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 책 리뷰
내가 미혼이었을 때, 내 앞가림도 안 하면서(못 한 건 아니라고 항변 중) 희한하게도 괜찮은 싱글들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어울릴 법한 다른 상대가 떠올랐다. 그렇게 중간에 내가 다리를 놓은 한 커플이 결혼했고, 다른 한 커플은 결혼을 전제로 몇 년 사귀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엔 이르지 못하고 친구 관계로 남았다. 마음먹고 연결시킨 커플들이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당사자인 듯 설레고 행복했다. 그래서 내 커플 매칭 시도는 그 후로도 한동안 지속되었다나.
서로 사랑하길 바라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데 관심이 많던 시기에서 멀어진 후, 이제는 내 머릿속엔 책과 사람이 연결된다. 잔잔한 마음 어딘가를 툭 건드리는 책을 만나면, 그 책을 권하고 싶은 이가 떠오른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 사람은 어떤 책과 어울릴까, 하며 책이 연상되기도 한다.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은 성사 여부를 걱정할 일도, 관계가 틀어지는 바람에 중간에 끼인 나까지 서먹해질 염려도 없다. 그러니 어떤 책과 어울리는 사람을 연결하는 일은 앞으로도 지속되지 않을까.
1년 전쯤, 교원 대상 1박 2일 힐링 연수에 참여했다가 가까워진 미혼 선생님께는 제10회 브런치북 출판프로젝트 특별상 수상작인, <50, 이제 결혼합니다>(백지성 저)를 추천드렸다. 동안 외모에 선한 인상이 매력적인 그녀가 여전히 미혼인 게 믿기지 않았고, 50이 되었다는 나이는 더 믿기지 않았으며, 여전히 사랑을 꿈꾸며 마음에 품고 있는 상대를 고백하던 눈빛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딸이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다 몸에 너무 살이 많이 쪄서 더 외부 생활을 꺼린다는 딸을 걱정하던 지인에겐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록산 게이 저)을 추천드렸다. 글을 쓰고 싶지만 용기가 안 난다던 동학년 선생님께는 다른 생업을 가진 이들이 글을 쓰며 거듭난 이야기들을 엮은 에세이, <지금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9인 공저)를 선물했다.
최근에 세상에서 내게 가장 특별한 존재인 엄마와 딸에게 동시에 권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정영욱 작가님의 에세이,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다. 책 제목은 책의 내용을 반영하면서도 독자의 눈을 한눈에 사로잡는 매력적인 문구여야 하는데, 이 제목은 그것을 정말 잘 구현해 내었다. 읽는 내내 저자는 일관되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대,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라고. 책을 읽으며 환청처럼 들려오는 이 위로의 샤워를 끊임없이 맞고 있노라면 지금의 내 고민과 불안, 걱정은 소중한 나를 잠식하기에는 미미한 것들이며 결국 모두 지나갈 뿐이라는 안도감에 호흡마저 편안해진다.
저자의 표현처럼, '마음이 둥글어 모서리가 없는 이들'은 거친 세상에 더 상처 나기 쉽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들은 이들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하여 결국 상처 투성이로 만들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혼자 쿨한 척하곤 하니까. 원래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유독 나에게만 나쁘게 대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도대체 이유가 뭘까?', '내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를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나만 무는 개는 당장 피해야 할 대상이지, 궁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딸과 엄마를 떠올린 것은, 이들이 대표적인 '마음이 둥글어 모서리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뾰족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자신의 탓인 줄 알고 전전긍긍하다 대체로 상처 입는 쪽인 사람들. 그렇기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긴장과 불안도가 높아져 진짜 돌봐야 할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기 어려운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선한 보노보 부류인 이들이 왜 늘 상처를 입어야 하는지, 마음 테두리가 울퉁불퉁한 나는 한없이 안타깝다. 그래서 이 책 곳곳에 놓인 저자의 말들로 대신 위로를 건네주고 싶다.
