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늦잠자고 일어나 부랴부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주말에도 학원에 가는 아들을 위한 아침 식사였다. 아들이 먼저 먹고 씻으러 간 사이에 식탁에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있노라니, 아들이 물기도 덜 말라 여기저기 삐죽삐죽 솟구친 머리 모양으로 튀어나와서는 저런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닌가?어지간히도 급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샤워하면서 틀어놓은 유튜브에서 요즘 나날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북 대치 상황에대한 내용이라도 접했음이 틀림없었다.
175cm가량의 키에 탄탄한 몸을 가진 건장한 고1 남자아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나온다는 게 실감이 안 나서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북한이 쳐들어 오지 못하는 이유가 남한의 중2 때문이란 농담에 익숙한 부모 세대라.
"아들, 네가 걱정하는 일의 4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고, 30%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걱정 이래. 25%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일이고 5%는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것이라는데, 지금 네가 하는 걱정은 어디에 해당될 것 같아?"*
그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내 표정과 말투에 아들은 머쓱해하며 자기 방으로 뒤돌아 갔다. 아들의 불안에 대응하는 이런 내 방식, 맞는 것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어릴 적 또래 아이들보다 불안도가 높았던 아들이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사이,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이 높은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적절한 육아 방식에 대해. 그럼 그런 아이의 불안에 부모로서 난 어떻게 반응했어야 더 나은 대처였을까?
이 또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디서 그런 내용을 봤어? 그런 걸 보면 그런 걱정이 들 수도 있지."하고 공감을 먼저 해줬어야 했다. 왜 엄마인 난 늘 내 아이 앞에선 미숙한 T가 되고 마는 걸까.
불안이 높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
지난주에 우리 반 구름이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1학기 몇 번의 통화를 통해 접한 구름이 엄마는 구름이가 불안과 걱정이 많은 아이라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할지, 친구 관계는 원만한지 걱정이 많아 보였다. 구름이 몸에서 작은 상처라도 발견할라치면, 미숙한 아이의 설명에 답답해져 내게 연락을 하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구름이 엄마의 예의를 갖춘 조심스러운 어투가 구름이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과 겹쳐졌다. 구름이 엄마의 마음에 불안과 걱정이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든 건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구름이 엄마는 "선생님도 불안이 높은 아이를 키우셨다고 하셨잖아요, "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1학기 상담 때, "제 아들도 불안이 높았던 아이여서 남 일 같지 않다"라고 했던 내 말이 구름이 엄마의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이번 통화에서도 불안이 높은 자녀를 부모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평소처럼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아이가 관심 있어하고 잘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그 일을 심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시라고,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때 더 아이는 불안해지고 자신이 가진 어휘만큼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니 아이가 보는 세상을 더 넓힐 수 있도록 책을 많이 읽어 주시라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그 과정에서 이루는 작은 성취들을 구체적으로 칭찬해 주시라고 말씀드렸다. 불안이 높은 아이는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미리 마련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괜찮은 아이로 자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도.
구름이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네, 네."로만 응답하시다가 다음에 또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전화드려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언제든 연락하시라는 내 말에 안도하시곤 전화를 끊으셨다.
'불안이 높은 아이를 바라보는 걱정이 많은 엄마.'
내게 구름이와 구름이 엄마는 이렇게 그려진다.그리곤 불안이 높은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뒤돌아 보게 된다.
'불안이 높은 아이를 바라보는 만사 태평한 엄마.'
이건 불안 높았던 내 아들과 엄마로서의 나를 요약한 말이다.
어떤 경우가 불안이 높은 아이를 더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불안 높은 아이는 어떻게 길러야 할까요?(그림 출처: pixabay)
정답 없는 육아
어떻게 답을 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답은 없다. 세상엔 같은 아이는 하나도 없고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부모다.불안이 높은 부모와 적은 부모의 양육 방식은 분명히 다르고,각각엔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불안이 높은 부모는 아이의 걱정을 섬세하게 캐치하는 반면, 나 같은 엄마는 아이의 걱정을 쓸데없는 감정 소모로 가볍게치부하기 쉽다.
불안 적은 부모가 세상을 담대하게 대하는 태도를 보며 아이가 세상을 대하는 인식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반면, 불안이 높은 부모의 매사 걱정하는 태도는 불안한 아이의 행동 방식을 더 위축되게 할 수 있다.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에게 어느 한쪽에 치우친 양육 방식이 위험한 이유다.
구름이 엄마와 같이 불안한 아이를 기르는 부모에게 좀 더 넓게, 깊게 드릴 수 있는 도움은 뭘까? 다음엔 더 나은 정보를 드리고 싶어서 주말에 블로그나 유튜브로 불안이 많은 아이 양육 방법에 대한 자료를 여럿 검색해 보았다.
