내를 외국으로 보내기 전에 당겨서 미리 연말 모임을 하기로 했다. 연말 모임 장소는 나름의 격조가 있는 레스토랑이었고, 드레스코드도 레드로 정했다. 토요일에 내가 출국을 하게 되어 모임은 수요일로 잡혔다.     


대망의 수요일, 모두 레드 포인트를 준 멋진 의상을 입고 출근하여 온종일 설레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일하면서도 사무실 안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서로의 의상에 대해 칭찬하며 저녁에 먹을 맛있는 메뉴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퇴근 시간이 되어 모임 장소로 갔다. 레스토랑은 은은한 조명을 뿜으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신입사원이지만 곧 회사의 이름으로 외국으로 파견을 나가게 된 자격으로 우리 부서의 가장 높은 분인 상무님 옆에 앉게 되었다. 첫 시작 주(酒)는 황금빛 샴페인이었다. 가늘고 긴 잔에 담긴 샴페인은 놀랍도록 향이 근사했다. 옆에 앉은 상무님은 호탕한 성품의 재미있는 분이셨고, 술을 아주 잘하시며 잘 권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샴페인이 너무 맛있기도 했고 상무님이 권하는 술을 거절할 수 없어서 계속 홀짝홀짝 마시며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이미 나는 이성의 통제를 슬슬 벗어나고 있었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아한 모습으로 입장하여, 화기애애하게 회사에 관한 퀴즈도 맞히고 상품 증정식도 하며 연말 회사 모임다운 모습을 유지하던 자리는 맛있는 샴페인과 와인병이 점점 늘어나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내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자꾸만 바닥에 내려와 있었다. 아무리 자리에 앉으려고 해도 앉아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혼란스러운 와중에 웃음도 계속 나왔다. 비틀비틀 화장실에 가는데, 화장실 앞 벤치에 쓰러져 있는 우리 회사 언니들이 보인다. 내가 잘못 본 건가. 겨우겨우 자리에 돌아와 앉았지만 역시 의자에 앉지는 못했다. 이날 모임에서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은 임신해서 술을 마실 수 없었던 과장님 한 분뿐이었고, 술을 홀로 마시지 않은 죄로 이성을 놓은 모든 직원의 수발을 들었다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후일담을 들었다. 다른 부서 이사님 지인의 차량까지 동원되어 겨우겨우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진 뒤 그 모임은 끝이 났다. 요란한 모임의 후일담은 다음날 들을 수 있었는데 귀를 막고 싶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신입사원인 나는 계속 상무님을 가리키며(삿대질이다.) 상무님이 계속 저 술 먹였어요. 흐흐흐 했다는 이야기, 모두 자리에 앉아있지 않아 임신한 몸인 과장님이 모두 그들을 수발했다는 이야기. 우리가 퇴장할 때 그 레스토랑의 직원들이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사실 나는 이날 아침에 출근하지 못했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속이 괴로운 느낌을 싫어해서 많이 마시지 않았던 나는 이토록 강렬한 숙취를 태어나서 처음 겪어봤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바닥이 공중에 있었다. 내 눈앞에서 내 방이 180도로 일어나 뒤집어지고 있었다. 간밤에 회사 사람들에게 실려 왔던 딸은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엄마 방바닥이 뒤집어졌어! 흑흑흑”     

     

하지만 나는 토요일 날 출국을 해야 했고, 출국과 관련해서 회사 내 타 부서와 이야기하기로 되어있어서 회사에 꼭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뒤집어지는 방바닥을 겨우겨우 바닥으로 내리며(엄마의 해장국이 겨우 살렸다.) 오후에 꾸역꾸역 회사로 나갔다. 그렇다. 나의 흑역사는 전날 모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괴로운 몸으로 출국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조퇴를 허락받아 회사 건물 밖으로 나왔다. 겨우겨우 나왔는데 나는 결국 회사 건물 앞에서 전날 먹은 술과 해장국을 모두 토해내고 말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같이 나왔던 사수가 얼른 가라고 뒤처리는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왔다. 사수는 내가 부끄러울까 봐 경비분께 노숙자가 토해놓은 것 같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내가 토하는 장면이 모두 CCTV에 찍혀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전해 들었다.     


연말 모임 이후 회사 언니들은 그 당시 출시된 삼성의 보르도 TV CF만 봐도 울렁거림을 호소했고, 점심은 무조건 해장국이었다. 나는 울면서 3개월분의 짐을 싸서 여전히 남은 숙취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무시무시한 숙취와 부끄러운 기억이 가득한 와인 빛 모임이었지만, 이 회사에 다닌 10년간 이따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모두 깔깔 웃을 수 있는 추억으로 남았다. 임신한 몸으로 수발을 들던 과장님의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그 회사에 다녔는데, 퇴사 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와인을 마실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눈물 닦으면 다 에피소드라더니 굉장했던 숙취의 기억도 지금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