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내는 힘

by 정혜영

* 이 매거진에 쓰인 모든 학생들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우리 학교 1, 2학년 아이들은 1인 1 악기 활동으로 '독도리나'라는 악기를 배우고 있다. 독도리나는 '독도'와 '작은 악기'라는 이탈리아어, '리나'가 결합된 용어로, 한국식 오카리나 중 소프라노 음역대의 소리를 내는 작은 악기다. 손이 작은 저학년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기에 안성맞춤이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연주하기에 안성맞춤인 한국식 오카리나, '독도리나' (사진 출처: 오카리나 코리아)


언젠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런 음역대의 소리도 있어." 하고 알토 오카리나로 '나는 반딧불'을 불어준 적이 있다. 그 뒤로 아이들은 종종 내게 그 곡을 오카리나로 불어달라고 한다. 지루한 국어와 힘든 수학 문제를 풀고 난 뒤엔 더욱. 그럴 땐 나도 못 이기는 체 끌려가 준다. 대신 아이들에겐 노래를 부르라고 주문하며.

그렇게 내가 오카리나로 불어주는 리듬에 맞춰 아이들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나면 아이들과 나 사이에 연결된 선이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다. 긴장을 이완시키고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데 음악만 한 게 있을까.


지루한 수업 시간을 조금이라도 까먹는 이 방법의 맛을 알았는지 아이들이 자꾸 주문을 하길래 아예 교실 앞쪽에 내가 개인적으로 쓰던 보면대에 '나는 반딧불' 악보를 놓아두었다. 자꾸 불어달라지 말고 너희들이 불라고.

'곰 세 마리', '똑같아요' 같은, 운지를 익히기 위한 쉬운 곡을 느리게 배울 때는 보면대 위에 놓인 복잡하게 생긴 악보가 그림의 떡이더니, '홀로 아리랑'과 '소풍' 같은 조금 더 복잡한 곡을 익히고 난 뒤부터는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쉬는 시간마다 보면대 앞을 서성이는 아이가 생겨난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엔 자신들이 부르던 노래 가락이 그 작은 악기로도 연주가 된다는 게 신기했던지 몇 번 앞부분을 시도해 보다가 아무래도 버거웠던지 중도하차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성이는 달랐다. 매 쉬는 시간마다 보면대 앞에서 조금씩 연습하더니, 어느새 마지막까지 연주해 냈다. 독도리나는 높은 '미'까지만 낼 수 있는데 '높은 라' 음까지 있는 곡을 어떻게 연주하는 거지? 궁금했는데 연습하는 지성이의 소리를 찬찬히 들어보니, 그 부분에서는 한 옥타브 아래로 내려서 연주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선생님만 가능한 줄 알았던 곡을 친구가 해내다니, 다른 아이들에게는 일대 사건이었다.

"선생님! 지성이도 '나는 반딧불' 불 수 있어요!"

경이에 찬 눈을 동그랗게 부풀리고 기쁨에 겨워 소프라노 독도리나 톤이 된 아이들의 보고는 열에 들떠 있었다. 그럴 때 토끼 눈으로 "오, 굉장한데!" 응수하는 내 반응을 보고 더 의기양양해져 어깨가 한껏 부푼 채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어찌나 위풍당당하던지.


독도리나 연주로 단번에 우리 반 인싸가 된 지성이가 소프라노 소리에 한계를 느꼈는지 어느 날 내게 "선생님이 연주하시는 건 어떤 거예요?" 하고 물어왔다. 내게 '알토 오카리나'라는 대답만 듣고 며칠 뒤 지성이가 가지고 온 악기는 운지법이 다른 이태리식 플라스틱 오카리나였다. 그러나 그런 것은 선생님의 소리를 능가하고 싶은 열의에 찬 이 아이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소리를 구분하는 밝은 귀를 가진 지성이는 금세 새 악기의 운지법에 익숙해졌고 어설프게 연주하던 소프라노 독도리나 연주에서 벗어나 노래 원음인 알토 음역대로 '나는 반딧불'을 제대로 연주하게 되었다.


"선생님, 지성이랑 '나는 반딧불' 함께 연주해 주세요!"

어느 날, 고은이가 이런 당찬 요구를 해 온 건 어쩌면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담임 선생님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친구가 해내고 있으니 아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그것을 해낸 당사자인 양 합동 연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법 우렁 했다.

"지성아. 선생님과 함께 연주해 볼래?"

내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지성이가 해보겠다고 하자, 아이들의 환호와 박수로 교실이 터질 듯했다. 날짜는 지성이가 정한 대로 그날로부터 10여 일 후로 정해졌다.


그날부터 지성이의 연습은 더 맹렬해졌다. 쉬는 시간마다 지성이가 울리는 '나는 반딧불' 가락에 교실 앞 보면대 앞을 서성이며 독도리나로 시도해 보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열흘 사이에 어떤 아이는 대망의(?) 합동 연주회 날짜를 선생님이 얼렁뚱땅 지나가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는지, 다시 확인하러 오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이제 며칠 남았다며 매일 카운트다운을 했다. 열흘 동안 끊임없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지성이는 악보를 다 외워 악보 없이도 연주가 가능해졌다.


드디어 지성이와 내가 함께 호흡을 맞추던 날.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유난히 반짝였고 지성이를 응원하는 박수 소리는 우렁찼다. 지성이에게 감정 이입한 아이들은 지성이가 실수할까 봐 연주 내내 마음을 졸였다.


아이들은 지성이의 도전이 시작된 첫날부터 10일간의 여정을 알고 있었다. 놀기에도 짧기만 한 쉬는 시간에 지성이가 얼마나 연습했는지 과정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악보 없이도 곡을 완주하는 친구의 근성을 지켜본 아이들이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그렇게 한마음이었는지 알았을까. 무언가를 해내는 것은 결국,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지루하고 무수한 연습의 결과라는 사실을 눈치챘을까.



지성이가 높은 음역대 부분에서 한 옥타브를 내려 연주하다 보니 내 오카리나 소리가 도드라졌다. 가뜩이나 선생님과 함께 연주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긴장했을 지성이의 호흡이 불규칙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다. 나와의 연주를 마치고 지성이에게 독주를 권했다. 그렇게 지성이는 독주를 완주했고 두 번째 연주에선 호흡의 흔들림이 없었다. 아이들의 아낌없는 박수와 나의 엄지척이 그동안 지성이가 쉬는 시간을 반납하며 연습했던 시간을 조금은 보상해 주길 바랐다.


그 뒤로 태환이가 지성이와 비슷한 알토 오카리나를 구입해 교실 앞 보면대 앞에서 틈틈이 연습하는 게 보인다. 언젠가 태환이가 곡을 완주하는 날, '해내는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겠지. 경험을 통해 진리를 체득해 가는 아이들을 볼 때, 나는 늘 짜릿하다.



내 캘리그라피도 더 나아지려면 연습 또 연습 :) (캘리 by 정혜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바람의 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