나보다 어떤 부분에서 능력이 있고 뛰어난 사람이 옆에 있을 땐 비교하며 배울지언정, 비교하며 주눅 들진 말 것. (중략) 비교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행위이지만, 그것을 연료로 삼고 나아가느냐 마느냐는 능력의 영역이다. (p. 24)
딸아, 단톡방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즐거운 대학 생활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이 친구보다 그 정도로 고등학교 생활을 더 잘못했던 걸까?' 하는 자책이 든다고 했지. 그럴 때마다 얼마나 우리 딸 마음이 안 좋았을까, 생각하면 엄마 억장이 무너져. 과거는 지나간 것이야. 과거가 현재의 자신을 만들긴 하지만, 현재는 미래의 또 다른 과거, 이 소중한 시간을 답 없는 비교로 소모하진 말자. 그 마음을 연료로 삼아 지금처럼 네 걸음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하루를 엄마는 마음 모아 응원해.
어쩌면 정말, 정말 말이죠. 가장 외롭고 슬프고 아프고 환멸 나고 가끔 왜 이러나 싶고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은 나 자신만이 나를 가장 온전하게 지탱하는 기둥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불안해서 내 삶이 이토록 흔들리지만 결국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 온 것은 누구도 아닌 나인 것 같다고. 그러니까, 너무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나를 지금까지 견인해 온 주인공입니다. (p. 63)
엄마, 엄마는 가끔 자신이 너무 못마땅하다고 하시잖아요. 거친 상대를 만날 때면 주눅 들고 그 사람에게 상처받을까봐 해야 할 말도 잘 못하는 게 싫다고. 엄마가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은 그냥 엄마에게 나쁜 사람인 거예요. 그 사람 곁을 둘러싼 사람들로 인한 착시로 상대에게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게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원인일지 모른다고 괴로워하는 일, 안 했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여자 혼자 몸으로 세 자녀를 온전하게 키워내신 강한 사람이라는 거, 잊지 마세요. 가끔 스스로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듯 여겨질 때 그런 엄마가 세상의 기둥이었던 어린 자식들이 셋이나 있었다는 걸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의심하지 마세요. 엄마는 지금의 자신을, 우리 가족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주역이라는 걸요.
누군가를 열병 앓듯이 좋아했던 마음으로 나는 나를 좋아해 준 적 있을까. 내가 나를 좋아함과 인정함은 이 세상 그 누가 나를 좋아해 줌보다 값진 것이다. 가장 값지고 아름다우며 최대의 다정이자 대체 불가의 의미일 것이다. 혹여 나를 좋아해 줄 이유를 찾지 못할 때는, 기억하라. 막론하고 '지금 당장'이 나를 사랑할 적기이다. (p. 64)
상처가 많은 사람아, 오늘도 그 어떤 상처로부터 아픔으로부터 또 후회로부터 무던히도 잘 견뎌 내었다. 지금의 당신이 되느라 얼만큼 힘들었을까. 이겨 내느라 얼마나 힘썼을까. 언제까지고 무너지지 않을 사람아, 오늘도 그 어떤 아픔과 상처와 고난으로부터 잘 견뎌 내었다. 그거면 된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되었다. (p 67)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누가 나를 사랑해 주길 바라겠는가. 좀 부족해도, 마음에 안 들어도 험한 세상을 헤치고 이겨 내느라 애쓰며 나란 사람을 지금 이 자리까지 견인해 온 이는 나 자신이다. 나를 좋아하는데 이유란 없다. 그저 내가 나라서 다행이고 안심이다. 그러니 이유 불문, 지금 당장 나를 보듬고 사랑하라.
그 많은 상처와 고난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엄마와 나, 그리고 내 딸. 고생했어요. 지금으로도 우리는 충분합니다.
여기,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당신을 애타게 응원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빛이자 바다인 당신이기에, 또 누군가의 미래이자 기억하고 싶은 과거일 당신이기에, 삶은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기에, 철저히 당신이 살아 내기를 바라며,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꼭 스스로의 자랑이 되기를 바라며. (p. 92)
마지막으로 고른 이 단락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이 책의 요약일 듯하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모든 상처 난 마음들에 세심하게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며 새살이 돋기를 바라는 저자의 진심. 그것이 이 책이 180주 연속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이자 50만 부 출판의 이유이지 않을까.
나도 저자의 말을 빌어 진심을 담아 응원을 전하고 싶다. 내 삶의 빛이자 바다였던 엄마, 내 분신이자 미래인 딸, 두 사람 사이에서 부단히 오늘을 견인 중인 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각자의 삶을, 온전히 각자의 몫으로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들의 기준이 아닌 스스로의 마음에 족한, 각자 삶의 자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꼭 그리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무던히 잘 견뎌왔고 현재에도 그리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미래엔 더 잘될 사람들이니까요.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쓴 솔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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