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만 가지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하고 제일 많이 접하게 되는 단어는 순공 시간이다. 순공 시간이란 ‘순수한 공부 시간’을 말한다. 각자의 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은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는 시간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본인이 공부하는 시간을 말한다.
아이를 키우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엄마라면 순공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가장 큰 문제이다. 공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합격 수기들을 많이 읽어보았는데 대부분 순공 시간이 열 시간은 되었다. 실제로 수험기간에 함께 캠 스터디(캠을 켜놓고 공부하는 손과 책만 보이게 하여 같이 공부하는 스터디)를 했던 멤버 중에는 하루에 12시간을 찍는 멤버들도 있었다. 엄마 수험생에게는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고 공부하고, 아이를 재우고 난 뒤 공부를 한다고 해도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시간이다. 물론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아이를 전담해서 돌봐주신다면 가능하겠지만, 도움받기 어려운 경우에는 순공 시간을 확보하기가 정말 어렵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순공 시간은 평균적으로 5시간 정도였다. 공부한 16개월 중 초반의 10개월은 그마저도 채우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아이를 낳고 6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휴직 기간이었기 때문에 아이와도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초반 10개월은 주말은 다 쉬며 아이의 친구 가족과 만나 여행을 가기도 하고, 동네 도서관에도 가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초반 공부를 시작하는 시기에는 직장 생활 후 10년 만에 책상에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는 것이라 앉아있는 것 자체가 정말 많이 힘들었다. 탁상달력에 그날그날 공부한 시간을 써 두었는데 초반에 몇 시간이나 공부했는지 같이 사진을 보자.
2018년 2월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할 만한데, 공부를 안 한 날이 더 많아서 시간이 안 쓰여 있는 날이 많다. 그리고 그래 이제 진짜 공부를 하자! 하고 마음을 먹으니 아이가 그동안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독감에 두 번이나 걸렸다!! 처음 독감은 나도 옮아서 독감 사건으로 무려 3주를 통으로 날렸었다. 달력 사진을 보면 공부시간이 3시간, 4시간 그렇다. 제일 많이 한 날이 5시간 30분이다. 공부를 제대로 안 하면서 기분은 항상 좋지 않았다. 수험생 신분으로 늘 은은한 죄책감을 기본 감정으로 깔고 살았다. 함께 스터디하는 다른 팀원들의 타이머에 10시간씩 공부시간이 찍히는 걸 보면서 나는 도저히 합격할 수가 없다고 매일 좌절했다.
가끔씩은 집에 돌아온 남편이 타이머에 찍힌 2시간 또는 3시간을 보며 괜히 고생만 하지 말고 공부를 그만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진지하게 말리기도 했었다. 나는 그러면 알아서 하고 있다고 버럭 화를 냈다. 그런 말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안 그래도 공부 안 해서 괴로우니 남편에게 화풀이를 했었다.
2018년 11월의 달력이다. 최소 7시간 달성이라고 목표를 적어놓은 것이 무색하게 최대 공부시간이 6시간 50분이다.
12월은 그래도 8시간을 넘긴 날도 있었다.
2019년 1월의 달력이다. 2019년 6월에 목표한 시험이 있었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체력이 개그지가 되거나 아이가 아프면 1시간도 겨우 하는 날도 있었다.
무용하지만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INFP인 나는 스티커를 붙이면서 나름의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도 했다.
정말 시험이 코앞으로 온 상황에서도 최대 공부시간이 8시간이었고, 어린이집 부모 참여수업에도 참석했다. 워킹맘이라 참석하지 못했던 어린이집이나 학원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다른 사람들의 합격수기들에서 본 순공 시간 10시간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나는 공부시간을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서 확보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4시 반에 하원하고 태권도 차량을 타고 학원으로 가서 6시 반 정도에 픽업을 갔다.
보통 동네의 태권도 학원은 보육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 많다. 정규 수업 시간 이외에도 아이를 돌보아 주고 공부의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야 하는 시기에는 저녁밥까지 학원에서 먹여주었다. 태권도 학원이 나의 공부 은인이다.
아이가 9시까지 등원해서 6시 반에 돌아오니 적어도 9시간은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할 수 있지만, 집에서 공부를 하니 휘휘 둘러보면 눈에 보이는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잠시 몸져누워있다 보면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체력도 너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오후에 3시간 스터디만 간신히 겨우겨우 해낼 수 있었다. 저녁에 아이를 픽업해서 데려오면 씻기고 밥도 먹이고 해야 했으니 몸이 참 너무 힘들었다. 아이 아빠가 일찍 퇴근하여 들어오는 날은 아이 돌보기를 대신해주지만, 야근이라도 하는 날엔 정말 너무 힘에 부쳤다.
공무원 시험공부는 공부를 손에서 놔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순공 시간은 길게 확보할 수 없었지만, 어떤 순간에도 공부를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내일부터 반드시 6시간 이상 공부한다!라고 계획을 세우자마자 아이가 아파서 한 주가 통으로 날아가 버려도 망했다 하고 놔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주말에 공부를 쉬며 아이와 놀면서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공부를 했다. 국어 어휘를 외우고, 영어 단어를 외웠다. 이런 것들은 간단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봐도 외울 수 있어서 공부의 감을 놓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다. 단어를 외울 수 있는 어플도 잘 나와있어서 활용할 수 있었다.
순공 시간은 짧았지만 단 3시간이라도 아주 집중해서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의 순공 시간에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 시간도 들어있었다. 강의를 듣는 시간도 멍하니 흘려듣는 것이 아니라 실강을 듣는 것처럼 집중하고 선생님과 소통하듯이 들었다. 선생님이 질문하면 대답하고, 외우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중얼중얼 따라 하는 식이었다.
순공 시간 확보가 어려운 엄마 수험생들도 지레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공부하는 내내 이렇게 해서는 합격은 절대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과 매일 싸워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공부 시간을 보며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에 3시간이라도 꾸준히 하다가 마지막 두 달만 스퍼트를 올려서 공부할 수 있다면 합격이 가능하다. 그렇게 해봤더니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흐름이 절대 끊이지 않도록 노력할 것. 혹시나 흐름이 끊겼더라도 망했어! 하고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다시 페이스를 되찾는 것이다. 물리적인 순공 시간에 연연하지 말고 짧은 시간이라도 어떻게 집중해서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행하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