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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un 25. 2023

나를 믿고 싶을 때 백운대에 오릅니다


매주 일요일 북한산을 가지만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대는 나도 큰 맘을 먹어야 연 1~2회 겨우 오르게 되는 곳이다. 백운대를 꼭 이때 올라야지, 미리 마음먹는 건 아니다. 일 년의 수많은 일요일들 중 백운대에 오르고 싶은 날이 한, 두 번쯤은 찾아온다.  


이번이 그랬다. 백운대에 오르고 싶어졌다.

벽창호 같은 학부모(학생의 아버님)와 2시간 30분 동안의 상담으로 가출 나간 영혼을 되찾고 싶어서였을까, 브런치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오라는 메일에 생각이 많아져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주 1회는 글을 올려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으나 글을 쓸 때마다 찾아오는 쓸데없는 압박감 때문에 글을 자주 못 쓰는데 환기가 필요했던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공고히 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럴 때 난 혼자 백운대에 오르고 싶어 진다. 


백운대는 평상시 오르는 의상봉보다 정확히 2.5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2배여도 힘들 텐데 '.5'까지 더해지니 백운대에 오르기로 마음먹은 날엔 사뭇 비장해진다. 한낮은 폭염이라니 등산 시작 시간을 좀 더 앞당겨야지, 올라가는데 2시간 반(자주 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내려오는데 2시간... 아니지, 하산할 때 시원한 계곡물을 지나칠 수 없으니 발 담글 시간까지 더하면 내려올 때도 2시간 반. 중간에 간식도 좀 챙겨 먹으려면 5시간은 가뿐히 넘을 게다. 그럼 몇 시에 출발하는 게 좋을까.


더운 여름날 백운대에 오르려면 올빼미형 남편과 20여 년 살다 보니 점점 늦어진 취침 시간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40분만 읽으려고 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를 7시까지 읽어 버렸다. 버지니아 언니의 의식의 흐름 화법은 중간에 잠깐 딴생각에 빠졌다간 흐름을 놓치기 일쑤라 한 페이지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꼭, 알고 싶다. 버지니아 언니의 생각의 끝을.


아, 출발부터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더울 테니 오전 7시 30분 전에 출발하려고 했었는데. 뭐, 언제 내 뜻대로 된 일이 얼마나 있었나. 일단 큰 맘은 먹었으나 무의식의 가 자꾸 나를 붙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가도 되잖아. 누가 뭐래? 너 백운대 처음 오를 때 기억 안 나? 200~300미터 남기고 발에 쥐 나서 결국 못 올라갔었잖아. 내려오는데 지장 있을까 봐 앞이 깜깜했던 거 그새 잊었어? 너 아직 족저근막염도 다 안 나았잖아. 의사 말 안 듣고 이럴래? 장시간 움직이는 거 안 좋다고 했잖아. 운동도 되도록 짧은 시간 내에 마치라고 한 말 무시하고 괜찮을 것 같아?'


내 안의 나는 무엇인가 한 발 내딛으려는 나를 잡아끄는 재주가 탁월하다.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트라우마를 이리 쉽게 촤라락 펼쳐놓으니.

그러나 내 안엔 다른 목소리도 있다.


'너, <어린이의 문장>에서 뭐라 그랬어? 생태공원에서 개구리 밟은 기억 때문에 오랜 기간 그곳을 다시 못 찾던 아이가 다시 용기를 내었을 때 기립 박수를 치며 응원했지? 두려움은 '바이킹 끝자리에 앉았을 때 배가 간질간질한 정도'일 뿐이라고 아이의 문장을 빌어했던 격려는 어떻고. 족저근막염은 이제 거의 나아가니 중간에 쉬어간다면 별일 없을 거야.'


이렇게 내 속에 일어나는 N차 전쟁은 몸을 일으키는 순간 종결된다. 언제나 생각은 몸의 움직임을 이기기 어렵다. 몸이 움직이는 순간 뇌는 다음에 해야 할 행동에 대비하느라 바빠지니까.

부산스러운 생각으로 오르기 시작한 백운대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족저근막염은 아무 장벽도 되지 않았다. 깔딱 고개를 오를 때 세상 모든 신께 의지하고 싶은 순간이 드문드문 찾아왔지만, 그 정도쯤이야 언제나 있던 일이고.


