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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May 25. 2024

초등 1학년 아이들의 인생 첫 학부모 공개수업

* 이 글에 쓰인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아이 초등 1학년 학부모 공개수업날이 떠오른다. 당시 난 교직 경력이 10년도 훌쩍 넘은 시기여서 교사 입장으로서의 학부모 공개수업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학부모로서 이 날의 의미가 어떨지 그전엔 그크게 생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학교에서 실시되는 여러 형태의 공개수업을 봐왔지만, 교사가 진행하는 수업 내용과 방법, 학생들과의 교감 등에 집중했지, 한 시간 내내 한 아이만을 바라보는 수업은 그때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수행하는 딸아이가 대견하다가도 손을 들어 발표할 때는 순간, 내 몸도 바짝 긴장되었다. '친구들 앞에서 뭐라고 제대로 말이나 하려나.' 싶어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가 발표 내용은 괜찮은데 목소리가 작으면 못내 아쉬웠다.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놓치고 멍하니 있는 남자 짝꿍에게, "선생님이 000 하라고 하셨잖아!"라고 면박주는 딸아이의 목소리는 또 왜 그렇게 크게 들리던지…. 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만 살피기에도 수업 시간은 휙 지나갔다.


초등 1학년의 인생 첫 학부모 공개수업 (그림 출처: pixabay)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아이가 원하는 대로 수용해 주던 유아기를 벗어나 공동체 내에서 규칙과 규율에 따르며 수업에 집중하고 과제를 수행하는 1학년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이 참 대견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2~3달 만에(보통 1학기 학부모 공개수업은 4~5월에 합니다) 아이들이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며 공교육과 교사의 역할이라는 무게가 더 크게 와닿았다.


그로부터 10년쯤 흐른 지금, 초등 1학년 첫 공개수업을 맞는 우리 반 학부모들의 마음은 어떨까. 이젠 학부모 대부분이 자신의 주장이 뚜렷하고 소신 있는 MZ세대들이니 그때의 나하고는 다를까. 아이의 초등 첫 학부모 공개수업을 나보다는 좀 더 쿨하게 대할 수 있을까.


지난주에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었다. 수업 시간은 2교시였는데 엄마가 교실에 온다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맞아 흥분한 아이들이 자기 부모님의 동태를 자발적으로 밀고(?)했다.

"우리 엄마는 아침에 저랑 같이 등교해서 지금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 엄마랑 아빠는 서로 자기가 가겠다고 우겨서 누가 올지 몰라요!"

엄마가 일 때문에 못 온다는 아이 표정이 울상이 아닌 건, 며칠 전부터 부모님이 오지 못할 사정인 아이들이 이날 실망하지 않도록 미리 약을 친 탓이리라. 오랫동안 학년 담임을 하면서 학부모 공개수업에 부모님이 못 오신 아이들이 어떤 마음일지 알고 있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신신당부를 했었다. 선생님도 학생들 가르치느라 내 딸, 아들의 학부모 공개수업에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고. 가지 못하는 부모 마음은 더 아프다고. 그러니 못 오시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고.


과연 부모님들은 1교시가 끝나지 않은 시간대부터 복도에 어른거리시더니, 1교시 후 쉬는 시간엔 복도를 꽉 채웠다. 마치 엄마, 아빠와 몇 년 만에 상봉한 듯 부둥켜안고 애정을 표현하는 광경은 저학년 공개수업일의 일상 장면이다. 가족이라는, 늘 집에서 마주하는 느슨한 관계가 밖에서 얼마나 끈끈해지는지 말해주는 한 컷.


한 아이가 전체 발표를 거부한 작은(?) 사건을 제외하면 무난히 수업을 마쳤다. 학부모 공개수업날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이므로 아이들의 반응과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차시 학습 문제를 해결하였다면 대체로 만족할 수 있는 수업이니까. 간간이 보이는 아이들의 엉뚱한 대답과 반응은 수업 장면을 훨씬  맛깔나게 하는 MSG다.