오은영 박사가 전하는 '불안이 심한 아이, 부모님들 이렇게 도와주세요!'라는 방송 내용과 '조작가의 스몰빅클래스'유튜브에서 그로잉맘 이다랑 작가가 전하는 '불안이 많은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양육 방식'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오은영 박사는 '불안은 인간의 생존 본능'임을 전제한다. 불안이 높은 아이는 새로운 일을 대할 때 무서운 일이 생길 것을 미리 걱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걱정과 불안을 강화시킨다고 한다. 불안은 전염성 높은 흥분 상태의 감정이므로 우선 부모가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의 불안을 대해야 아이들이 좀 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자기 신뢰와 확신을 통해 불안을 낮출 수 있도록 격려하라고.
그로잉맘 이다랑 작가는 아이가 불안한 감정을 나타낼 때, "그럴 수 있어.", "그런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는 거야?"라는 공감을 통해 불안한 아이의 마음 상태를 낮춰주라고 한다. 이작가가 짚어준 중요한 포인트는, 아이가 불안하게 여겼던 상황을 별일 없이 겪어냈을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한 고비 넘겼구나... 안심하고 지나치지 말고, "네가 생각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구나.", "너의 걱정이 현실인 건 아니었네."하고 짚어줌으로써 아이의 인식을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구름이 엄마께 이 분이 쓰신 책, <불안이 많은 아이>를 하이톡(우리 반 학부모 소통 채널)으로 보내 드렸다.
두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아이 스스로 해내는 경험을 통해 작은 성공 경험을 많이 쌓아가도록 도와주라는 것이다. 아이보다 한 발 앞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깊이 새겨들을 말이다.
불안도 높은 아이를 키우는 우리 부부의 양육 방식
불안도 높은 아이를 길렀던 우리 부부 중, 남편이 불안과 걱정이 많은 쪽이었다. 남편은 아들이 자신의 불안 유전자를 이어받은 것이 걱정이었던지, 어렸을 때 아들이 쩔쩔매는 상황을 볼 때마다 매사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일찍이 두 사람의 역할을 암묵적으로 이분화했다.
불안 높은 부모는 같은 성향의 아이를 대할 때 말과 행동에서 그런 감정이 드러나기 마련이다.아이에겐 그다지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불안이 높은 사람의 최대 장점으로, 남편은 섬세한 관찰력의 소유자였고 미래에대비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자연스럽게, 남편이 아이의 상태를 섬세하게 관찰해서 내게 전해주면 함께 해결 방법을 알아보고(때론 충돌하면서)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은 내 몫이었다.
내 아이가 어렸을 때 얼마나 불안이 높았냐면, 초등학교 1학년 때 태권도 학원 차를 놓칠까 두려워서(학원에 늦으면 선생님께 혼날까 봐)돌봄 교실 선생님께 몇 시인지 30번도 넘게 물어봤다고 한다(선생님이 조금 과장을 하셨다고 쳐도 상당한 수였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친구와 놀이를 하다 자신이 이기는 상황이 코 앞에 닥치면 놀이에 져서 분해하거나 토라지거나 화를 낼 친구가 걱정되어 일부러 지는 쪽을 택하는 아이였다. 다른 사람 눈엔 내 아이가 어쩌면 '착한' 아이로 비쳤을지모르겠지만, 부모의 눈엔 이보다 답답한 일이 없었다.
내 아이는 불안도가 높은 아이였지만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뚜렷한 분야가 있었다. 그 분야에서 아이가 작은 성취를 반복해 쌓아 가도록 꾸준히 지지를 보냈다. 아이가 자신의 재능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스스로 이뤄낸 작은 성취들을 쌓아 가던 포트폴리오엔자신에 대한 믿음도 함께 얹히는 듯했다.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할 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네가 생각해 보고 말해 줘."였다. 당연히 평상시엔 잔소리 대마왕이긴 했지만.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갈 땐 여러 교통수단을 혼자 갈아타야 하는 걱정스러운 상황도 감당할 용기를 내주었다. 잘하는 분야의 경험치를 점차 넓혀 가다 보면 점점 자기 확신이 생긴다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일치하는 지점이었다.
지금 아들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엄마, 내가 생각해 보고 결정할게"라고 말한다. 그러라고 한다. 아들의 선택이 틀릴 수도 있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지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그 결과는 충분히 감내할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것들을 경험하면서 생긴 자신에 대한 신뢰는 한 번의 잘못된 결과로 무너지지 않는다.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삶은 이기는 걸 배우는 게 아니라 지지 않는 걸 배우는 거니까.
아이는 아이의 방식대로 세상을 헤쳐갈 거라는 믿음, 부모인 우리에겐 그것이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p.s. 이 글 처음에 언급했던, 전쟁이 나서 군대에 끌려갈 수도 있지 않냐는 아들의 걱정에,"네가 생각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구나.", "너의 걱정이 현실인 건 아니었네."라고 빨리 답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급한 내용의 출처:
-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by <마침표를 찍어라>, 현대성공과학연구원
- "걱정거리의 79%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16%의 사건은 미리 준비해서 대처할 수 있었다." by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탐 보르코백 연구진의 연구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