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어 돌아온 너
시. 정혜영
스르르
손에서 미끄러질 때
잠시 아득해졌다.
꾀꼬리가 되었다가
뱃고동이 되었다가
수많은 소리를 품고 있던 너
두 동강이로
몸이 흩어질 때
어찌하여
단 한 번
울음조차 토해내지 못했는가
한 몸으로
수없는 회오리를 일으켰던 너
두 몸으로는
오직, 서러움뿐이었다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나에게
네가 돌아온 날
너는 혼자 오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을 데려왔다
네 숨구멍 하나하나에
촘촘히 들어찼던
내 아픔과 슬픔
그 모든 걸
너는 대신 버리고
새색시처럼
꽃이 되어 돌아온 너
우리는 다시,
함께 꽃밭을 일군다
5년 동안 내 숨과 호흡을 함께 했던 오카리나가 깨졌어요. 깨지기 쉬운 도자기 악기라 함부로 놓아둔 적이 없었고 꼭 전용 가죽 케이스에 보관했었는데. 좋은 소리를 내는데 많은 호흡이 필요해서 내 호흡량이 늘 때까지 우리의 본격적인 만남은 첫 만남에서 꽤나 후에야 이루어졌다죠. 그전까진 플라스틱 악기로 연주법의 기초를 다듬었어요. 더 깊은 소리를 내는 도자기 오카리나를 잘 불어내려면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했거든요. 늘지 않는 내 호흡이 야속했지, 악기는 그 안에 늘 더 좋은 소리를 품고 있었어요.
그렇게 늘 내 호흡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숨을 나누던 악기였는데, 연습 도중 잠시 손을 움직이던 찰나, 그것이 스르르 손에서 미끄러져 두 동강이가 나 버린 날, 숨이 멎는 듯했어요. 내던져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두 동강이가 난 걸까요. 한 몸이 두 조각이 났다면 응당 들렸어야 할 외마디 고통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눈앞에서 두 조각이 된 악기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어요. 비현실적이었달까요. 영화 속 슬로 모션 장면처럼 그렇게 되기 직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떤 위로의 말도 금이 간 악기를 이전의 상태로 붙여주는 접착제의 효력까진 발휘할 수 없었어요.
악기를 만드는 협회에 수선을 부탁드리고 재회하기까지 노심초사했던 마음을 아무도 모를 거예요. 제대로 수선이 될 수는 있을까. 어찌어찌 손 본들, 이전의 소리를 보존할 수 있을까... 하면서요.
이 기회에 새 악기를 들여놓는 게 어떻겠냐는 지인들의 말이 서운할 지경이었죠. 숨을 나누던 사이는 그렇게 쉽게 떼어내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수리가 다 되었다는 소식에 오카리나 케이스를 조심스레 다시 건네받아 들면서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지요. 내 부주의로 생긴 큰 상처가 쉽게 아물진 않겠지만, 이기적인 마음에 상처의 흔적이 옅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요.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오카리나는 케이스에서 수줍게 머리를 내밀었어요. 그런데 그 꼬리가 반전이었어요. 다시 돌아온 오카리나는 반짝이는 별들을 수놓은 백옥 드레스를 입은 오월의 신부처럼 찬란했어요. 눈이 부셨어요. 이음새 자국을 따라 촘촘히 박혀 있는 큐빅들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영롱했어요.
조심스레 소리를 내어 보았어요. 놀란 마음에 불안정해진 내 호흡에 첫소리가 낯설었어요. 이내 심신을 가다듬고 호흡을 정리하니 익숙한 소리가 났어요. 아니에요. 아픔을 겪은 이의 울음소리는 우물처럼 깊어지는 법이에요. 하물며 허리를 꺾인 존재가 상처를 회복하는데 어찌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새 단장을 하고 돌아온 내 오카리나는 최선을 다해 새로운 소리를 내줬어요. 이전에 불어넣었던 모든 내 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대신 버리고 오기라도 한 듯이 말이죠. 늘 그랬듯, 여전히 부족한 내 호흡이 야속하지, 악기는 그 안에 늘 풍성한 소리를 품고 있어요.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일주일간 진행된 한국식 오카리나 연수 3일 차.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만난 내 도자기 오카리나로 남은 연수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영영 다시 소리를 못 낼 뻔했던 절망감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는 듯, 그것은 좀 더 낮게, 좀 더 깊이, 좀 더 멀리까지 소리를 내고 싶어 했어요.
'그래, 상처와 고통을 거름 삼아 오래오래 내 숨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또 다른 꽃밭을 함께 일궈 가자꾸나.'
더 나은 소리가 최고의 회복이라는 듯 최선을 다하는 오카리나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어요. 우린 서로를 잘 알거든요. 우린 늘 서로에게 기도이고 꽃이니까요.