아이들이 개별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동안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는데, 이루의 멍한 표정이 레이다에 잡혔다. 다가가 살펴보니 과연 망설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 차시 수업 시간에 다른 친구들의 장점판에 다양한 장점이 적힌 스티커를 서로 붙여 주었었다. 그리고 이날엔 자신의 장점판에 적힌 수많은 칭찬들 중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만의 장점을 찾아 적고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혹시 찾기 힘들까 봐 친구들이 붙여준 여러 장점들 중 자신도 동의하는 장점에 동그라미를 미리 쳐두라고 했었다. 그중 정말 마음에 드는 칭찬 하나를 골라 학습지에 옮겨 쓰기만 하면 되는 이었는데, 이루에게 순간 선택 장애가 온 듯했다.


이루가 자신의 장점판에 동그라미를 쳐 둔 장점은 다음 세 가지였다.


- 인사를 잘해요.
- 잘 웃어요.
- 수학을 잘해요.   


이루가 하나를 고르지 못하고 망설인 이유는 뭘까? 진짜 자신의 장점이 뭔지 확신할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셋 중 한 가지도 놓치기 싫었던 걸까? 여러 가지 장점을 다 써도 된다고 했는데도 망설이고 있어서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이루야. 선생님은 이루가 웃는 게 참 좋던데, 이루는 다른 게 마음에 들어?"

내가 옆에 다가가 이루만 들리도록 소곤거린 그 한마디에 이루는 확신에 찬 표정이 되었다. 진즉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루는 그 장점을 학습지에 바로 옮겨 적었다.


나도 모르는 나를 타인이 더 잘 알고 있을 때가 있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 꽃이름 배우기를 했는데 '튤립' 그림과 글자를 읽고 있을 때 우리 반 새롬이가 그랬다.

"튤립 모양이 왠지 선생님 닮은 것 같아요!"

예쁜 꽃이 나를 닮았다는 1학년 제자의 말에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내 최애 꽃이 바뀔 뻔했다. 튤립의 어떤 점이 나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1학년 아이의 직관적인 생각에 논리를 요구하는 건 무리다. 그냥 감사히 받아들여야지.


학부모 공개수업이 지나고 며칠 후, 학부모들이 QR로 작성했던 참관록이 전달되었다. 참관록엔 자기 아이의 수업 태도에 평점을 주고 참관 소감을 적게 되어 있었다.


- 또래 속에 속해서 선생님과 친구들 이야기에 경청하며 활동하고 발표하는 모습이 대견스럽습니다.
- 시간이 가는 게 아쉬웠어요.
- 학교 생활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잘 생활하고 즐겁게 활동하는 것 같아서 너무 안심이 됩니다.
- 아이가 자라는 걸 직접 볼 수 있어서 가슴이 뭉클하네요.
- 엊그제 입학한 것 같은데 어느새 잘 적응하고 생활하는 모습에 안심하고 갑니다.


학부모들의 이런 비슷한 소감들을 쭉 읽고 있노라니 과거나 현재나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이란 한결같구나, 싶다.


처음 공개수업에 임하는 우리 반 1학년 아이들과 초등학생이 된 아이의 첫 공개수업을 두근거리며 지켜보던 엄마, 아빠들, 첫 1학년 담임교사. 이 세 교육 주체가 함께 만들어간 첫 학부모 공개수업. 우리들의 '처음'은 그렇게 반짝반짝 빛났다.


수업을 마치고 소감을 나눌 때, "수업 전에는 너무 긴장해서 숨이 잘 안 쉬어질 뻔했는데 막상 해보니 재밌었다"는 한 아이의 말이 뇌리에 맴돈다.

늘 어색하고 두렵지만 어떤 재미난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처음. 망설이지 말고 일단 뛰어들어 빛나게 만드는 일. 그게 우리들의 모든 처음을 맞이하는 좀 더 신나는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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