정상에 거의 올랐을 무렵, 40대쯤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올라가는 계단에 멈춰 있었다. "올라갈 수 있을까?" 내 귀에까지 들리도록 하는 혼잣말에, "그럼요. 얼마 안 남았아요."라고 대꾸했는데, 그녀가 다시 개미같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하는 거다. "발에 쥐가 온 거 같아요."

장시간 발 근육이 긴장된 채로 계속 오르니 발에 쥐가 왔나 보다. 좀 앉아서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무르며 쉬었다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녀가 계단 한쪽에 앉아 신발을 벗는 것까지 보고 나는 계속 올라갔다. 내가 처음 백운대에 올랐던 날처럼 그녀도 정상을 눈앞에 두고 그냥 내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산길도 만만치 않으니 욕심을 부렸다간 큰일 난다. 아쉽겠지만, 필요하다면 다음을 도모하며 멈출 필요도 있는 거다.    


백운대 정상엔 태극기가 꽂혀 있는 깃대가 있다. 그 옆에서 사진 한 장 찍으려고 많은 등산객들이 숨을 꼴딱꼴딱 넘기며 거기까지 올라왔을 게다. 폭염일 거라는 일기예보 덕분에(?) 정상까지 오른 등산객이 평소보다 적어 깃대 옆에서 사진 찍는 순서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평소 같으면 사진 찍으려고 오래도록 바위 산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내 바로 앞에 건장한 외쿡인 남자 한 분이 열심히 셀카를 찍고 있었다. 자체 360도 서라운딩 뷰를 찍고 있는 모습이 애잔해 보였다. 이런 순간을 위해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10년간 영어를 배운 거다.

"Do you want me to take a picture?"

나름 유창하게 들리도록 애쓴 정성이 통했나. 그가 오, 땡큐! 를 연발하며 그의 핸드폰을 건넸다. 깃대 옆에서 3컷,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2~3컷. 너도 찍어줄까? 그가 물었다. '바로 뒤에 아무도 없는데 당연하지요.' 상대에게 들릴 리 만무한 독백과 함께 내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그가 비슷한 구도에서 비슷한 횟수로 내 모습여러 장 찍어 주었다.


감사를 표하고 돌아 나오며 사진을 확인했는데, 가뜩이나 내 짧은 몸이 2/3로 준 채로 찍혀 있었다. 팔을 활짝 벌려 찍은 사진에선 양팔의 길이가 발의 길이보다 길다. 어떻게 찍으면 사진을 이렇게 찍을 수 있을까? 사진 잘 찍히는 거 하나 보고 바꿨던 핸드폰인데. 내 핸드폰으로 찍어 준 지인들이 평소보다 길어 보이게 찍힌 사진에 얼마나 부푼 표정을 짓곤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의 지나치게 큰 키가 원인이었을지 모른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다 보니 작은 생명체인 나를 제대로 초점 맞추기 힘들었나. 다음엔 절대 키 큰 분께는 사진 찍어 달래지 말아야지.     


열심히 난간을 붙잡고 내려오느라 고개를 숙인 채 하산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저 올라왔어요!" 하고 누군가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고 보니, 아! 아까 발에 쥐가 나서 잠시 쉬어 가시던 여자분이었다! 쥐가 잘 풀렸나 보다. 다행이다. 장애물에 굴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사람을 보면 언제나 뭉클 버튼이 눌린다. 오, 땡큐! 를 연발하고 싶어 진다. "와!" 양손 엄지척이 절로 들렸다. 그녀가 맑게 웃었다.


5시간 여 걸려 백운대를 다녀오니 내 안에 다른 생각들이 들어찼다.

자기 신념이 너무나 확고해서 대화가 어려웠던 아이 아버님을 만났지만 그렇기에 더 아이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생겼잖은가. 출판프로젝트를 통해 출간을 하고 얼굴도 알려지면 더 나은 글을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얼굴 없이 아무 글이나 쓰던 자유롭던 브런치 라이프는 이제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은 쓸데없는 생각일지 모른다. 족저근막염처럼 관리만 잘하면 괜찮을 거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 티베트 속담이라고 한다. 일어나지 않은 걱정과 근심에 나를 가두기보다 열려있는 기회를 더 환하게 맞아주어야겠다.


백운대에 다녀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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